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심부름

엄마도 1학년(6)

by 초록풀잎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 반이 좀 넘은 오늘, 5월 27일.

처음으로 등굣길에 함께 하지 않았다.


3월 4일부터 어제까지, 매일 아침 아이를 데려다주고 하굣길엔 데리러 갔다.

단 한 번도 아이는 혼자 가거나 혼자 오려하지 않았다. 학원 차를 타러 가거나 오는 건 단지 안에서 쭉 길 따라가면 돼서 그런지 자신감 있게 혼자 가곤 했는데 좀처럼 학교 오가는 길은 혼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 지지난주부터인가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랑 친해져서는 매일 그 아이와 하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혼자서 등하교를 하는 아이였는데 내가 데리러 가면 둘이서 손 꼭 잡고 나와서 데리러 간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둘이 같이 집에 오면 되겠다고, 어차피 공동현관에 우리 집 현관까지 비밀번호 누르고 다 들어오니 단지 안에만 같이 오면 집에 올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또 그건 안 된단다.

친구랑 같이 오더라도 엄마가 왔으면 좋겠단다. 그래서 이렇게 등하교 함께 하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싶어 아이가 원하는 데로 등하교를 계속하는 중이다. 아이의 친구와 함께 오는 날은 찬 밥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이번에 이사 오면서 이 초등학교로 배정받는 단지가 총 4개였는데, 그중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인 지금 우리 단지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가는데 학교가 가까워서 마음이 무척 편하다. 그래 봤자 타 단지도 그렇게 멀지 않지만 나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학교가 있다는 게 엄마 입장에서 참 좋다.

그런데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 가는 길에 횡단보도도 하나도 안 건너도 되는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는 꼬박꼬박 데려다 달라고 한다. 왜 그런 걸까. 길을 몰라서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공동현관을 나서자마자 매일 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를 딱 만났다.

문득 등교하는 아이들을 졸졸 쫓아갈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가방을 메어주며

‘친구랑 같이 가. 엄마 안 간다.’ 그랬는데

아이가 뒤도 안 돌아보고 ‘알았어.’ 하면서 친구 손을 꼭 잡고 가버렸다.

아 이 허전함 뭐지.

몰래 뒤 따라 가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쨌든 입학 후 처음으로 나는 학교 현관까지 가지 않았다.

KakaoTalk_20190529_231603845.jpg 친구 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봤다

그런데 오늘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아이가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이 5학년 5반 선생님께 뭐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 다녀왔어”


진심으로 놀랐다. 학교가 꽤 커서 입학식 날 교실 찾아다니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아이 처음 학교 갈 때 초반에 교실까지 데려다주고 그다음 주부턴 앞서 걸어가라고 하고 뒤따라 걸어가곤 했다. 평소에 길을 잘 못 찾는 아이라서, 학교 오가는 길에 아직 자신감이 없는 아이이므로.

입학식 일주일 후 급식실에서 교실 오는 길에 친구랑 둘이 길을 잃어 힘들게 교실을 찾았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낯선 교실로의 심부름이라니!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런 심부름을 시킨 적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왜 너를 부르셨냐고 물으니 자신도 모르겠다고.

3 분단 넷째 줄에 앉아있는 우리 딸을 부르신 걸 보니 아마도 평소 우리 딸이 선생님 말씀을 제법 잘 들었나 보다. 그런데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길을 잘 못 찾는 아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시는 것 같다. 아셨다면 낯선 길을 혼자 다녀오라고 하진 않으셨겠지.


‘우리 교실에서 계단으로 2층을 더 올라가. 5층까지. 그러고 나서 오른쪽으로 가면 5학년 5반 표지판이 보일 거야. 거기 담임선생님께 전달해드리면 돼. 할 수 있겠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아이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못 한다고 말할까, 아니면 다른 친구랑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행히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길로 가니까 금방 5학년 5반이 나왔고 성공적으로 심부름을 마쳤다는 것이다. 잘했다고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었더니 자신도 뿌듯한지 자꾸만 묻는다.


“왜 뭐가 자랑스러워? 뭘 잘했어?”라고 말이다.


모르는 길을 용기 있게 잘 다녀와서 멋지다고, 자랑스럽다고 계속 말해 주었다.

아이의 첫 심부름이 성공해서 참 다행이다.

혼자 가는 길이 낯선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해준 첫 심부름.

이제 좀 더 용기 내서 갈 수 있겠지.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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