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재능이 없어도 꼭 해야하는 일

5-2 정리정돈

by 우나맘

정알못


나는 정리정돈을 지지리도 못한다.

신혼 초 남편이 화를 내며 부엌에 있는 모든 수납장을 열어 물건을 다 꺼냈다.

냄비, 접시, 그릇, 컵, 믹서기 등등 바닥에는 우리집 물건들이 자기자리없이 널부러지고 뒤섞여져 있다. 남편과의 갈등은 크게 두가지였는데 음식과 정리정돈 이었다.


물건을 사용하고 제자리에 두면 되는데 그게 참 그렇게 어렵고 일단 물건의 제자리를 정하는게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예전에 JYP 박진영 프로듀서가 올바르게 살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숏츠를 본적이 있는데, 이런 맥락에서 였으리라


정리정돈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제자리’를 정의하는 순간 나는 질서를 설계하는 사람이 된다. 그 과정이 유독 힘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물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의 기준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언제 이 물건을 사용할것이고, 얼마나 자주 사용할 것인지 등의 나의 물건에 대한 가치를 하나하나 매겨야 하는일이 귀찮았다. 하지만 질서없는 널부러진 내물건들을 볼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생각할때 정리정돈 안하는건 절대 나에대한 존중도 아니고 내가족에 대한 존중도 아니다. 또한 올바르게 살고싶다. 이집에 있는 펜하나도 자리를 찾아주고 그 펜도 자기역할을 다하고 폐기될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제 과감히 휴가를 내고 정리정돈을 했다.


먼저 부엌 도구 정리...


오래전에 산 향신료나 약통들 하나하나 뚜껑을 열고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기한이 지난 거는 먹어보고 이 친구의 자리를 정해본다.


어디가좋을까...


간장,소금, 양념재료 그룹은 어디가좋을까 집에 돌아다니는 상자로 양념재료 친구들의 집도 만들어준다.


딸아이에게 예전에 한번 읽어준 적이 있는 동화책에 어떤 아이가 대로대로 병 걸린내용을 떠올린다


난 지금 그 병이 오히려 필요해..


부엌의 동선을 고려해 배치하고, 자주 쓰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은 위로 올려두었다.

이는 단순한 공간 정리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시각화였다.


작은 부엌을 정리하는 데 세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은 공간이 아니라 나의 판단을 정리하는 데 쓰였다.


9시반에 시작한 우리집 코딱지크기의 부엌 정리정돈은 1시가 되어서야 80프로가 끝났다.


점심에 간단히 요구르트에 사과와 견과류를 넣고 야채고기스프를먹으며 에너지충전을하고 2차 정리정돈을 개시해보려한다 . 1시간에 무조건 끝내리라 안 쓰고 불필요한 부엌 물건이 거실에 한가득 쌓였다. 냉장고 정리는 그래도 매주 조금씩 하고 있으니 오늘의 정리정돈 목록에서는 일단 제외시켰다.


이제 아이방...


그리고는2시가되었다. 딸아이의 장난감 청소가 시작되었다. 1시간반을 예상해본다.


이어진 아이의 장난감 정리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가 만든 종이접기 작품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아름다움과 기억, 그리고 현재의 필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결국 일주일이 지난 것들은 내려놓기로 했다. 사랑은 보존만이 아니라, 때로는 정리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내 딸은 악세사리를 너무 좋아한다. 사촌언니들 3명이 준 머리띠만 30개는되고 내가 3년동안 산거는15개 되는 같다.

사용감이 떨어지거나 너무 불편한 머리띠는 조용히 쓰레기통에 넣었지만 고작 5개만 버렸다.


이제머리삔이다. 동네 유치원 선배언니가 물려준 삔으로 복받았다 커다란 투명통에 잘 정리했고 거의 버렸다.


이제 미술도구 정리 차례다.

같은색의 색연필이 왜이리도많은걸까 일단 버리고 다시 사자는마음으로 색연필은 가지고있던 것 절반은 버렸다. 인형과 장난감도 어느정도 정리하고 치우고나니 5시가 되었고 3시간이걸렸다.


작아진 장난감들, 넘쳐나는 머리띠와 삔들, 색연필 한 자루에 담긴 반복된 선택들. 물건이 많아졌다는 것은 선택이 누적되었다는 뜻이고, 그 선택을 다시 검토하는 일은 곧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버리는 행위는 상실이 아니라, 더 선명한 기준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정리정돈으로 넘어갈 차례에

아이를 하원할 시간이라 오늘의 정리정돈은 전체 정리정돈할 양의 반정도만 겨우끝낸 것으로 마무리해버렸다 안방과 남편서재에 수많은 사계절옷이 뒤섞여있었고 4월중 날잡아서또한번뒤집어엎으려한다.


정리정돈은 완성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삶을 어떤 질서로 놓아둘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결코 낭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조금 더 명확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6.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