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파리를 추억하며_엄마에게

-그림에 실어 보내는 편지 7. Paris, France.

by 초록풀잎

엄마, 엄마와 함께 유럽을 여행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네요. 그때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나이가 참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세상에, 그때 엄청 젊었었어요. 여행 다니기 충분히 젊은 나이였네요. 엄마랑 25일간, 런던에서 시작해서 파리와 프랑스 남부,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그때 참 좋은 것 많이 보고 좋은 것 많이 먹고 엄마랑 이야기도 많이 하고 좋았는데 그쵸.


엄마는 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예요?

저는 음식 중에는 바티칸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로마에서 먹은 리조(쌀맛) 젤라또, 포지타노에서 먹은 해산물 리조또, 베네치아 기차역에서 쭈그리고 먹은 피자가 생각나요.


경치로는 피렌체의 두오모와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본 석양, 포지타노의 풍광, 생폴의 골목길, 니스 해변의 반짝이는 바다… 정말 생각나는 게 너무 많네요. 모든 게 좋았지요.


모네 마을 ‘지베르니’에 갔던 것도,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 그림을 봤던 것도 참 좋았고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 앉아 쉬던 것도 좋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행을 생각하면 비 오는 밤 파리가 생각나요.


그날 유람선을 타기 위해 갈 때만 해도 그렇게 비가 올 줄 몰랐는데, 유람선에 타서는 반짝이는 에펠탑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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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릴 때 비가 얼마나 쏟아지던지. 배에서 안 내릴 수도 없고 우산도 없고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엄마와의 여행은 다 내가 계획하고 리드하는 여행이다 보니 우산을 준비 못 한 제가 얼마나 한심했게요. 그런데 유람선에서 내려서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그때 왜 택시 탈 생각도 못 했을까요) 우리 둘이 빗속에서 시야라도 확보하려고 손을 이마에 대고 급히 걸었던 그 순간이 생각나요. 이상하게도 웃음이 자꾸 나왔었죠. 그 상황이 어이없는데도 웃겨서... 파리여서 그랬겠지요. 에펠탑이 보이는 센강 변이어서 그랬겠지요. 엄마와 함께여서 더 그랬겠지요.


그날 지하철을 타고 민박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말리면서 또 웃음이 나왔어요.


참 그리고 엄마, 로마 진실의 입에서 줄 서서 사진 찍을 때 엄마가 내 사진 찍었는데 흔들리게 나와서 제가 이렇게 찍으면 어떡하냐고 속상해해서 죄송해요. 엄마가 미안해하며 다시 찍으라고 했지만, 순서는 이미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 있어서 엄마 좀 민망하셨죠. 그게 뭐라고 엄마 민망하게 해서 죄송했어요.


다음에 엄마와 여행을 갈 때는 우산을 꼭 준비할게요. 아니다 우산이 없어야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려나요? 또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지만, 비를 맞는 것도 기억에 이렇게 생생하게 남으니 말이에요.


엄마 우리 또 어디 여행 갈까요?

우리 함께 멋진 풍경도 함께 보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어요.


여행을 위해 체력도 다져 놓으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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