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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순간 Nov 04. 2023

[다락방 서재]-소희의 방

    '소희의 방(2010)'은 '너도 하늘말나리야(1999)'의 속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달밭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 소회의 이야기는 재혼한 친엄마에게 갈 준비를 하는 상황에서 다시 시작된다. 두 작품 사이에 1년 반의 시간이 생략되어 있는데 그동안 작은 집에 얹혀살며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작품 초반을 포함해 중간중간 언급되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가장 많이 든다. 소희와 가장 친한 친구로 나오는 채경이는 소희가 갖고 있던 비싼 물건들을 보고 자신은 부자가 좋다며 친하게 지내자고 한다. 하지만 지금 소희가 갖고 있는 건 원래부터 누리던 것이 아니었기에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내면은 단단했지만 부족한 채로 살아온 소희이기에 극장을 간 적도, 놀이공원에 간 적도 없었기에 특별활동시간에 영화관에 가는 것 자체만으로 설렘을 느끼는 모습이 짠하게 다가왔다. 거짓말 한 번 해본 적 없던 모범생이 숙제한다는 핑계를 대고 남자친구와 놀이동산에서 데이트를 하는 부분은 독자에게도 해방감을 선사한다.

    개인적으로 소희가 집을 나온 뒤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재서가 나타나서 겉옷과 교통비를 챙겨주는 부분에 가장 애착이 간다. 소희가 걱정되는 마음에 단호하게 어디 갈지 말하지 않으면 못 간다며 붙잡고 고모네 집에 가겠다고 하자 지하철역까지 따라가는 모습이 멋있고 성숙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지훈과 재서를 동시에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소희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동안 주눅 들고 눈치 보며 참고 지냈던 것들이 터지면서 일어난 갈등이기에 소희가 집에서 뛰쳐나올 때 속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난생처음 해보는 연애가 독자의 가슴을 간질간질하게 만들고 선배이자 남자친구인 지훈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렇지만 재서를 이해하면 할수록 소희와 더 잘 맞는 사람은 재서 같고 둘이 사귀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독자가 정을 붙이기에 지훈이라는 인물 자체가 너무 피상적으로 묘사된 탓도 있겠지만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재서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열다섯 소녀 소희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본인처럼 스무 살이 넘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은 늙지 않지만 개인적인 취향 상 한 작품을 오래 읽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생각보다 많다. 그럴 때마다 정말 감회가 새롭다. 이 소설을 성인이 되어 또다시 읽어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이 작품을 비단 십 대 소녀의 성장소설이라는 틀 안에 가둘 수 없는 뛰어난 작품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이다. 어쩌다 한 번 다시 읽을 때 매번 다른 부분에서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이 작품 안에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품과의 만남은 꽤나 운명적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본 것이 먼저인지 교과서에 수록된 일부 내용을 읽은 것이 먼저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작가의 이름과 첫 작품 제목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을 때 집 근처 서점에 갔다. 그런데 신작 코너에 십여 년 만에 나온 속편이라고 소개된 책을 발견했고 계획에 없던 구매를 했다. 너무 신기한 마음에 샀는데 정말 몰입해서 읽은 덕분에 이금이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 '유진과 유진'을 봤을 때 사전정보는 없었지만 관심이 갔다. 두 작품 모두 좋았고 엇비슷한 분위기의 내용임에도 속편에 와서야 중학생답게 행동하기 시작한 소희의 변화가 전편과 대비되어 더 끌렸다. 이후에는 같은 출판사 '푸른 책들'에서 출간된 책 중 마음에 드는 책을 사기 위해 서점을 다시 방문했고 '발끝으로 서다'와 '괭이부리말 아이들'도 읽었다.

    언제나 그렇듯 좋아서 여러 번 읽다가 생각보다 금방 시들해졌다. 그러다 올해 초 책장을 정리하다가 꽂힌 모습을 보고 한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던 와중에 처음 읽었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감정이입을 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한동안은 새로 산 책들을 열심히 읽었고 왜인지 모르게 소희의 이야기에 손이 가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제는 유치하게 느끼기 시작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문득 생각나서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읽었을 때 또 눈물을 흘렸다. 그때 비로소 시간이 흘러서 나이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소희는 인생 캐릭터로 남아 잊을 만하면 보게 될 소녀라는 느낌을 받았다. 스물여덟이 되었을 소희가 아닌 스물아홉, 서른이 된 소희는 또 어떤 새로움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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