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감수한 날

엄마도 1학년(7)

by 초록풀잎

아이가 학원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목에 놀이터가 있다.

대개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딸도 그 놀이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잠깐이라도 들렀다 가곤 하는데 지난 월요일에도 학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딸은 놀이터에서 놀아도 친구를 만나지 않으면 10분 이상 놀지 않기 때문에 나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곤 한다. 그런데 그날은 우연찮게 친구가 있었다. 지난 분기 방과 후 생명과학 수업을 같이 들었던 다른 반 친구라고 했다. 나는 친구를 만났으니 좀 더 오래 놀겠구나 싶어서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놀다 들어오라고 말했다. 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알겠다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이것저것 치우고 하다 보니 어느새 40분이 넘게 지나있었다. 아이가 올 때가 됐는데 왜 안 올까. 평소에는 그렇게 오래 놀지 않는 아이다 보니 데리러 가야겠다 싶어서 집을 나섰다.


아까 헤어진 놀이터로 슬슬 걸어가면서 혹시나 아이가 집에 오는 길에 엇갈리지 않게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그러면서 놀이터에 아이가 없으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따라 키즈폰도 집에 두고 가서 연락할 방도도 없는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놀이터에 아이가 없었다. 놀이터 주변 다 둘러보아도 없었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우리 동 근처 놀이터로 갔을까? 다시 우리 집 쪽으로 오는 길에 잔디밭 쪽도 살펴보고, 정자 쪽도 살펴보았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 놀이터에도 없으면 어디로 찾으러 가지? 문득 김영하 소설집 <오직 두 사람>에 실린 단편 [아이를 찾습니다]가 생각났다. 그 소설 속 부부는 나란히 카트에 아이를 싣고 밀고 가다가 한 사람은 시식하느라, 한 사람은 물건 고르느라 정신을 판 사이 아이를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그 아이보다는 크고 내 전화번호도 알고 우리 집 주소도 아는데, 단지 안에서 길을 잃을 일도 없으니 집에 올 수 있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불안했다. 아이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 무서웠다. 이 놀이터엔 있기를. 만약 없다면 아이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아까 같이 놀던 아이 집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다면? 그 아이의 이름도 모르는데 생명과학 선생님께 아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면 연락처를 찾아 주실 수 있을까. 아니면 관리사무소에 가서 아파트 전체에 안내방송을 부탁해야 할까.


얼마 전 저녁 먹는데 그런 안내방송이 나온 적이 있었다. 아무개 아이를 찾고 있으니 댁에 있다면 부모에게 연락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을 들으며 아이와 그런 대화를 하기도 했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저렇게 엄마가 찾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이다. 아이는 그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만약 친구가 놀러 가자 권했다면? 한참 재밌는데 안 따라갈 수 있을까? 그래도 연락도 없이 그러진 않겠지. 우리 딸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 집 앞 놀이터


부디 이 놀이터엔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그곳에도 아이는 없었다. 다시 놀이터 주변을 돌았다. 아이들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없었다.


그새 집으로 갔을까. 내가 이 놀이터로 오는 사이 집으로 쏙 들어갔으면 못 마주쳤을지도 몰라. 긴장된 마음으로 집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나오기 전에 신발 정리를 하고 왔으니, 현관문을 열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이 보이면 들어온 것이고 그렇게 흐트러진 신발이 없다면 바로 문을 닫고 본격적으로 단지를 수색해보자고 말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흐트러진 신발이 없었다.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어 현관문을 닫으려는데 내가 한쪽으로 정리해놓은 신발들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이 눈에 띄었다. 분명 오늘 아침 신고 나간 검은색 구두였다.

집 안을 향해 딸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응 엄마!”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당장 집에 들어가 아이를 안아주었다. 어디 갔었냐고 물으니 같이 놀던 친구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왔다고 한다. 그러느라 길이 엇갈렸나 보다.


앞으로는 키즈폰 없이는 혼자 놀이터에 가지 않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10분만 더 기다렸다가 데리러 나갈걸....

굳이 못 참고 나가서, 사서 근심, 걱정, 불안, 초조를 겪었다.

그래도 앞으론 키즈폰 없이 아이와 헤어지지 않겠다.

나는 아이를 혼자 놀게 두고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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