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실어 보내는 편지 3. Varanasi, India.
'필승!'
안녕?
지금도 페이스북을 통해서 자주 소식을 보면서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좀 쑥스럽네.
처음 인도에서 너를 만난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 저 멀리서 우리나라 군복 그것도 깔깔이(군 방한복)를 입은 사람을 보고 느낌이 딱 왔거든.
한국 사람이다! 예비역이다! 하하하
내가 군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했었잖아. 멀리서 봐도 알겠더라고. 근데 만나고 보니 너는 일반 군대가 아닌 해병대 출신이었지. 갓 전역한 해병 예비역. 금방이라도 경례를 붙이며 ‘필승!’ 하고 외칠 것 같은 그런 외모였지. 그렇게 너를 만나고, 너의 일행들을 소개받고 마침 이후 일정이 같은 자이푸르라서 자이푸르에서 함께 여행했던 거 생각난다.
2003년의 겨울,
크리스마스인데 인도는 춥지도 않고, 흔한 크리스마스 장식도 없었지. 그래서 우리끼리 돈 모아서 케이크랑 맥주 사서 파티했었잖아. 네가 여행 시작한 후 만들어진 일행들이 워낙 많아서, 덕분에 우리도 그 속에서 크리스마스 다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지.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바라나시에서였어.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수영인지 목욕인지 하러 들어간 너희들을 구경하며 괜히 나는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소름이 돋는 거 같았어. 나는 차마 그 물에 몸은커녕 손도 담글 용기가 없었거든.
그 전날 온종일 가트 화장장에서 화장하는 장면을 지켜보았어. 장작불이 끝도 없이 타오르는 그 갠지스강 변의 화장장.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마지막 형체마저 잃어버리는 곳. 그 강렬한 장면을 그렇게 보고 난 후여서인지 그 물을 만지기가 나는 너무 조심스럽더라고.
2004년 새해 첫날 아침, 나는 일출을 보기 위해 갠지스강에 갔었어. 같이 여행한 친구와 항상 어디든 붙어 다녔었는데 그날 아침 친구는 나가기 싫다고 하고 나는 갠지스강의 일출을 포기할 수 없고 해서 용기 내 혼자 배를 타러 갔지. 사실 나는 그 순간 엄청난 용기를 낸 거였어. 바라나시는 너무 쉽게 길을 잃어버리는 곳이니까 말이야.
아침 해가 뜨기 전 선착장에 도착해서 보트를 탔어. 보트를 같이 탄 사람이 나 말고도 두 어명 더 있었는데 그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저 조용히 배에 올라탔고 사공은 노를 저었지. 갠지스강은 뿌연 안개로 가득 차 있었어. 시간이 지나면 이 안개가 걷히고 해가 반짝 떠오를 거라, 그렇게 2004년의 새해 첫해가 떠오를 거라 기대했지만 결국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날이 밝았지. 대신 나는 조용히 그 배 위에서 갠지스강의 물결을 바라보았어.
여전히 나는 그 물을 만져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막상 물을 가까이에서 보니까 물이 엄청 맑아 보이더라고. 이 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잠들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간절함이 담겨있는지 생각하니까 잔잔한 그 물결을 만져보고 싶어 졌어. 뭔가 성스러운 것이 내 손에 닿은 듯 기분이 이상하더라. 너는 그 물에 몸까지 담그고 수영도 했으니 내 기분 알려나.
그때를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어. 너희 일행이 네팔로 간다고 하면서 함께 가자고 제안했었잖아. 그때의 인도 여행은 사실 첫 도착지인 뉴델리의 호텔만 예약하고 떠난 자유로운 여행이었어. 돌아가는 비행기만 예약된 언제든 모든 일정이 변경 가능한 여행이었지. 그런데도 나와 친구는 미리 짜 놓은 일정을 바꾸는 게 쉽지 않더라고. 내가 MBTI 검사 결과가 ISFJ인데 그중에서도 J가 극심한 편이거든. 그래서 그냥 원래 계획대로 가겠다고 너희들의 제안을 거절했는데 나중에 네가 보내준 네팔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얼마나 배가 아팠는지. 나의 융통성 없음이 후회됐다니까.
그때 네팔에 대해 아쉬움이 남은 덕분에 그 이듬해 교회에서 가는 봉사활동 지역 중에 네팔이 내 눈에 딱 들어왔고, 그 네팔 봉사활동에서 만난 사람과 결국 결혼까지 했으니, 어쩌면 그때 네팔에 가지 않은 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
너는 그때의 일행들과 30년 후에 다시 인도에 갈 거라고 했지? 30년 후면 2033년이니까 이제 12년밖에 안 남았네.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혹시나 나와 친구도 함께 가서 다들 50대가 된 모습으로 인도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곳은 바라나시였으면 좋겠다.
20대의 우리와 50대의 우리가 보는 바라나시는 좀 다를 것 같아. 그때는 갠지스강에서 일출도 꼭 보고 싶다.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네.
참! 바라나시 골목길 가이드는 내가 맡을게. 나 그때 길 잃어서 동네 애들에게 길 물어보고 용돈 건넨 이후로, 그 동네 길 찾는 법을 완전히 익혔거든. 지금도 그 골목길에서 길 찾는 법을 기억하고 있어. 아무래도 2033년에도 그곳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