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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May 09. 2018

나는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나  

구병모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 리뷰

나의 독서는 굉장히 편협하다.
소설을 주로 읽고 가끔 에세이를 읽는다.
역사책을 읽고 싶지만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얕은 나의 독서력 때문이겠지.

누군가 왜 소설을 읽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답한다.
웃음과 감동과 공감이 넘쳐나는 재미있는 소설.

우연찮게 그런 내 마음에 꼭 맞는 소설을 발견했다.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위저드 베이커리>를 쓴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이 자그마한 책의 표지를 보고 청소년 소설인줄 알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는데...

글이 너무 좋다.
  
처음 한 페이지 읽고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는데 끝까지 그 감동이 이어진다.
  
로봇이 인간의 마음과 표정과 성장을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인간의 생애를 색다르게 들여다보는 소설.

나는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생각하게 하는 소설.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p184


가장 멋진 구절. 이 책의 제목을 뽑아 낸, 이 책의 주제와도 같은 문장.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쓰다보니 너무 많았다.
그래도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문장들.

                                                  



이유는 모르지만 눈앞의 사람을 울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그를 사로잡는다. 시호는 아프다, 그래, 일단 아픈 것으로 판단하자. 은결은 카운터 문을 열고 나와 통곡과 함께 흔들리는 시호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얹는다. 여기까지는 맞을 텐데 이런 때는 어떻게 상황을 이어가야 하더라. 울지 마세요였나, 시원해질 때까지 우세요인가. 무슨 일이세요. 저한테라도 말씀해보세요. 따뜻한 차를 타드릴까요. 어디 편찮으세요. 구급차를 불러드릴까요.
무슨 수로 인간은 그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말 한마디를 골라 건넬까. 눈앞의 사람이 아픈지 슬픈지 분하거나 억울한지 또 달리 무슨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마이크로 단위의 시간동안 확정하고 가장 그럴듯한 조치를 취할까. 어쩌면 사람이 그 때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확률의 문제일 뿐 실은 그들이 내놓는 모든 결론과 행위 또한 매 순간 몇 제타바이트에 이르는 오해를 동반하는게 아닐까. 그런 고민 끝에 은결이 고작 꺼낸 말이라곤 “의자를 가져다 드릴까요” 그러다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듯함에 고개 젓곤 다시 건넨 제안이 “저한테 기대시겠습니까” 이것도 좀 아닌 것 같지만 은결은 더 이상 연산체계를 바로 잡느라 도리질할 필요가 없다. 애쓰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며 고개 든 시호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웃고 있어서다. 울음과 웃음이 한 얼굴에 존재하는 게 사람에게는 범상한 일일지 모르나 은결은 이런 아이러니를 분석 및 정렬하지 못한다. 시호는 어깨를 들먹이며 웃느라 호흡이 불규칙하다. 그녀의 온몸에 고여 있던 판별 불능의 감정들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어깨를 따라 출렁거린다. p108~109
  
“무너져 내린다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명정의 생각으론 장례를 둘러싼 애도와 남겨진 자들의 복합적인 감정이 오전 6시, 아침상을 차리는 시간에 이어가는 화제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말 그대로 무너지는 게 엎어지거나 자빠지는 거지 뭐야”
명정은 자신이 조금만 더 교양이란 게 있었다면 차근차근 논리적 또는 철학적으로 풀어주기라도 했을 것을, 두루뭉술하게 회피해버리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지만 그래봤자 이런 주인을 만난 로봇의 팔자가 별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생물을 상대로 미안이라니, 팔자라니. 은결 역시 대답이 절실해서 묻는 건 아닐 터다.
“저런 겁니까”
국그릇을 상에 내려놓고 은결은 거실 텔레비전을 가리킨다. 뉴스 보도 중 삽입된 자료 화면으로 노후 건물의 철거현장이 보인다. 그 자리에 분명 있었던 것이 어떤 신호를 시작으로 한순간의 소음과 함께 없었던 것으로 되어버리는 현장이다. 꺽이고 부서진다는 점에서 외관상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무너짐은 정말 저 무너짐과 같은가. 무너진다는 건 결국 그 현상을 대하는 사람의 슬픔이나 분노에 좌우되는 게 아닌가. 명정은 앞으로 은결에게는 되도록 비유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수치나 물성으로 표현 가능한 언급만 하는게 좋을까 싶다가도, 실제로 그런 말만 골라 하는게 더 어려운 일임을 곧바로 깨닫는다. 인간이 수천 년에 걸쳐 누적해온 발화의 양식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전해 내려온 이상은. p112
  
“보편적인 삶은, 아니 그냥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한 쌍의 젓가락 끝이 달걀 프라이의 중심을 찌르자 진한 노른자가 번져가는 얼룩처럼 흘러나온다.
“이거 만져봐”
“평소대로 반숙인데 뭔가 문제 있습니까”
“됐으니까 만져보라고”
은결이 달걀 노른자를 건드리자, 실처럼 흘렀던 노른자가 본격적으로 깨지면서 손가락을 휘감는다. 그동안 내내 부쳐온 달걀의 촉감을 은결은 이제 처음으로 알았다.
“어때?”
“뜨겁습니다. 끈적거리고......비릿합니다.”
“맞아, 그런거야”
은결은 고개 숙여 제 손을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삶이 달걀이라는 줄로 알아들었으나 곧 지시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촉각 센서가 그저 온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했을 뿐이며 인공피부에 달리 손상이 없었지만 인간 어린이라면 빨갛게 짓무를 가벼운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데다,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 쉽게 부서져 버리는 그 무엇. p 114-115
  
이 비율은 언제부터 급락했던가. 대학에 들어가 바빠졌을 때부터....로 보이지만 실은 세탁소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던 그날 이후부터다. 그날 은결은 제 어깨에 기대어진 시호의 머리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섬유유연제 비슷한 냄새를 들이마셨고, 시호는 제 몸 속에 있던 온기의 한 조각까지 그날 모두 쏟아놓고 떠나버린 듯했다. 그 뒤로 바싹 마른 빨래와도 같은 날들이 시호에게 이어지고 있었음을 은결은 알 길이 없다. 그 빨래는 다려지지도 개켜지지도 않은 채 빨랫줄에 걸려 때때로 바람에 나부끼면서 먼지만 쌓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러니 행거의 자리 한 칸을 비우기 위해서라도, 계절 지난 원피스를 언젠가는 꼭 배달해야 할 것이다. p138
  
“여건만 허락한다면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싶고, 옹색한 생활의 굴곡을 감당하고 싶어. 서로 비슷한 일과 사물에서 긴장을 느끼고 그것을 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 싶어. 슬픔이나 근심의 타이밍이 서로 다르더라도 공감의 여지만은 남겨두고 싶고, 어쩌면 계산되지 않는 그 다름이야말로 함께하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수도 있겠지. 같은 날 같은 시에 나란히 죽는다는 꿈은 비현실적인 낭만이지만, 적어도 서로 오랜 시차를 두지 않고 사라지는게 좋겠어. 지금까지 말한 것들 가운데 대부분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가능성을 버리고 싶지는 않아”
싶지 않아.
싶어.
하고 싶음과 하고 싶지 않음이 난무하자 은결의 사고 회로는 그것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아무리 방대한 지식을 저장하고 매순간 새로운 학습을 진행한들, 감정의 문제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로봇의 미답지는 수면 아래 잠긴 빙하와 마찬가지임을 시호는 모르지 않는다. 발설되지 않은 의도를 은결이 미루어 짐작하기란 어렵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팔이 아프니 짐을 들어달라는 요청과는 차원이 다르며, 상대가 로봇 아닌 사람이었던들 의미의 확장에 익숙지 않은 자라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이란 때로는 상대방을 향해 자신조차 그 독법을 알지 못하는 행간을 읽어내 달라는 부당한 호소를 거리낌 없이 하는 존재 아닌가.
“무슨 뜻인지 알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시호는 으레 그런 법이려니,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에코백을 멘다.
“무엇보다도 나는 꿈을 꿀 줄 아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하고 싶어” 은결은 사람이 말하는 꿈에 크게 두 가지 다른 뜻이 있음을 안다. 그녀의 입에서 터지는 겹자음의 경음은 푸른 멍이 든 자리에 붙인 반창고 같다.
“잠들어 꿈을 꾸고 거기서 깨어날 줄 아는 사람, 꿈을 그리거나 그렸던 적 있는 사람과 살아갈 거야. 깨어난 뒤 남아 있는 것이 악몽 뿐이라도 상관없고, 깨어져 형태를 잃은 꿈의 파편을 쓸어 담으면서 살아갈 뿐이라도 괜찮아. 거기에 뭉개고 뒹굴지만 않는다면, 손대지 않으면 적어도 베이지는 않을 테니까.” p172~174
  
  

  
그토록 사소한 일상을 통해 익히 경험해 왔으면서, 고성능 컴퓨터가 탑재된 로봇이 언제까지나 곁에서 삶을 지탱해주리라는 착각을 한때나마 하다니. 시간의 칼날이 평등하게 그 목덜미를 향한다는 생각을 어째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p196
  
마지막으로 반듯하게 개킨 순면 수건에 코를 묻고 부드러우면서도 산뜻한 울샴푸 냄새를 맡았던 적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려본다. 돌이킬 수 없이 얼룩졌으나 어떻게든 입고 걸치고 끌어온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표백하는 불가능한 일에 대해 상상해본다. 그리고 낡은 옷가지 속에 파묻었던 때 묻은 기억들을 말갛게 씻어낸 뒤 햇볕에 널고 싶었던 매 순간의 충동들을 돌이켜본다. 지금까지 건조기 안에서 웅크리고 지내온 날들을, 물기 한 점 없이 바싹 말라 바스라지기 직전이었던 최소한의 생활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아이에게 이염되기를 바라는, 삶을 응시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자존심과 신념 같은 것들을 꼽아본다. p237
  
그는 인간의 시간이 흰 도화지에 찍은 검은 점 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그 점이 퇴락하여 지워지기 전에 사람은 살아 있는 나날들 동안 힘껏 분노하거나 사랑하는 한편 절망 속에서도 열망을 잊지 않으며 끝없이 무언가를 간구하고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날 물속에 떨어져 녹아내리던 푸른 세제 한 스푼이 그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다. p249

#구병모장편소설#한스푼의시간#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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