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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행 Jun 07. 2023

비를 극혐하는 사람의 우중여행

뜻밖의 발견...?

나는 비가 싫다. 그 습한 기운이 왠지 모르게 사람을 축 처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양말이랑 바지까지 젖으면...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거라 믿는다. 


때문에 여행 가는 날 비가 오면 늘 속상했다. '이번 여행 망쳤네', '날씨 운도 지지리 없지' 

아직 떠나기 전이라면 여행을 취소하거나, 여행지에 도착한 상황이라면 동선을 최소화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어김없이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날, 전국엔 비 예보가 내려져 있었고 취소할 순 없으니 최대한 비를 요리조리 피해보자는 심산으로 기상청만 들여다보며 여행을 시작했다. 


기상청이 우리에게 점지해 준 곳은 충주. 수도권이나 강원도 쪽에 비해 그나마 강수량이 적고, 비 예보가 오락가락인 곳이었다. 

충주 종댕이길 주차장에서. 경치 폼 미쳤다.

그렇게 첫 도착지인 종댕이길에 도착. 충주호를 따라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근처의 상종, 하종 마을의 옛 이름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기상청의 열일 덕에 비는 내리지 않았고 우리는 나무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충주의 경치를 만끽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분명 유튜브에서는 '쉬운 길'이라고 했던 종댕이길은 그야말로 등산 그 자체였다. 오랜 치료 탓에 다리가 좋지 않은 엄마의 상태를 고려해 본다면 난이도는 극상. 다시 돌아가야 했다. 


'역시 비는 나랑 안 맞아'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온 나는 이대론 떠나기 아쉽다는 엄마의 말에 충주 내 여행지를 뒤적이기 시작했고, 난도가 높지 않은 '수주팔봉'이라는 곳을 찾아 떠났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다리로 연결하는 아이디어 내신 분, 절 받으세요 

비는 거세졌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수주팔봉, 정상에서 강기슭까지 천(川) 위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떠오른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차박의 성지라고도 하고, tvN 드라마 <빈센조>에도 나왔다고도 한다. (도착하면 앞에 큼지막하게 <빈센조> 사진이 붙어있어 모를 수가 없다)


엄마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름다웠다. 험준하지만 멋진 자태를 뽐내는 바위산과 그 사이를 잇는 다리라니. 


그 다리 위에 올라서니 더욱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우린 다리 위에 서서 한참 동안이나 그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아마 비가 오지 않았다면 다리를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치여 아주 찰나의 순간을 누리고 내려와야 했을 터다. 비 때문인지 관광객은 우리와 아주머니 네 분이 전부였다. 


"나 사진 좀 찍어줘" "아니, 여기가 나와야지, 왜 이렇게 찍어!"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카메라 앞에 서다 보니 출렁거리는 다리 위에서 한참을 서 있어 본 경험 있다, 손? (손) 그런 경험 없이 오롯이 이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어진 중앙탑공원에서도 마찬가지. 마침 연휴였던 터라 비만 오지 않았다면 나들이 나온 여행객들로 가득 찼을 곳이었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드문드문 보일 뿐, 고즈넉하게 흐르는 남한강과 아름답게 꾸며놓은 공원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었다. 


비가 안 왔으면 이런 여유는 없었겠지?

엄마의 한 마디. 맞는 말이었다. 늘 비를 피해 다니기 바빠 비가 주는 여유 따윈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비가 주는 단점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여행에서의 큰 장점을 비가 선물해 주는 것도 있었다. 여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나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나의 시선을 바꿔보자.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그 감사함을 여행에서 찾아보자. 

충주 우중여행을 계기로 앞으로의 여행은 조금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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