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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행 Jun 08. 2023

'빨리빨리'가 받는 오해

그동안 미안했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한국에서 서툰 한국말로 "빨리빨리"를 외치는 외국인들을 보는 순간. 

서툰 발음에 웃음이 나다가도 생각해 보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어쩌다 '한국 = 빨리빨리'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걸까. 


'빨리빨리'라는 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할 때에도, 개인적인 취미를 할 때에도 서두르다 보면 항상 놓치고 가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여유가 없다는 건 그만큼 곱씹어 볼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고, 그럼 결국 실수가 생기곤 한다. 


그래서 늘 외국이 부러웠다. 심지어 어떤 국가들은 '시에스타'라는 낮잠 시간까지 두고 있지 않은가. 여유와 느긋함이 가득한 삶,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1인으로서 참 부러웠다. 

너 하나 보겠다고...

'빨리빨리'를 싫어하지만 그날만큼은 '빨리빨리' 해야 했다. 개심사에 핀다는 왕벚꽃, 청벚꽃을 보겠다고. 


서산 개심사는 절보다 벚꽃이 더 유명하다. 그 이름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왕벚꽃'과 흔히 볼 수 없는 '청벚꽃'이 피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친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벚꽃보다 조금 늦게 피는데, 그 시기가 정해져 있어 사람들은 매번 '개심사 청벚꽃 개화시기', '개심사 왕벚꽃 언제 피나요'를 검색하곤 한다. 


하필이면 비 맞아서 쭈굴쭈굴 해 진 청벚꽃(ㅠㅠ)

오전 7시 출발. 일찍 가지 않으면 주차를 할 수 없다는 말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참고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새벽 같이 일어나는 걸 굉장히 싫어하게 된 1인이다. 그것도 주말에. 주말 만이라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와의 여행에 나 하나 여유 부리겠다고 그럴 순 없지. 속으론 불평하며 고분고분 새벽 같이 일어나 개심사로 향했다. 


9시도 안 돼서 도착, 벌써 주차장은 바글바글, 주차 가능 자리는 하나.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느끼며 개심사의 벚꽃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예쁜 벚꽃들을 마음껏 만끽하고 나와서도 아직 아침 10시가 안 됐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 먹을 시간인데...


남아도는 시간, 구경이나 더 하자 싶어 근처 문수사 겹벚꽃도 구경해 주는 여유.

그렇게 우리는 여유롭게 서산 여행을 이어나갔다. '빨리빨리'가 가져다준 여유였다. 


아이러니했다. '빨리빨리'는 여유와 아주 먼 대척점에 서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여유를 가져다줬다. 


아침 여유를 포기하고 오후 여유를 찾게 된, '조삼모사'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의 생각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게 된 건 분명했다. 


'빨리빨리'라는 건, 이후에 있을 여유를 위해 미리 준비하자는 것과 같다는 걸. '빨리빨리'가 여유 있는 삶을 싫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어쩌면 '빨리빨리'가 누구보다 더 여유로운 삶을 원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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