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힘을 합쳐 2500시간을 플레이 한 이유
우리 집은 조금 특이하다. 집에 컴퓨터나 그 흔한 패드,
건실한 노트북 하나 없으면서 참으로 이상하게도
콘솔 게임기는 또 가지고 있는 가정이다. 이는 아빠가
학창시절이나 젊은 시절때 그렇게도 콘솔을 가지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지 못했던 경험에 한이
맺혀서 딴 건 없더라도 콘솔은 꼭 가지고 싶어했는
마음 때문일거다. 평소에는 대한민국의 어떤 가정과도
다르지 않게, 아빠와 나는 어색하다. 엄마와 재잘재잘
얘기하다가도 아빠랑 대화를 하려하면 괜히 딴청을
피우거나 완전히 프리하게는 얘기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소통의 창구를 바로 게임으로 정했다.
아빠도 게임을 좋아하고 나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으로써 게임에 대해 얘기하고 같이 게임을 즐기는 것은
표면적으론 아이템 뭐 먹었냐, 레벨 얼마냐, 보스 깼냐
라는 말이겠지만 속으로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더 친밀히 소통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나이 든
아버지가 독립한 자녀한테 이야기하는 '밥은 먹었니.'
와 비슷한 의미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어느 날도 내가 게임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빠가 갑자기 게임을 하나 사겠다고 한다. 그때 아빠의
표정은 되게 신이 난것 같았다. 그래서 잠깐 자리를
비키니 아빠가 게임을 하나 구매해서 곧장 게임을
설치하고는 '아들, 아빠 게임 잠깐 뭐 좀 할게있어서..'
라고 말하였다. 게임을 지금 좀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오케이하면서도 무슨 게임인지
궁금해서 못참고 물어봤다. 그렇다. 그 게임이 바로
오늘 소개 할 <디아블로 2>, 더 정확히 말하자면
디아블로 2의 리마스터 <디아블로2 레저렉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디아블로>시리즈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아빠와 가까워지기
위해 디아블로에 대해 알아보고, 조사하다가 끝내는
아빠와 같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부자 게임동맹은 끝내
약 1600시간이라는 게임시간을 업적(?)을 세웠다.
'반복'에 의한 질림보단, '성장'에 대한 짜릿함의 연속
디아블로는 참으로 단순한 게임이다. 몬스터를 죽이고,
퀘스트를 깨다가, 보스를 깨고 아이템을 먹고. 다시
몬스터를 죽이고, 퀘스트를 깨고... 이게 게임의 전부다.
즉, 게임에는 수많은 반복들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것도 몇번이 아니라 몇백번, 몇천번의 반복들이
필요한 게임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평소의 디아블로를
하나 게이머들은 다 하나같이 피곤한 모습을 보인다.
어떤 느낌이냐면, 잠이 너무 오는 상태에서 수학 공식
단 하나를 2시간동안 쳐다보는 것 같다. 참 지루하다.
그럼 이렇게 반복 많은 게임이 어떻게 재밌다는 건가.
그 답은 바로 '성장'에 있다. 꾸벅 꾸벅 조는 눈으로
게임을 무념무상 몇시간씩 하면서 던전의 몬스터들을
죽이다보면 가끔씩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들이 하나들
떨어진다.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떨어지는 아이템을
반사한 빛이 플레이어의 각막을 터치할때, 플레이어는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이 세상을 잠시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이 이유는 좋은 아이템을 얻는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쓰웹이라는 지팡이
하나를 가장 높은 난이도인 지옥 난이도에서 게임의
최종보스 바알을 잡아 얻을 확률은 11만 분의 1이다.
엄청나게 낮은 확률이다. 물론 보스만 잡는 것도 아니고
몹도 잡고 다른 던전들도 있으므로 확률이 이정도로
낮지는 않겠지만 이정도로 디아2의 파밍은 정말로
어렵다. 운 안 좋으면 1만시간써도 아이템 못 먹는게
수두룩빽빽이다. 그런데 이런 아이템이 갑자기 둥하고
떨어지면 그때는 넥타이 조이고 새벽까지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몇번의 경험들로, 플레이어들은
반복을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으로써 반복을 재밌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계속 반복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받는다.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는 아이템들이기에 계속
반복을 하며 일종의 인디언식 기우제를 지내게 되면서
궁극적으론 게임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디아는 성장이 재밌지 과정은 별로
재미없고 융통성 없는 게임이다. 그래도 게임은 이를
어느정도 보강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스템을 고안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캐릭터이다.
디아블로2에는 여러 캐릭터가 있다. 검과 방패, 해머를
휘두르는 팔라딘, 3원소를 자유자재로 쓰는 소서리스,
졸병들을 데리고 다니며 물량으로 승부보는 강령술사,
빠른 속도로 활을 쏘고 다니는 아마존, 함정을 사용하는
어쌔신, 쌍검을 휘두르는 바바(야만용사), 바람을 소환
하거나 떼 지어 사냥하는 드루이드 이렇게 총 7명이다.
텍스트에서 보았듯이, 각 캐릭터의 고유특성과 플레이
방식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캐릭하나를
완전히 다 키우고 나면 다른 캐릭터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팔라딘을 몇백시간동안 키우다보니 검은 꼴도 보기
싫어지면? 그러면 아마존을 키우면 되고, 혼자 파밍을
하다보니 너무 많이 죽는다면 강령술사를 키워 단체로
떼지어 공격을 하면 된다. 언제든지 선택권은 있다.
이렇게 되니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새로운 과정에 대해
어느정도는 흥미를 느끼게 된다. 여러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가 있고 이 캐릭터들의 아이덴티티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와 차별화되니 안키우면 손해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다시 플레이어는 수많은 결국
반복이 안겨줄 크나큰 지루함을 인지하면서도, 새로운
성장을 위해 그렇게도 재미가 없는 성장의 과정을
무릎쓰고 1레벨짜리 새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또한 게임은 여기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아가
한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도 가지고 있다. 아까 예시를 든 캐릭터
중에서 가장 먼저 말한 팔라딘을 예시로 설명하자면,
팔라딘의 육성은 크게는 3가지, 세부적으론 5가지 이상
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의'라는 기술을 쓰는 질딘,
망치를 쓰는 해머딘, '강타'기술을 사용하는 슴딘 등등
그 종류나 캐릭터 운영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즉, 한 캐릭터만 골라서 플레이하더라도 다양한 빌드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여러 캐릭터를 키울때처럼 새로운
육성을 하거나 아니면 스킬을 초기화하여 여러 빌드를
경험하는 방법이 있는데 방법이 뭐든 결국 플레이어는
빌드에 맞는 장비를 얻거나 새 캐릭터를 육성해야 한다.
즉, 또다시 성장을 위해 지루한 성장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플레이어들은 이런
빌드가 존재하는데 시도를 하지않을때 손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은 새로운 빌드를 향한 과정에
올라타게 된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디아블로2는 반복
이라는 끝없는 지루함이 존재하지만 성장의 보상과
재미가 매우 분명해서 지루한 반복의 과정을 참고
계속해서 새로운 성장에 목메이는 구조로 작동한다.
그렇게 플레이어는 몇천시간동안 게임을 떠돌게 된다.
참으로 단순한 게임인데도...
이 게임은 정말 말그대로 단순한 게임이다. <림보>나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스카이림>처럼 혁신도 없고
그냥 그래픽만 높인 먼지 쌓인 20년 전 게임인데도
나는 이 게임을 플레이 한 때에 꽤나 재밌고 그렇게
까지 낡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맨날
몬스터 잡고 포션 먹고 같은 보스 몆백번 보스 잡는 것
이 행동들이 전부인데도 현재에도 여전히 게임의
매커니즘은 신기하게도 통하는 것 같다. 정말 단순한
게임인데도 성장이라는 요소에 대한 깊은 시스템이
이 낡은 게임을 광택이 나게 해줌으로써 디아블로2는
현대에 와서도 우리에게 20년전 그 당시의 게이머들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게한다. 일단 나부터도 그 당시
사람인 아빠의 자식으로써 아빠가 느낀 게임의 재미를
느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재미가 반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온다는 점에서 이 게임이 재미와는 상관없이
굉장히 오래된 게임임은 맞다. 만약 지금쯤 디아블로
라는 게임이 나왔으면 엄청나게 욕 먹었을 것이다.
불편하고, 귀찮고, 짜증나고, 답답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재밌는 이유는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반복을 통하더라도 요즘 게임들 또한 함부로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에 대한 재미가 너무나도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20년전 게임의 불친절한
시스템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에게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인생명작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