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에 개봉해야 했지만 코로나로 개봉이 한참 밀려 이제야 만나본 소울입니다.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을 저도 너무 좋아해서 요 며칠 동안 “소울”을 기다리느라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 큰 감동을 받은 이력이 있어서, 소재와 일부(유세미나와 같은) 그림체가 인사이드 아웃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았기에 많이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과는 다른 결로, 소울만의 메시지를 전해옵니다.
뉴욕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진정한 음악가를 꿈꾸는 재즈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렇기에 학교 측의 안정된 정규직 제안도 그다지 기쁘지 않습니다. 언젠가 유명 밴드와 함께 공연을 하고, 음악가로서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꿈꾸기 때문이죠. 정규직 제안을 받은 날, 조는 제자의 도움으로 바라고 바라던 유명 밴드와의 공연의 기회를 얻게 되죠. 너무나도 행복한 그는 흥분과 행복을 감추지 못하며 거리를 걷다가 그만 맨홀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들의 세상 속에서 죽음의 문턱으로 넘어가는 그 길목 앞에 서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유명 밴드와의 공연을 앞두고 그렇게 죽을 수 없었던 조는 필사의 몸부림 끝에 경로를 이탈하여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곳은 “유세미나”로 불리는데 사람이 태어나기 전 각 영혼들의 고유의 성격을 만들어주는 곳이죠. 그리고 영혼들은 성격과 함께 열정을 태우는 무언가(=스파크)를 발견해야 “지구 통행권”을 받아서 지구로 갈 수 있습니다. 조는 그곳에서 마지막 단계인 스파크를 찾지 못한 영혼 22(티나 페이)를 만나게 됩니다. 테레사 수녀, 무하마드 알리, 간디 등등 수많은 영혼들이 22의 멘토가 되어 그녀를 지구로 보내려 하였으나, 22는 지구에서의 삶을 원치 않습니다. 조는 22 멘토로서 그녀의 스파크를 찾아준 후 지구 통행권을 대신 받아 자신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22가 지구에 있는 조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조의 병실에 있던 치유를 돕는 고양이의 몸속으로 조의 영혼이 바뀌어 들어가게 되죠. 밴드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바뀐 영혼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조와 22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삶의 목적,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
삶과 감정, 에피소드 끝에 이르러 느끼는 깨달음과 감동은 픽사가 가장 잘하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그것이 아주 정점을 이루었던 작품은 2015년 개봉했던 인사이드 아웃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오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을 움직이는 5개의 감정을 소재로 다루었고 살면서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는 “슬픔”을 꼭 필요한 감정으로 조명하여 슬픔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놓았죠. 예고편과 포스터, 사람의 내면에서 출발하는 소재에서 느껴지는 풍으로 소울과 인사이드 아웃을 유사하게 바라볼 수 있지만, 소울의 지향점은 인사이드 아웃과는 조금 다릅니다. 소울의 지향점은 각 개인의 고유한 성격과 열정에서 시작하여 끝에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맞춰져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목적”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내가 태어난 이유, 내가 끝내 이루고자 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바라는 모습 등 저 멀리 “목적”이란 결승선을 정해 놓고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그런데 목적을 위해서만 달려가다 보면 나를 지나쳐가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풍경들을 놓치게 되죠. 나의 지금(현재)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목적을 위해 소중한 시간들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조의 캐릭터가 그런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명 밴드의 연주자, 성공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 만을 향해 가는 조는 현실에서의 삶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있죠. 꿈을 이루지 못한 일상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소울은 삶의 목적(꿈)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의 날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홀대하는 삶의 태도를 조명합니다.
또한, 그 삶의 목적에 대한 시선도 조금은 바꿔 보길 권유하는 것 같습니다. 조가 자주 찾는 이발관의 이발사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이발사란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발사는 행복합니다. 그는 “누구나 위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거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은 누구나 가져본 감정일 텐데요, 그것을 조금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 지금을 이어가는 것도 꿈을 이루는 것 못지않은 행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2를 통해 어쩌면 “삶의 목적”이란 것이 그리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까지 전해줍니다. 내가 의지대로 걷고,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저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 “삶의 목적”이 일상생활에서 내가 경험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우리는 매일 그 목적을 이루고 내 삶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전통에 따라서 생활해왔으며 인생의 루트가 어느 정도 정해진 삶을 꾸려 나가던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과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들 속에서 많은 욕망과 갈망, 좌절이 충돌합니다. 특히, 매일 업로드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삶의 목적을 상향 조정하고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을 주는 환경 속에 살고 있습니다. 소울은 조와 영혼 22를 통해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혜안을 건넵니다.
멋진 캐릭터의 탄생
세상의 흐름이 계속 바뀌는 만큼, 디즈니 픽사 또한 그 물결에 탑승하여 전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디즈니는 <인어공주>의 실사판에서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인 할리 베일리를 낙점했었죠. 디즈니 픽사는 이번엔 흑인들의 깊은 소울에서 탄생한 재즈라는 장르를 소재로 하여 흑인 캐릭터인 조 가드너를 탄생시켰습니다.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들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내보이기도 한다는데, 소울은 재즈라는 장르를 통해 논리적이면서도 필연적으로 흑인인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조합은 논란의 “논”도 없는 조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 조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들이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이고, 그들의 말투, 목소리, 억양, 행동 등이 매우 디테일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위해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인 사람들에게서 많은 부분 컨설팅을 받아서 이 캐릭터들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몇 가지 이야기들
* 사운드트랙 : 영화가 주는 즐거움은 사운드트랙에도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통해서 재즈란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참 묘한 즐거움을 주는 장르인 것 같습니다. 소울에서도 <Born to Play>, <It’s All Right>, <Feel Soul Good> 등 다양한 사운드트랙이 좋습니다.
* 영화 속 한국어 : 영화 속에 한국어가 등장합니다. 2번 정도 본 것 같습니다.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눈에 띄는 한국어 음식점의 간판과 내 바지가 어디 있냐고 찾는 목소리가 있었죠. 목소리는 픽사 애니메이터인 김재형 님의 직장 동료분의 아이디어에서 착안되었고, 목소리 또한 그 동료분의 목소리라고 합니다. 픽사에는 20여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일하고 계신다네요. 디즈니 픽사의 작품들은 한국인들에게 특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에 대한 픽사의 마케팅 전략과 보답이 만들어낸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 개봉 이야기 : 코로나로 개봉이 계속 미뤄져서 이제야 개봉했고, 미국에서는 디즈니 플러스로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하면 보실 수 있겠네요.
* 쿠키 영상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작고 귀여운 영혼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그 덕에 지루하지 않게 엔딩크레딧을 모두 볼 수 있었고 그렇게 쭉 보다 보면 맨 마지막에 무엇인가 하나 더 보실 수 있습니다. (22가 어디에서 어떤 성향으로 태어났는지 보고 싶었는데, 그건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호평 탓인지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고, 마음을 쾅 울리는 면에선 인사이드 아웃에는 조금 덜 미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의 분명한 방향성과 의도는 꿋꿋하게 나아갑니다.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스토리텔링 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진흙 속에 파묻혔던 진주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갖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엔딩크레딧의 이름들이 한 명 한 명 참 대단한 듯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애니메이션은 이제 더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어른들을 향해 방향을 바꾼 것 같습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이제 더 급하게 돌봐줘야 할 이들이 "어른"이 되었기에 그들의 스토리텔링도 그렇게 변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