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풀잎 Feb 01. 2023

낯선 서울에서의 하루

여행 온 것 같이 낯설어 >.<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이틀밤을 자고 난 월요일 아침.


병원 방문 예약이 있어 집을 나섰다.

좀 먼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 나는 교통카드가 있는데 어린이 요금을 내야 하는 율이가 문제였다.


이전에 교통카드를 항상 사용했었기 때문에

자판기에서 표를 구입해 본 적이 없다.


브라질에서 살 때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닌 다른 상황일 때, 혹은 부당한 상황일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말이 안돼서 묻거나 따지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엄마들이 다들 한국 가면 우리는 논리 있게 따질 수 있다!라는 것이 좋다고들 했다.

브라질에서는 그런 상황에 놓이면 말이 안 되므로 그냥 지레 포기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뭔가 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다 한글로 쓰여 있고, 한국말로 물어볼 수 있는데 말이다.

자판기에도 다 한국말로 쓰여 있으니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고 자판기 앞에 섰는데



지하철 표 구입 자판기에는 카드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니 왜......... 카드가 안 되냐고요.


지갑 안에는 어제 서율이가 할머니할아버지 외삼촌 외숙모에게 세배하고 받은 돈 중 일부인 5만 원 권 한 장이 달랑 들어있었다.


표를 구입할 수 있는 창구도 없는 상황.

돈을 바꿔야 했다.


그래서 편의점에 갔다.

그 와중에 지난번 한국 출장을 다녀간 남편회사 브라질 법인 교포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한국 편의점에서는 현금을 안 받아요. 그래서 좀 곤란했어요."


그게 말이 돼? 현금을 안 받는다니?라고 말도 안 된다며 한참을 말했었지만,

문득 편의점 앞에 서니 작아지는 내 마음.


이것저것 먹을 것을 고르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현금되지요?"


그 질문에 정말 황당하다는 아주머니 표정.

"네? 현금이요? 당연히 되는데.."


"아 누가 편의점에서 현금 안 받는다고 해서요...."


"그럴 리가. 나는 무슨 소리인가 한참 생각했네요. 당연히 받지요"


다행이다.

내가 5만 원 권을 꺼내자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 5만 원짜리라서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러면서 잔돈을 거슬러 주셨다.

그 돈을 가지고 다시 자판기로 가서 어린이 요금을 선택하고 환불가능한 1회용 카드까지 포함해서 구입완료.

카드를 받았다.


(이때 편의점에서 티머니 카드를 사서 충전했으면 되는 거지?

 나 그거 몰라서 결국 하루종일 자판기에서 1회용 권 샀다가 환불받고 또 사고 환불받고 또 사고 환불받고.....)


여하튼 지하철을 탔는데

이 날은 마침 내가 새로 구입한 아이폰 14를 막 받아서 지하철에 탄 날이었다.

내 애플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야 다음 진행이 되는 상황에서 비번을 까먹어 계속 시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가방에서 폰을 꺼내 사용하면서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

다들 폰을 보고 있어서 아무도 내 폰에 관심 없는데

혼자 괜한 상상을 한다.


누군가 지하철 문이 열리는 순간에 내 폰을 낚아채서 내려버리면 어쩌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카페에 가방 놓고 노트북 펴 놓고 핸드폰 올려놓고 화장실 가는 거...

아주 유명한 이야기지. 나도 그러니까...

근데 3년 동안 남미에서 지내오면서 내 몸은 이미 완전 방어적

지하철에서 폰을 맘 놓고 못 보겠네..ㅋㅋㅋㅋㅋㅋ

(어제 아빠 차를 타고 조수석에서 폰을 보다가 문득 가방 밑으로 폰을 숨기는 나를 발견.

와 나 진짜.... 브라질레이라 다 됐네.ㅋㅋㅋㅋㅋㅋ)



주황색 라인 3호선을 타고 가다 중간에 종로 3가에서 보라색 5호선을 타고 가야 한다고 하니까

율이가 "볼리비아에서 케이블카 타는 거랑 똑같네?" 한다.

" 맞아. 거긴 집들이 높은 곳에 지어져 있어서 지하철을 지하에 안 만들고 공중에 케이블카로 만든 거란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볼일을 본 후,

율이랑 너무 배고파서 김밥을 먹으러 갔다.

이전에 다니던 스타일의 익숙한 분식집.

김밥과 어묵탕을 먹기로 하고 주문을 하러 갔는데 마땅히 주문할만한 공간이 없다.

물과 단무지 김치 셀프 코너만 있고, 바로 주방이네?

뭐지?



"주문을 어디서 하는 건가요?"

라고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 나는 한국말 사용자로서 당당히 물었다.


그러자 사장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저 뒤에 키오스크에서 하셔도 되고요, 저한테 하셔도 돼요."


네? 키오스크요?


3년 전에도 간혹 키오스크가 있는 식당들이 있었다.

사용해보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키오스크와 동시에 작은 주문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메뉴판을 갖다주고 주문을 직접 자리에 와서 받아주시기도 했었다.


갑자기 촌놈이 되어 아주머니에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 낯설어.

나 브라질에서는 혼자 스스로 다 할 수 있었고, 포어만 좀 미숙했는데

여기 오니까 한국말만 능숙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것 같아.

밥 먹고 나오면서 sns에서 많이 보던 '인생 네 컷'이 보이길래 율이랑 둘이 들어가 한 장 찍어봤다.ㅋㅋㅋ

추억의 스티커 사진이잖아.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

마스크를 쓰고서도 스티커 사진을 찍는 열정!



다시 지하철 역사에 들어와 티켓을 끊으러 갔다.

아까 구입한 1회용 카드에 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1회용이겠지.

그래서 다시 또 1회용 권으로 받고, 기존 카드를 어디에 반납하는 건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근처에 마침 창구에 사람이 있기에 가서 여쭤봤다.

내가 서 있던 자판기 뒤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환급 기라고 쓰여 있는 자판기 보이시죠? 저기에서 환급받으시면 됩니다."


왜 또 저걸 못 봤대.

한 기계에서 다 하면 안 되냐며..... 가서 500원을 환급받고

다시 티켓을 끊었다.


이번 목적지는 광화문 교보문고.

20년 말에 출간된 내 책이 2년이 지난 지금

출판사 행사로 평대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구경하러 찾아갔다.

브라질에 있을 때 출간되어 서점에 꽂혀있는 걸 본 적 없는 내 책.

마침 내가 들어오자마자 누워있는 걸 보게 됐으니 타이밍 무슨 일?

어린이 코너에 찾아가 누워있는 책을 보고 인증을 찍었다.

꽂혀 있는 책도 ㅋㅋ


그 와중에 내 책에는 관심 없고 전천당에 꽂혀서 서점에 앉아버린 따님.


나는 그간 보고 싶던 신작 책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읽을 수 있는 책들로 둘러싸인 이 공간을 맘껏 누렸다.

그나저나 광화문 교보에 푸드코트 대신에 스타벅스가 생겼네.

스벅에서 오랜만에 찐한~ 뉴욕치즈케이크를 먹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던 핫트랙스로 향했다.

브라질은 문구류가 품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높다.

문구덕후의 피를 받아 문구를 좋아하는 율이가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이제 곧 한국 가니까 한국 가서 사줄게"를 연발했다.


그래서 핫트랙스에 데리고 갔는데

신이 난 율이.

샤프도 사고, 펜촉 두 개 달린 신기한 펜도 사고, 그림그릴 노트도 사고~

스티커 천국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간판에, 모든 물건에 한국말로 쓰여 있는 게 낯설다는 율이.

아 우리가 이런 세상으로 돌아왔구나.

한국말로 다 쓰여있는 세상. 우리나라로.


이곳을 나가 있던 3년 만에

한국말만 할 줄 아는 바보가 되어버렸지만,

곧 적응이 되겠지?! 제발...


#한국적응기 #3년 만에 한국 #한국 낯설어 #한국여행 왔어요 #서울구경 




작가의 이전글 브라질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