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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Dec 31. 2020

사실 사랑은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며 대담한 거래

반쪽의 이야기

반쪽의 이야기 The Half of It (2020)

사랑이란 완전함에 대한 추구와 갈망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플라톤, 향연)


사랑이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전 세계 인구수만큼이나 다를 것이고 정확한 답은 없을 것입니다.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몇 가지 관점에서 사랑의 정의를 묻습니다. 10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익숙한 하이틴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반쪽의 이야기는 그것을 뛰어넘는 근사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완벽한 반쪽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엘리 추는 미국 스쿼하미시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다섯 살 때 중국에서 이민을 온 엘리 추는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왕따와 놀림을 한 몸에 받고 있죠. 추라는 성 때문에 기차를 흉내 내는 “칙칙폭폭” (미국에선 추추~)이 그녀를 늘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어찌, 엘리는 그녀가 다른 아이들을 왕따 시키는 것처럼 크게 동요하는 법이 없이 묵묵한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습니다. 아웃사이더지만 그녀는 제법 똑똑했고, 그런 재능으로 다른 친구들의 숙제를 대행해주며 돈을 벌죠. 그리고 엘리에게 숙제가 아닌 연애편지 대행을 맡기는 폴이 나타납니다. 폴은 같은 학교의 퀸인 애스터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예쁘면서 똑똑하기까지만 애스터에게 다가가기에 부족했던 폴은 엘리의 재능을 빌어 애스터에게 그럴듯한 연애편지를 전달합니다. 그렇게 엘리와 폴, 애스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해프닝들이 일어나고, 마지막에 엘리와 폴은 이 모든 사실들이 드러나는 고백을 하게 되죠.


영화의 오프닝에는 흥미로운 설이 등장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본디 사람이 팔 네 개, 다리 네 개, 머리는 하나이지만 얼굴이 앞 뒤로 두 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자체로 완전한 스스로를 우상으로 숭배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신이 그들을 둘로 쪼개었고, 그렇게 사람은 자기의 나머지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나머지 반쪽을 만났을 때, 그를 사랑이라 부르며 드디어 원래 나와 함께 있어야만 했던 그 반쪽을 찾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가 왜 사랑을 찾는지에 대해 문학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이 설을 증명하듯, 세명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느낌으로 사랑과 반쪽을 찾아나갑니다. 


10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익숙한 하이틴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반쪽의 이야기는 그것을 뛰어넘는 근사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엘리와 애스터의 편지 속에 등장하는 철학과 문학에 대한 고찰, 고찰에 빗댄 은유적인 이야기들이 반짝거립니다. 영화 보는 내내 재생을 멈추고 뒤로 돌려서 무슨 뜻인지 몇 번을 다시 곱씹어 본 대사들도 많았습니다.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걸 보며 ‘나도 아직 사랑을 모르는 풋내기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엘리에게 사랑이란

학교 친구들의 숙제를 대신해주다가 이제 하다 못해 연애편지까지 대필하게 된 엘리에게 또래 친구들의 사랑은 그저 가볍고 유치한 불장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깊이란 전혀 없고, 사춘기 호르몬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그쯤으로 여겨졌겠죠. 완벽한 대필을 위해 의뢰인 폴의 짝사랑녀인 애스터를 관찰하고,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예쁜 얼굴만큼이나 이지적인 애스터의 마음에 드는 편지와 메시지를 이어가던 그녀는 어느새 애스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폴의 마음을 한편으론 이해하며,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선 애스터를 속인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며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겸손한 것이 아니라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며 대담한 것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괜찮게 그린 그림을 기꺼이 망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이것은 엘리 자신에게 대한 이야기이며 폴과 애스터 모두에게 던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애스터를 사랑하는 것을 숨긴 채 폴의 뒤에서 그녀를 바라본 것은 엘리에겐 전혀 대담하지도 않으며 노력을 하는 행위도 아닙니다. 담벼락에 서로 선을 그어 넣으며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애스터에게 “네가 그릴 수 있는 최선의 선이야?”라고 반문하며 그녀를 북돋았던 엘리는 폴의 뒤에 숨어 사랑을 기만한 스스로를 고백하고, 애스터가 대담한 사랑을 하길 바랍니다. (애스터는 학교의 제일 인기 남이자 돈이 많은 지역 유지의 아들 트리그와 연애 중이었지만, 늘 공허했습니다. 예정된 것처럼 그와 결혼하는 것이 사랑이자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녀 자신도 자신의 마음에 의문 투성이었죠. 그런 그녀에게는 대담한 태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 이는 여성을 사랑하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대담하길 바라는 자신을 향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폴에게 사랑이란

이 모든 해프닝의 시작이었던 폴은 사랑은 기만하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그간 엘리의 힘을 빌어 애스터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온 폴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며, 그 과정에서 애스터가 아닌 엘리를 사랑하게 된 스스로에 대한 외침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한 가지 방식뿐이라 생각했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의 방식을 깨닫게 되었다는 폴의 말은 엘리의 정체성에 대해 과거 자신이 했던 반응 때문일 것입니다. 애스터를 사랑하는 엘리의 모습을 깨달은 폴은 그녀에게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지옥에 갈 일이라며 돌아섰죠.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닫고, 사랑의 방식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관두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엘리를 아마 계속 사랑할 것입니다. 친구의 모습이든, 사랑의 모습이든지요. 


애스터에게 사랑이란

애스터의 사랑은 확신이었습니다. 자신과의 미래를 확신에 찬 태도로 그려 나가는 남자 친구 트리그를 보면서, 안정감을 느끼죠. 그러나 폴(사실은 애스터가 쓴 것이지만)과의 편지나 메시지를 통해서 트리그와 다르게 안정적이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폴(엘리)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사랑에 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기 때문이죠. 주위의 사람들과 타인에게 떠밀려 사랑을 정의하려는 애스터에게 어쩌면 엘리가 가장 완벽한 반쪽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엘리 입장에선 사랑일 수도 있고, 애스터 입장에선 우정일 수 있지만 어쨌든  한 사람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에서 그 둘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완벽한 반쪽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스터의 비밀공간인 온천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엘리와 애스터의 모습은 그리스 사람들이 믿었던 그 설에 아주 가까워 보입니다. 


엘리 아빠에게 사랑이란

엘리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스쿼하미시의 작은 역에서 역장을 지내던 아빠는 늘 TV 앞에 앉아 있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영화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늘 소파 그 자리에 앉아 매 순간 모습을 드러냅니다. 엘리의 아빠는 분명 사랑의 모습을 경험하고 아는 어른이지만, 여전히 그도 사랑에 있어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라는 생각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아빠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상징”같은 존재인 듯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빠는 딸의 친구 폴에게 “상대의 어느 것도 바꾸지 않고 싶은 사람을 사랑해 본 적 있니?”라고 파장을 던지기도 합니다. 아마 아빠에게 그 사람은 엘리의 엄마였을 것이고, 엘리이겠죠. 그러나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엘리는 남았으니, 그런 소중한 엘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빠는 앞으로 다시 일어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후반부에서는 TV 앞 소파가 아닌 역에서 다시 일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렇기에 반쪽을 찾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상대방과 나의 사랑의 정의가 어긋나기도 하고, 믿었던 반쪽은 반쪽이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랑과 반쪽에 대한 바르고도 근사한 정의를 찾아가는 10대들의 모습이 더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어린 시절, 나름의 고민으로 축적한 것들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와 반쪽을 찾는 경험을 덜 어렵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사랑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 빛나는 철학이 궁금하시다면 추천드리는 영화이며, 넷플릭스에서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엘리가 했던 말이 꽤 근사해서 이 문장을 꼭 리뷰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반쪽을 찾는 이유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중력은 외로움에 대한 물질의 반응이다.”



주관적 평점 : ★★★★

-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 의 단계이시라면 추천드려요.

- 삶의 여러 곳에서 관찰되었던 사랑에 대한 고찰이 담긴 종합 선물세트 같습니다. 

- 엘리 추 역의 레아 루이스의 매력은 무한대입니다. 중저음의 보이스가 정말 멋진 배우입니다. 


*이미지 출처 : <반쪽의 이야기>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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