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언니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언니를 만난 지 벌써 18년이나 지났네요. 아마 언니는 저를 기억 못 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언니와의 그 짧은 만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저와 제 친구가 2003년 당시 제일 싼 비행기 티켓을 끊어 홍콩 공항에서 길고 긴 대기 시간을 버텨낸 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어요. 홍콩에서 인도 항공사인 'Air India'에 탄 순간 코를 찌르는 냄새에 숨 쉬기가 곤란했었지요. 비행기 안에서 주는 음식도 하나도 먹지 못했어요. 모든 기내식에서 알 수 없는 향신료 냄새가 났거든요. 평소 입맛이 없어 본 적 없는 제가 그날은 입맛이 딱 떨어져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잘도 버텼어요. 그 와중에 비행기에서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주었는데 그건 먹을 만해 보여서, 그러나 도저히 거기서는 못 먹겠어서 고이 가방에 넣어가지고 내렸답니다.
늦은 밤 도착한 인도 뉴델리 공항에서 미리 예약해둔 픽업 차를 타고 뉴델리의 여행자 거리 ‘Paharganji(빠하르간지)’에 도착했어요. 여행사를 통해 첫 호텔만 예약해놨었는데 그곳은 ‘호텔’이라 부르기엔 너무 여관 같았지요. 도미토리보다 비싼 더블룸을 예약했는데 기대와는 달리 방은 볼품이 없었어요. 작은 더블 침대 하나와 정말 작은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가 어찌나 더러운지 쉽사리 적응할 수 없었지요. 침대도 너무 찝찝해서 친구와 저는 추울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침낭을 바로 꺼내어 침대 위에 깔았어요. 침대 위에 있을 땐 침낭 밖으로 절대 나가지도 않았지요. 그래도 어쨌든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에 도착하니 그제야 배가 고프더라고요. 그래서 야심 차게 가방에서 비행기에서 준 그 샌드위치를 꺼내었어요. 배고픈 만큼 그게 얼마나 맛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채 한 입도 삼키지 못했어요. 샌드위치에서도 그 냄새가 났거든요. 정체모를 향신료 냄새 말이에요. 고수도 들어간 것 같고, 또 다른 냄새도 나고, 사람에게서 나는 겨드랑이 냄새가 음식에서 나더라고요. 결국 다 버리고 우리는 빈 속에 잠이 들었어요.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입맛이 없는 상태여서 뭘 먹지도 않은 채 구경을 나섰어요. 뉴델리에서 볼거리로 꼽히는 레드포트에 가기 위해서였지요. 올드 델리 시장도 구경할 겸 걸어가 볼까 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출발한 지 5분 만에 저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와, 오토바이와, 오토릭샤, 사이클 릭샤, 거기에 소들까지 함께 다니는, 질서라고는 없는 엉망진창 도로의 풍경을 보며 그 먼지를 들이마시며 정말 내가 미쳤구나 생각했다니까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나는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말이에요.
그 와중에 어떤 노숙자 한 명이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너무 무서워서 걸음을 빨리 하자 그 사람이 더 빨리 걷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사람이 내 등을 손가락으로 꾹 찔렀어요. 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지요. 그 사람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손을 내밀었어요. 돈을 달라는 것 같은데 어찌나 당당하던지, 너무 무서웠지요. 그래서 우리는 별 수 없이 지나던 오토릭샤를 잡아 탔어요. 그래도 그 노숙자는 우리에게 뭐 맡겨놓은 거 달라는 사람처럼 계속 요구했지요. 오토릭샤 아저씨가 뭐라 하자 노숙자가 싸울 듯이 달려들었어요. 아... 너무 무서웠어요. 결국 오토릭샤 아저씨가 쌩 출발해주어서 우리는 레드포트에 도착했어요.
그곳에서 놀란 마음을 달래며 쉬고 구경하니까 좀 살 것 같더라고요.
그러자 드디어 배가 고파진 우리는 코넛플레이스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기로 했어요. 햄버거는 맛이 똑같겠지 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웬걸, 햄버거에서도 그 냄새가 났어요. 결국 햄버거도 다 버리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시켜 허기를 겨우 달랬지요. 다행히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맛이었어요.
그날 저녁, 친구와 저는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굶어 죽겠다 싶어 우리가 비행기표를 예약했던 한인 여행사를 찾아가기로 했어요. 이 대책 없는 여행의 가이드가 필요했던 거예요. ‘인도 소풍’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여행사를 찾아 우리는 그날 밤 빠하르간지를 다 뒤졌어요. 정말 저는 간판이 있을 줄 알았다니까요. 빠하르간지를 구석구석 세 바퀴쯤 돌고 난 후에서야 간판 찾는 것을 포기하고, 전화방에 가서 전화를 했어요. 그때 언니, 라라 언니가 전화를 받으셨죠. 우리가 있는 위치를 물어보시곤 여행사로 가는 길을 친절히 설명해주셨어요. 언니가 말해 준 곳으로 가니 정말 생뚱맞은 위치에, 그것도 2층에, 간판은 커녕 그냥 가정집 같은 곳 창문에서 언니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아주셨지요.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언니 모습이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우리 사정을 말하자 언니는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음식이 있다면서 우리를 한 식당으로 인도했지요. 언니가 우리에게 소개한 음식은 바로바로 탄두리 치킨! 적색양파와 상추가 깔려있는 접시에 가지런히 놓인 탄두리 치킨은 정말 그 빛깔도 예술이었어요. 그 맛 또한 예술이었지요. 태어나서 먹어본 닭요리 중에 최고였어요. 게다가 언니는 탄두리에 곁들여 마실 킹피셔 맥주도 추천해주었어요. 저는 사실 술은 잘 못 먹지만, 아... 정말 좋았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는 인도요리에 퐁당 빠져버렸어요. 그날 이후 40일간의 인도 여행 중에 입맛이 없었던 날이 하루도 없었다니까요. 짜파티도, 짜이도, 커리도, 사모사도, 탈리도 모두 모두 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40일 후, 몸무게가 3킬로나 늘었답니다.
저를 인도음식의 세계로 입문시켜주신 라라 언니.
언니는 호주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하셨었죠. 그리고 그때는 긴 여행 중이셨고요. 잠시 들른 뉴델리에서 거리의 아이들을 보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그곳에 눌러앉아 있다고요. 언니는 매일매일 빠하르간지의 아이들을 안아준다고 했어요. 구걸하는 아이들은 돈이나 먹을 것을 받을 수는 있지만 따뜻한 포옹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 언니가 그 역할을 해준다고요. 돈을 주면 마약을 살까 봐 돈은 못 주고, 먹을 것과 책과 언니의 따뜻한 품을 준다고요. 저는 그날 언니의 이야기에 퍽 감동을 받았답니다. 저는 낮에 노숙자가 푹 찌른 등이 그때까지도 서늘했는데, 거리의 아이들을 안아줄 수 있는 품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언니의 그 너른 품 덕분에 저는 그날 저녁 푸짐한 식사를 하고, 그날 하루 종일 부정적으로 보였던 인도의 모든 것을 달리 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언니 덕분에 그날부터 40일 동안 인도를 행복하게 누릴 수 있었답니다.
라라 언니, 저에게도 그 따뜻한 품을 나눠주셔서 감사했어요.
언니는 지금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계시겠지요.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