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날의 상처

아이가 따라한 아빠의 폭언

by 우나맘
너 병신이야?


아이가 자기 전 대뜸 내게 내뱉은 말.

아이는 엄마한테 직접 하는 말이 아니고 아빠말을 따라 해본 거라고 했다. 충격이다.

아빠가 하는 폭언들을 어린이집 다녔을 때부터 수년간 들어서인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내 아이의 모습에 너무 놀랐다.

최근에 다툰 싸움에서도 남편의 폭언이 난무했고 참다못해 폭행도 추가되었다. 정강이에 멍이 든 걸 보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갈 때까지 간 우리 사이.

금이 간 유리도자기.

옆에서 그새 잠이든 아이를 보며 나의 마음은 답답했다.


내가 선택한 남편은 그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다.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강하고, 야망도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대해 불만도 많고 억울하게 생각하지만 그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그것도 잘 살아남을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었다.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어떤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다.


예전에 아주버님이 내게

자기 동생의 전두엽이 고장 났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는 보통의 사람보다 분노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시댁 부모님과 아주버님은 이걸 어느 정도 알고 계신다. 화를 낼 때 과하다는 걸.


남편은 말한다.

그럼 네가 쌍욕 듣지 않게 잘해

라고. 나도 당연히 그런 대접받고 싶지 않다.

최근의 큰 싸움으로 내 정강이에 남은 상처, 그 멍보다 훨씬 더 깊은, 양 당사자에게 남은 상처가 과연 치유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잘 안 든다.


양육권 소송을 할 자신도 없고 그와의 추억도 모두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삭제할 자신도 없다.

무엇보다 이토록 예쁜 아이가 잘 자라는 걸 옆에서 보고 싶다.


그렇게 크게 싸우고 고생했을 아이를 위해 셋이 남산 벚꽃구경을 갔다. 4월 5일 벚꽃은 정말 절정이었다. 고개를 들어 벚꽃을 보니 하늘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말없이 위로가 되었다.

정말 나의 결정은 아직 예상할 수가 없다.


어제 전화로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선생님은,


당신은 스스로가 진심으로 납득이 될 때 움직이는 사람이에요. 누군가 강제로 납득시킨다고 납득이 되는 사람이 아니죠, 남편이 원하는 삶의 기준에 대해 당신이 타당성을 가질 때 분명 바뀔 사람이에요. 다만 남편의 기준에 당신은 맞출 수 있는지가 아니고, 맞추고 싶으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혼여부를 결정할 때 핵심이 될 거예요.


라며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말씀해 주셨다.

정확한 지적이었다.

남편에게 맞추고 싶은가.

아직 조금 더 내게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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