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재능은 주의(attention)에서 온다...?

집안일 VS. 회사일

by 우나맘

데이터 분석업무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나는 어느정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말을 하는데 왜 창피하고 부끄러울까 생각해 봤는데, 내 적성에 맞는 업무를 하고있다고 잘 한다고는 생각하지않기 때문이다. 마치 수학 못하는 학생이 "나는 수학이 적성에 맞아요." 하는 것처럼.


금융 시장의 데이터 분석이라는 일은 내게 일종의 사유의 장(場)이다. 숫자와 패턴, 시장의 미묘한 움직임 속에서 어떤 의미를 길어 올리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작업을 넘어선다. 그것은 일종의 해석이며,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흥미로운 점은, 그 과정의 끝에서 가끔 마주하게 되는 ‘인사이트’라는 것이다. 마치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순간처럼, 설명되지 않던 흐름이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될 때 나는 묘한 만족을 느낀다. 그것은 성취라기보다 발견에 가깝다. 내가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던 어떤 것을 겨우 포착해낸 느낌. 그래서 그 순간은 기쁨이면서도 동시에 겸손을 요구한다.


나는 이 과정을 꽤나 즐긴다. 새로운 방식으로 데이터를 바라보고, 기존의 틀을 비틀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흥미롭다. 어쩌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금융시장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기에, 그 안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은 일종의 창작 행위에 가깝다. 그리고 나는 그 창작의 경계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그렇다고 능력이...?

이 즐거움과는 별개로, 나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혹은 단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겨우 평균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인사이트를 도출해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종종 의문에 빠진다. 나의 사유는 충분히 효율적인가, 아니면 단지 비효율적인 집착에 불과한가.


어쩌면 나는 데이터 분석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이해하려고 애쓰누 사람’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둘은 겹치는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어느날 남편이 내게 던진 질문에 나는 고개가 더 숙여졌다.


당신은 무엇을 가장 잘해? '남들보다 이거하나 만큼은 잘해' 이런 거 하나가 있어?

할말이 없었다. 어느덧 10년차 직장인이고 매일 컴퓨터 책상앞에 앉이 데이터 수치를 들여다보고 어떤 의미와 시그널일까 연구해왔다고는 하지만 그시간대비 나는 여전히 데이터분석에 자신이 없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잘 한다고 할수 없었다.


회사일 vs 집안일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하는 일이 어느 정도 흥미와 만족은 있지만, 그것이 내 능력의 확증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회사 일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더 나은 방식은 없는지, 다른 해석은 가능한지, 내가 보고 있는 이 숫자들 너머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그 질문들은 나를 앞으로 밀어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집안일에 대해서는 그런 질문을 거의 던져본 적이 없다. 집은 그저 기능하는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다. 밥은 먹을 수 있으면 되고, 그릇은 쓰기만 하면 되며, 공간은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면 그 역할을 다한다고 여겼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하면서도, 정작 나의 일상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을 닫아두고 있었던 셈이다.


남편의 말은 그 닫힌 가능성을 다시 열어보라는 요청처럼 들렸다. 집안일도 하나의 ‘일’이라면, 그것 역시 관심과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잘하려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꾸어가는 삶의 일부로서 말이다.


회사일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성과로 평가된다면, 집안일은 비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드러난다.


최근에 집의 구조를 조금 바꾸면서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좁은 공간 속에서 식탁을 둘 수 없다는 조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다, 아일랜드 식탁 옆에 작은 테이블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는 단순한 가구 배치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고,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며, 함께 머무는 시간이 이전보다 편안해졌다. 물리적인 변화가 관계의 밀도를 바꾸는 경험이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나는 왜 그동안 집이라는 공간을 이렇게까지 무심하게 대해왔을까.


어쩌면 나는 ‘가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측정되고 비교될 수 있는 것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그러나 삶의 대부분은 오히려 측정되지 않는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영역이야말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감정과 직결되어 있다.


이것은 ‘주의(attention)’의 문제에 가깝다. 우리는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같은 공간, 같은 사람들 속에서도,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질감은 달라진다. 그동안 나는 회사 일에 주의를 집중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해왔지만, 집이라는 가장 가까운 세계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는 그 방향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쓰고, 조금 더 생각을 보태는 것만으로도 가족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능숙함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고, 재능이 아니라 관심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회사 일에서도, 집안일에서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삶은 어떤 한 영역에서의 성취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느냐에 따라, 그 모든 영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와 주변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거창한 능력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관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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