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독서는 본인의 취미가 아니다. 어렸을 때는 오로지 학습만을 목표로 끝까지 읽어낸 책들이 수두룩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많이 읽은 걸 보면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상태에서 의무감으로 읽는 와중에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마음에 와닿은 작품들이 있었고 이런 모습을 본 지인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한다.
대학에 진학할 때 영문학전공을 선택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목표를 가지고 독서를 했다. 여러 갈래의 수업 중 문학 수업을 제일 좋아해서 많이 수강하긴 했지만 두고두고 읽을 만큼 마음이 가는 작품은 없었다. 불가피하게 정전화 된 작품 위주로 선정되었고 나중에 시험 문제로 출제되어 평가받는다는 사실이 온전한 즐거움을 방해했다.
진심으로 감명 깊게 읽은 작품 수를 세어보면 100편이 아니라 50편도 채 되지 않을지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를 반복 감상하듯 책에 쓰인 내용을 외울 때까지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만 읽고 싶어 했는데 올해부터는 본인의 취향 안에서 새로운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값이 부담스러워 어린 시절부터 줄곧 도서관을 애용했는데 신중히 고민한 끝에 책 몇 권을 사고, 다 읽고 난 후에 또 다른 작품을 샀다. 책을 소유할 때 느끼는 나름의 만족감이 좋았다. 읽다가 중단한 작품도 있지만 이동진 평론가님이 그것 또한 독서의 과정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글을 쓰기 10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책에 대한 욕구가 생긴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가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순간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2023년이 아니라 2010년에 '소희의 방(2010)'을 읽은 시점이 처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얼마 전에 이 책을 검색해 보았을 때 확인한 바로는 새로운 표지의 개정판이 나온 상태였고 본인이 산 판본은 절판된 상태였다. 읽으면서 발견한 오탈자가 초판임을 증명해 주는 덕분에 더 큰 소중함을 느꼈다.
이금이 작가님이 2009년에 어느 강연 도중 질문을 받고 소희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커졌던 것처럼 갑자기 본인의 이야기를 마음속 깊이 감정으로 품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로 표현하고 싶은 의지가 솟구쳤다. 어떤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적어 내려간 후 다듬었다. 쓰면서 쾌감을 느꼈지만 걱정도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두서없는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영화나 드라마를 다루는 것만큼 주기적으로 쓸 자신이 없는데 그러면 그냥 혼자 느끼고 흘려보내는 게 나은 건 아닐지. 그러다가 설령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책에 대해 다룬다고 해도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소희에 대해 언급하기 앞서 쓴 책에 얽힌 개인적인 이야기는 따로 발행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사실 가장 자신 있는 글은 편지와 일기이지만 두 갈래 모두 특성상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때까지 한 번도 발행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쓰면서 일상성이 주는 힘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