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바른 거울이고 싶다

엄마도 1학년 (8)

by 초록풀잎

음악을 즐겨 듣는 친구 부부의 8살 난 아들은 나도 모르는 인디밴드의 노래부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까지 술술 잘도 부른다. 철인 3종 경기, 스노보드, 수영 등 각종 운동을 항상 하는 친구 부부의 8살 난 딸은 얼마 전 수영대회에 나가 은메달을 땄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8살 난 우리 딸은 밥 먹으면서도 책을 보고, 차 타고 가면서도 책을 보고, 길을 가면서도 책을 보려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참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는 거겠지.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양성평등교육 활동지’라는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일의 항목을 적어 놓고 그중 엄마가 하는 일, 아빠가 하는 일,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을 표시해보는 것이었다. 그 활동지를 별생각 없이 읽다가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글쎄 아이가 엄마가 하는 일을 시장보기, 아침식사 준비,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하기, 욕실 청소, 설거지하기, 빨래하기, 저녁 식사 준비, 빨래 개기, 옷장 정리라고 체크를 하고, 아빠가 하는 일은 직장에서 일하기, 나의 공부 도와주기, 무거운 짐 들기, 나랑 놀아주기, 고장 난 물건 고치기, 쓰레기 버리기라고 체크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은 물건 정리정돈, 내 방청소 두 가지였다. 그래서 엄마가 하는 일 10가지, 아빠가 하는 일 6가지, 자신이 하는 일 2가지로 정리를 한 것이었다.

보통 집안일을 내가 전담하고 있다 보니 이렇게 쓰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어서 아이에게 물었다. ‘나랑 놀아주기’와 ‘나의 공부 도와주기’도 거의 엄마인 내가 다 하는데 그 항목을 왜 아빠가 하는 일로 썼느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아이 말이 그마저도 엄마에게 쓰면 아빠가 하는 일이 너무 적어서 아빠 쪽으로 몇 개 보내야 해서 그 두 가지를 골랐다고 한다. 아니 이왕이면 욕실 청소, 빨래 개기, 청소기 돌리기 같은 것을 보내지 왜 그것을 보냈냐고 하니 아이가 미안하다며 급히 수정을 했다. 어차피 다 엄마가 하는 일이지만 굳이 아빠에게 옮겨 적어야 한다면 적당할 만한 항목이 나랑 놀아주기와 나의 공부 도와주기라고 생각한 아이. 아이는 자신과 놀아주거나, 공부를 봐주는 일은 아빠가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다른 집안일은 아빠가 하기엔 좀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집에서 재택근무로 틈틈이 일을 하고 있다.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일은 꽤나 벅찬 일이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이도 저도 잘 해낼 수 없다. 그 와중에 어쨌든 최우선 순위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보니 아이 스케줄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 아이 등하교 시간과 학원 등 하원 시간을 지켜서 움직여야 하고, 아이의 간식과 식사를 제 때 챙겨야 하며, 숙제를 도와주고, 놀이를 간간히 같이 하며 제시간에 씻기고 재워야 하는 스케줄. 그것을 중심으로 나는 그 사이에 내 일을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한다. 집안일을 한 밤중에 할 수 없으니 내 일은 자연스레 아이를 재우고 난 후로 미뤄지고, 그래서 밤에 일하느라 피곤한 날이 많다. 그런데 아이는 이런 나의 속도 모르고 집안일은 다 엄마 일, 직장에서 일하는 것과 아이와 놀아주는 것, 공부 봐주는 것은 다 아빠 일로 규정지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 아이 눈에 그렇게 보였겠지. 2012년 아이를 낳던 해에 남편이 해외 발령이 났다. 아이를 갖기 위해 준비하면서, 아이를 낳고 해외 발령에 따라가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나는 남편이 혼자 돈을 번다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둘 다 일을 하던 신혼 때는 분담하던 집안일이 자연스레 내 몫으로 돌아왔다. 해외에서 3년을 지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보던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기 쉽지 않았고, 결국 재택근무로 가끔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렇게 만 7년을 보냈더니 아이 눈에는 엄마가 집안일을 전담하고 아빠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이제부터라도 집안일을 좀 나눠서 해야겠다. 남편이 회사일로 바쁘긴 하지만 빨래 개기와 쓰레기 버리기, 주말 식사 준비와 설거지 등을 남편에게 맡겨야겠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해주어야겠다. 엄마와 아빠의 일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엄마가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드니까 너랑 아빠랑 좀 나눠하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남편이 집안일을 안 하는 것이 확실해졌으므로, (목격자가 있다!!!) 그에게 일을 많이 맡겨야겠다. 비록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나는 내 일이 있고, 그 어렵다는 초등 학부모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