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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행 Oct 04. 2023

이래서 내가 강원도 여행을 못 끊지

봉평 그리고 강릉 

목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무려 6일간의 긴 추석 연휴였지만 우리 가족은 그리 오래 여행을 가진 못했다. 연휴만 되면 치솟는 숙박비도 부담이 됐고 혹시나 엄마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응급상황을 항시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짧은 일정 탓에 멀리 떠나지도 못했다. 남쪽으로 멀리 떠난다면 일정의 절반은 차에서 보낼 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연휴인데... 물론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연휴인데 바다는 봐야 되지 않겠나 싶어 여행 일정을 강원도로 잡았다. 바다도 보고 싶고, 홍게도 먹고 싶고, 산도 보고 싶고, 좋은 공기도 마시고 싶고. 그런 목적이라면 강원도만 한 곳은 없었다. 


그러나 출발 전 내심 걱정도 됐다. 6일간의 연휴, 사람들이 얼마나 쏟아져 나왔겠어. 요즘 같은 시대에 몇 날며칠 제사를 지낼 리는 만무하고 그럼 다 여행을 갈 텐데. 강원도는 수도권에서도 가기 가깝고 좋으니 연휴 여행객들의 최적의 여행지일 터였다. 사람에 치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이었지만 대안이 없었다. 


걱정대로 강원도는 사람으로 가득했고 해변가는 주차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낀 건, 그런 걸 극복할 만큼 강원도는 참 좋은 곳이라는 점이다. 바다는 아름답고 산은 푸르르며 하늘은 청명한 곳. 


최종 목적지인 강릉에 가기 전, 봉평 효석달빛언덕을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아주 예전 이효석 문학관은 관람한 적이 있으나 그 이후 이효석 문학관 주변으로 효석달빛언덕이 생긴 듯했다. 찾아보니 2018 평창동계올림픽 예술창작 특구사업의 일환으로 생긴 곳이라 한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만큼 효석달빛언덕 주변엔 메밀이 가득 심어져 있었다. 아쉽게도 메밀꽃 필 무렵은 아니었던지라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을 보진 못했지만 효석달빛언덕은 메밀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니 메밀꽃 시즌이 아니라고 그저 지나치지 마시길)


그중 우리 가족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이효석이 평양에서 마지막으로 생활하던 집을 재현한 '푸른집' 공간이었다. 1934년, 이효석은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의 교수로 부임해 창전리 48번지에 위치한 일명 '푸른집'에서 생활했다. 담쟁이덩굴이 집을 휘감아 푸르게 보였다고 하여 '푸른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삶이 이효석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며 그 덕분일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메밀꽃 필 무렵>이 이 집에서 창작되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이 집에서 탄생되었다고 한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푸른집의 외관뿐만 아니라 1934년 그 당시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내부의 인테리어 역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아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잘 꾸며져 있는 그런 집. 부쩍 전원주택에 관심이 많아진 우리 가족이 한동안 그곳에 머무른 이유였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은 푸른집을 뒤로하고 떠난 곳은 강릉의 안반데기다. 안반데기는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해가 뜨기 전 새벽, 혹은 해가 지고 난 이후 밤늦게 많은 이들이 안반데기를 찾는다. 하지만 엄마는 저녁 9시면 잠에 들고, 나는 아침 9시에 일어나는 지라 별은 무리였다. 게다가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된 내가 깜깜한 그곳에 차를 몰고 간다? 그러다 사고날라, 워워. 


때문에 우리는 아주 환한 오전에 안반데기를 찾았다. 별이 아니더라도 그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찾는다고 했다. 내심 별을 보고 싶었지만 언젠간 연인과 별을 보러 오겠노라 속으로 생각하며 안반데기로 향했다. 올라가며 생각했다. 밤에 안 가길 잘했구나. 밤에 운전했다간 시속 10km로 올라가고 내려오느라 욕을 한 바가지 먹을 뻔했다. 


그리고 올라가선 생각했다. 환할 때 오길 잘했다. 이 경치를 놓쳤으면 어떡할 뻔했나. 

메밀꽃 필 무렵이 아니었던지라 하얀 메밀꽃도 놓치고, 배추 수확 시기가 지난지라 푸르른 배추밭도 놓쳤지만 그럼에도 안반데기는 참으로 예쁜 곳이었다. 묘하게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풍력발전의 풍차와 매끄러우면서도 웅장한 산세를 뽐내는 높은 산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아니더라도 나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노라 이야기하는 것 같은 구름이 박힌 파아란 하늘까지. 


생각보다 너무 추워서 그리 오래 경치를 즐기진 못했지만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담기 바빴던 것 같다. 낮과 밤의 안반데기를 모두 다 즐겨보시길 바란다. 비록 밤의 안반데기를 마주하진 못했지만 분명히 아름다울 것이므로. 그 각각의 매력을 만끽하시길. (그런데 진짜 춥다. 생각보다 더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가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내려오면서 스쳐 지나간 여행객은 반팔 반바지를 입은 채 놀란 나머지 뷰가 좋은 곳에 올라가길 포기하기도 했다)


안반데기의 밤은 즐기지 못했지만 그 대신 경포호의 밤을 즐기기로 했다. 안반데기가 별로 유명하다면 경포호의 밤은 달로 유명하다. 

경포호에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위해 택한 강릉의 달빛산책로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보름달. 오해하신 분은 없으시겠지만 보름달은 강릉시에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이다. 포토존으로 핫해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선 대기줄에 서서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우리는 인생샷에는 관심이 없는지라 그냥 패스. 허균 허난설원 기념공원에서 시작해 경포호를 살짝 걷고 오는 달빛산책로를 따라 그저 걸었다. 소화 겸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길이었지만 달빛산책로는 꽤나 정성 가득한 길이었다. 길을 걸으면 은은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마치 반딧불이를 연상케 하는 빛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반딧불이를 본 적 없는 우리 가족은 그저 한참을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바라보고 있었더랬다. 


오죽 아름다우면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칠까 싶은 경포대, 경포호수를 걷는 길도 아기자기하다. 낮의 경포호는 많이 만났지만 밤의 경포호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스카이베이호텔 덕분에 싱가포르의 야경(?)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야경도 만나볼 수 있고, 반짝반짝 조명들로 꾸며놓은 자전거들이 지나가면 그 또한 색다른 야경을 만들어냈다. 경포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밤에 한 번 호젓하게 거닐어보는 것도 추천드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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