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집가의 초대
꽤나 좋은 작품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엔 TV 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것도 보았다. 그래서 우리의 이번 여행 목적지는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청주였다.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29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가보시길. 이리 추천을 드리는 이유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희귀한 작품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그의 기증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닐까 싶지만 이는 현재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어 있다. 보존을 위해 일정 기간까지만 전시되었고 현재는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왕제색도> 외에도 너무나 훌륭한 작품들을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게다가 무료 아니던가! 1일 9회 차, 한 회차당 선착순 100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며 관람료는 무료다. 국보, 보물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니 부디 서두르시길 바란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특별한 건 희귀한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이다. 조선 18세기 제작으로 추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백자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지만 이 병은 조금 특별하다. 바로 '떡메병'이기 때문이다.
원통형의 듬직한 몸체에 입이 크게 벌어진 이 병은 마치 떡을 칠 때 사용하는 나무 몽둥이인 떡메처럼 생겼다 하여 '떡메병'으로 불린다. 떡메병은 조선시대에 소수 제작되었으나 현재 전하는 작품이 매우 드물다고 한다. 그렇게 박물관을 이곳저곳 다녔는데도 떡메병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고 이건희 회장이 지니고 있었어 그랬나 보다 엄마와 한참을 이 병 앞에서 웃기도 했다.
어진화사로 유명한 채용신의 <화조영모도>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내려가고 채용신의 <화조영모도>가 전시되었다. 이 작품이 그리 '희귀'하다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건 아무래도 초상화로 유명한 그의 또 다른 화풍을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일 터다.
채용신은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동한 화가로 무엇보다 고종의 어진 등 수백 점의 초상화를 그린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여러 박물관 투어를 다니며 그가 남긴 초상화들을 숱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초상화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채용신은 여러 초상화를 통해 만나왔던 지라 이번 <화조영모도>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의 백미는 이런 석인상들이다. 전시관 내부에 몇 점이 있긴 하나 그 진가를 보기 위해선 국립청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석인상들을 만나봐야 한다.
무덤 앞에 세워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던 문인석과 동자석들이 국립청주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특히나 그 형태들이 굉장히 특이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얼굴들의 석인상이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 보존 상태도 좋다. 아주 정성을 들여 수집하신 것인지 모나거나 깨진 부분 없이 온전한 형태의 석인상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금방이라도 움직여 인사할 것만 같은 석인상들과 혹은 수염을 꼰 아주 특이현 모습의 석인상까지. 전국에 있는 모든 무덤을 가보진 않았으나 아마도 이런 석인상은 흔히 볼 수 없는 게 분명하다.
그야말로 좋은 건 다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