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함께 지워요_아빠에게

-그림에 실어 보내는 편지 8. Machu Picchu, Peru.

by 초록풀잎

아빠,

저는 어렸을 때 아빠가 일본 출장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시는 선물들이 그렇게 좋았어요. 열면 연필 꽂는 곳, 지우개 놓는 곳이 따로 있는 펼칠 때 2단으로 펼쳐지는 그 필통 기억하세요? 학교에 그 필통 가져가면 얼마나 친구들이 부러워하던지요. 아빠는 우리 나이에 갖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 삼남매 마음을 잘 아셨던 거 같아요.


저 어렸을 때 사주셨던 ‘요리교실’ 장난감 말이에요. 후라이팬에 햄버거 패티 구우면 ‘지이익’ 굽는 소리나는 그 장난감이요. 저는 그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중학교 갈 땐 ‘파나소닉 카셋트 플레이어’를, 고등학교 갈 땐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사다 주셨죠. 필요한 걸 말씀드리기도 전에 미리미리 채워 주신 선물들이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신승훈에 열광할 때 신승훈 콘서트 표를 선물해주시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기였을 땐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표도 선물해주셨죠. 신승훈, 이상은 등 제가 좋아하는 가수 새앨범이 나오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사다 주신 우리 아빠. 배려심 깊은 그 선물에 항상 감사했어요. 제 마음 미리 아시고 채워주셨던 아빠.


제가 아이를 낳고 보니 그렇게 해주신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새삼 느껴요. 저는 딸이 필요한 거, 갖고 싶어하는 거 알고 항상 그냥 주지 않고, 조건을 걸게 되더라고요. ‘숙제 다하면 사 줄게’, ‘방 청소하면 사 줄게’ 그러면서요. 아빠는 어쩜 그렇게 아낌없이 미리 채워 주셨을까요?


아빠는 출장으로 일본도 자주 가셨고 미국과 인도네시아도 자주 가셨죠. 그런데 아빠가 40년 넘게 일하고 퇴직하시던 날 깨달았어요. 아빠는 출장으로만 해외를 가 보시고 여행으로 가신 건 저희 부부 신혼 때 같이 갔던 태국 푸켓이 유일하단 걸요.


그래서 아빠 칠순 때 보내 드린 유럽여행이 저는 기대가 많이 됐어요. 워낙 오래된 역사 속 공간 보는 거 좋아하고 멋진 풍경 보는 것도 좋아하고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그런 아빠에게 유럽은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 멋진 공간이었나요? 좀 더 젊을 때 갔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지만 지금이라도 많이 다니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 때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률이 1,2위를 다투던 이 곳 브라질이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확진자 수가 확 줄어들었어요. 엊그제는 처음으로 하루동안 사망자가 하루도 안 나온 날도 있었어요.


아빠, 코로나 발생률이 좀 더 안정적으로 줄어들면 이곳 브라질로 오세요.

엄마랑 함께 우리 이곳 남미를 여행해요.


출장이 아닌,

해야 할 일이 없는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여행을 아빠에게 선물할게요.

일정도 계획도 제가 다 알아서 할테니 아빠는 눈에, 마음에, 사진으로 많이 많이 담으세요. 아셨죠? 이곳에 오실 때까지 건강관리 잘 하시고 체력관리도 잘 해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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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아빠 이 편지를 쓴지 어느덧 1년이 지났네요. 결국 아빠, 엄마는 브라질에 오시지 못했고 저희끼리 마추픽추에 갈 수 밖에 없었네요. 우리 한국에 돌아가면, 아빠 가고 싶은 곳 우리 함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