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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그림들-2

벨베데레 하궁의 에곤 실레전

by 알트앤노이

많은 그림들 중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은 [포옹]이다. 보고 싶었던 그림 앞에 서면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설렘이 마음속에 가득 찬다. 한동안 골치 아팠던 걱정거리는 사라지고, 내가 이 그림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심장이 두세 배는 빨리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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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The Embrace, 1917)

행복한 결혼생활에 만족하듯 서로를 향한 열정을 캔버스에 담아낸 그림이다. 실레의 그림은 에로틱을 넘어 포르노그래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이 그림은 외설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적나라하지만 그 외에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 애정이 느껴져서라고 생각해본다. 어떤 그림을 보고 '야하다'라는 생각만이 들면 포르노그라피, 적나라한 묘사 외에 감정이 느껴진다면 예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포옹을 보고 '야하고 적나라한 그림'이라고 단정하는 관람객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그림 자체도 실레의 다른 그림보다는 훨씬 순화되기도 하였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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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아마도 실레와 그의 연인이자 아내인 에디트일 것이다. 실레 자신도 늘 행복한 가정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행복감을 화면 가득 나타낸 듯하다. 차갑지 않은 노란빛의 색감, 풍성한 여성의 머리카락, 화면을 꽉 채운 인물, 캔버스에 작가의 감성이 풍성하고 가득하게 넘쳐나는 듯한 느낌이다. 작품 위에 실레가 에디트에게 했던 말인 것 같은데, 의미가 너무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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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hould like to experience a time when we are so in love that no sacrifice seems too great. anything less millions of other people can do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어떠한 희생도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경험. 상대방을 향한 열정을 넘어선 숭고한 사랑.

그런데 나는 이 그림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르익은 사랑을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의 모습이랄까? 이 포옹이 끝난 이후에 이 둘은 헤어져야 만 할 것 같다. 헤어지기 마지막 전 서로를 몸이 부서지게 안아보고 사랑하여 내 온몸, 온 마음으로 당신을 기억하겠다는 연인들의 약속의 한 장면처럼 서로를 향한 마음이 너무 절절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사랑의 환희보다는 사람의 슬픔처럼 느껴져서 한동안을 앞에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나의 현재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서 같은 상황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절정과 환희로 기억될 그림이 내게는 사랑의 슬픔과 아련함으로 기억된다.(그렇다고 내가 누군가과 이별을 하고 그림을 보러 간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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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굿즈들. 돌아와서 이것들로 그림을 회상한다.


포옹, 이 행복한 사랑. 에디트와 실레의 이 사랑은 가족으로 결실을 맺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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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The Family, 1918)

행복한 가정은 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선물, 아이로 완성될 것이다. 이 그림은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는 [가족]이다. 실레, 에디드, 그리고 맨 앞의 귀여운 꼬마까지 세 사람은 완벽하고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림 속에서.

이 그림은 에디트가 아이를 가진 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상상하며 실레가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스스로도 그토록 갈망해왔던 행복한 가정에 대한 그의 단상이 잘 나타나 있다. 작은 인물 위로 큰 인물이 겹겹이 올라가는 중앙의 안정적인 구도, 어딘가 살짝 웃음 짓는 듯한 남자의 얼굴, 혈색 있는 입술을 가진 귀여운 꼬마까지 행복해 보이는 가족 그 모습 그대로이다.

실제로 이 가정이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6개월의 아이를 가진 에디트는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하였고, 실레 역시 3일 뒤 사망하였다. 1차 대전 사망자의 3배가 넘었다는 당시 스페인 독감이 행복해지고 싶었던 한 가정에도 찾아든 것이다.


20181227_113424.jpg 실레의 그림을 통틀어 이토록 귀여운 아이의 모습은 처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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