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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Oct 11. 2022

욕망에 충실한 그녀들

넷플릭스 영화 추천_<레베카>, 2020


뮤지컬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내가 본 뮤지컬이 아니더라도, 여러 뮤지컬 음악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중 티브이에서도 종종 나와서 익숙해져 버린 곡 뮤지컬 <레베카>의 '레베카' 


옥주현과 신영숙으로 대표되는 댄버스 부인의 넘버 '레베카'


<레베카> 뮤지컬을 본 적도 없고, 영화로 본 적도 없어서 

내용을 전혀 몰랐지만, 이 노래를 통해 대략적으로 맨덜리라는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이 죽은 레베카를 떠올리며 새 안주인인 여주인공을 무시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 영화 <레베카>가 있길래, 

무려 워킹타이틀의 작품이길래, 

레베카 뮤지컬을 보기 전에 보고 가면 이해가 더 쉽겠다 싶어 (언제 보러 갈지 모르지만ㅋㅋㅋ)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 네이버에서 '영화 레베카'를 검색했는데 

이 영화가 아닌, 1954년 작 히치콕 작품이 먼저 나온다. 

그리고 이 영화들과 뮤지컬은 '대프니 듀 모리에'라는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워낙 스릴러 물 고전영화의 대표 격인 히치콕은 알았지만 그가 만든 스릴러 영화들의 원작 소설가가 이분인 줄은 몰랐네.



대프니 듀 모리에는 영국 서스펜스 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소설들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고! 멋져! 


소설 <레베카>는 1938년에 썼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80년이 넘도록 영화로 뮤지컬로 계속 재창작되고 있음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레베카> 2020 

감독 : 벤 휘틀리 

주연 : 릴리 제임스, 아미 해머 

작품 소개 : 갓 결혼한 젊은 여성이 남편 가문 소유의 저택에 도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황량한 해안, 웅장하지만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저택에서, 그녀는 남편의 전처 레베카의 그림자와 싸우게 된다. 이미 세상을 떠난 비밀의 여인 레베카. 그녀의 흔적은 여전히 저택을 지배하고 있다.




작품 소개를 보면, 딱 그간 내가 뮤지컬 넘버 <레베카>를 듣고 생각한 그 줄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후의 내용은 어떤 이야기일까.



레베카는 유령인가, 

맥심은 왜 새로 결혼을 하고서도 죽은 레베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녀를 방치하는가, 

댄버스 부인은 왜 그녀를 무시하고 미워하는가.

이 작품의 장르는 호러인가, 심리극인가, 스릴러인가.



영화의 줄거리


영화는 주인공 화자인 '나'가 꿈속에서 보는 저택 맨덜리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화자의 회상에 따라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몬테까를로의 한 호텔로 우리를 이끈다. 


돈은 많지만 교양은 없는 벤 호퍼 부인의 비서로 함께 여행하고 있는 나. 


'나' 역할을 맡은 릴리 제임스는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단아하고 정갈한 미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작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에서 그녀를 인상 깊게 봤다. 


사사건건 잔소리를 퍼붓는 벤 호퍼 부인은 오늘 이 호텔에 잉글랜드 최고의 대 저택의 주인 '맥심 드 윈터'가 올 테니 그 옆 자리로 식사 예약을 하고 오라고 지시한다. 그 과정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 '나'를 맥심이 도와주고, 그녀는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벤 호퍼 부인이 맥심과 대화하던 중 급히 심부름을 시키는데 그 사이, 그녀는 향수를 뿌리고 오는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다음 날 아침 벤 호퍼 부인은  몸살이 나고,

부인이 아픈 동안 '나'는 혼자 밥을 먹을 기회를 갖게 된다. 


상류층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나'는 손님들만 앉을 수 있는 테라스에서 식사하기를 원하고, (당시에는 상류층과 고용인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나눠져 있었나 보다) 거부당하지만, 맥심이 그녀를 도와준다. 


그렇게 상류층들끼리만 앉을 수 있는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게 된 '나'


주문을 하라는 웨이터의 말에, 평소 상류층 여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를 즐기던 '나'는 그녀들이 주문했던 음식을 똑같이 주문한다. 그러다가 아침부터 굴요리를 맛보는 부끄러운 상황이 되었지만, 맥심은 오히려 그런 그녀를 귀엽게 봐준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가 잘 통해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된다. 


돈이 많고 센스 있고 사려 깊은 그를 동경하게 된 '나' 

그동안 만나왔던 여자들과는 다른, 가난한 고아지만 대화가 통하는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맥심.


두 사람은 벤 호퍼 부인이 아픈 틈을 타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나'는 처음 느끼는 행복감에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풍경에서 실컷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로가 호감을 느끼게 된 후 

건강이 회복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벤 호퍼 부인은 내일 당장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 소식을 듣게 된 맥심은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에게 청혼하고 


'너는 그곳에서 살기 힘들 것'이라는 벤 호퍼 부인의 악담을 뒤로한 채 

'나'는 행복하게 대 저택 맨덜리를 향해 간다.



그러나...

벤 호퍼 부인의 말처럼 이곳은 '나'에게 쉽지 않은 곳. 

엄청나게 화려하고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냉정하고 사무적인 하인들 앞에서 '나'는 불편하고 

유일한 안식처인 남편은 맨덜리에서 좀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맨덜리 저택은 온통 R이라는 이니셜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유령이 되어 저택 곳곳을 지키고 있는 듯 느껴질 정도로 레베카는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것. 이 저택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다. 


특히 이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마치 '나'가 레베카의 자리를 일부러 빼앗기라도 한 듯이, '나'를 경멸하며, 레베카의 모든 것을 칭송한다.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와 외모, 풍성한 머릿결, 세련된 안목과 우아함.....

마치 '가난한 고아인 너와는 차원이 다른 높고 우아한 분이야. 레베카 님은....'이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듯한 댄버스 부인. 


이는 남편 맥심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레베카에 관한 어떤 언급도 피하며, 레베카와 연관된 모든 것을 불편해한다. 마치 사별한 아내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모두들 이야기하듯 특별하고 또 특별했던 여인 레베카가 그의 아내였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두문불출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한밤중에 집안을 서성이는 몽유병을 갖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언급도 남편은 싫어했다. 


아무에게도, 그 어떤 것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던 '나'


그러다 만나게 된 맥심의 누나는 유일하게 '나'를 예뻐해 주고 좋아해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었고,

'나'는 과거에 레베카가 즐겨 열었다는, '무도회'를 열고 싶다고 말한다. 


무도회를 준비하며 '나'는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는다.

그렇게 냉정하고  차갑던 댄버스 부인도 웃으며 그녀를 돕고, 그렇게 그녀는 이 대 저택 맨덜리에 적응을 해가는가 했는데....



----- 여기서부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무도회가 처음이었던 '나'는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고심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하인이 고민하는 그녀에게 벽에 걸린 붉은 드레스를 입은 초상화를 가리키며 저 드레스가 어떠냐고 제안을 한다. 

저택 안에 걸려있는 수많은 초상화 중에 그 그림이 제일 예쁘다며.

맥심의 고모님 초상화라는 그 그림을 따라 드레스를 만든다니!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나'는 신이 나서 드레스를 맞추고 무도회 직전까지 맥심에게 드레스를 공개하지 않는다.



드디어 무도회 날.

드레스에 어울리는 검은색 머리 가발까지 착용하고 한껏 들떠서 무도회장으로 등장한 '나'


그러나...

맥심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한다.

그 드레스는 바로 '레베카'가 입었던 드레스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것은 댄버스 부인이 놓은 함정이었다. 

댄버스 부인은 확실히 그녀에게 못 박고 싶었던 것이다.


'너는 레베카 님과 레벨이 달라. 어딜 감히.... 이 저택은 레베카 님의 것이야. 영원히...' 


서러움에 눈물 폭발한 '나'를 누나가 위로해주며 괜찮다고 다시 나가서 무도회를 즐기라고 한다. 



별수 없이 아무 옷이나 입고 나온 '나'

근데 왜 여기서 잠옷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지..ㅋㅋㅋ깜짝 놀랐네.

사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된다. 갈등과 고독이 극에 달하는 드레스 씬.

이후의 전개는 그다지 놀랍지도, 기발하지도 않은, 게다가 너무 빠른 전개라서 압축 편 보는 줄. 


그러던 어느 날,

인근 바다에서 배와 함께 시체가 발견되는데.

놀랍게도 그 시체는 레베카였다. 


레베카가 죽은 후, 시신을 발견해 장례까지 치렀던 맥심.

그러나 진짜 레베카의 시체가 발견되고 그때 장례를 치렀던 시체는 진짜 레베카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자 경찰은 맥심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맥심은 왜 다른 시체를 레베카 인양 급히 장례를 치른 것일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나'는 맥심에게 다그쳐 묻고....

맥심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백한다.


레베카는 남편인 자신을 두고 온갖 남자들과 놀아나며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외모와 매력으로 홀리며 마음대로 군림했고, 맥심은 그 모든 것을 경멸했지만 사회적 지위 때문에 그것을 문제 삼지 못했다고. 그런데다 급기야 다른 남자의 아기를 가졌다며 자신을 죽이라고 도발했고, 맥심은 분노를 참지 못해 그녀를 죽였노라고...


그때부터 맥심의 불안정한 심리가 이해가 된 '나'는 적극적으로 그를 돕기로 한다. 

증거를 없애고, 맥심의 무죄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그녀.


그리고 결국,

레베카는 임신이 아닌 암이었고, 죽음을 앞두고 있던 그녀가 맥심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죄의 의미인가?) 


이제 맥심과 '나'가 맨덜리에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았는데.

레베카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댄버스 부인은 결국 맨덜리를 불태우고, 자신도 추앙해 마지않는 레베카처럼 죽음을 선택한다. 




'나'에게는 왜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1인칭으로 회상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맥심도 단 한 번도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없다. 

실제로 인물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레베카'는 수없이 언급되고, 심지어 제목도 레베카인데.



'나'가 이름이 없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가난한 고아, 여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레베카는 여신급 미모와 아우라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인 것도 같은 맥락인 듯.



하지만 '나'는 자신의 욕망에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했다.

'아내와 사별한 부자 남자'를 타깃으로 꽤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했으며,

그 남자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남자를 도와 남자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부분이 평소 뮤지컬 넘버 <레베카>에서 느꼈던 그 연약한 '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1938년에 쓰인 이 작품 속 여성들의 면면이 

각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남자들을 주도할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에 박수를.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와 '댄버스' 였어. 



노래만 듣던 뮤지컬 <레베카>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수수하지만 매력 있는 릴리 제임스의 연기가 궁금하다면,

이상하리만치 맹목적인 충성을 보여주는 댄버스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관람을 권합니다. 


블로그 평을 찾아보다 보니 

원작 소설은 훨씬 더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소설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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