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1학년(5)
아이의 하교 시간에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또래 아이들이 학교 정문에서 엄마를 만나기 직전에 가방에서 주섬주섬 커다란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아이 손보다 커 보이는 그 휴대폰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 목에 걸면 목에 무리가 갈 것 같고, 아이가 그냥 들고 다니기엔 떨어뜨리기도 쉽고 잃어버리기도 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주게 되면 손목시계 모양의 키즈폰을 해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딱히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아이도 사달라고 하지 않아서 굳이 사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등하교를 함께하길 원했고, 학원 차가 오는 곳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길 원했으므로 아직까지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어느 날, 아이 학교 간 사이에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교 시간 빠듯하게 길을 나선 참인데 지하철 5호선에서 갑자기 방송이 나왔다. 앞 역의 정전 때문에 열차가 이 곳에서 멈출 예정이라며 모두 하차하여 준비된 셔틀버스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5호선 상일동역까지 가야 하는데 군자역에서 내리라며 강동역까지 지하철 역 4 정류장 구간을 셔틀버스로 이동하게 해준다고 했다. 시간이 촉박한데 그래도 셔틀을 타고 가면 금방 가겠지 하고 출구로 나선 나의 생각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지하철 한 대에서 대낮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내릴 수 있다는 걸 전혀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나와서 셔틀버스를 타기 위한 줄을 섰다. 나도 나름 곧바로 열심히 걸어 나왔는데 이미 줄은 100미터는 돼 보였다. 셔틀이 아무리 자주 온대도 이 버스를 타는 것은 하세월일 것이 뻔했다.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급히 검색을 해보니 일반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다만 좀 돌아가야 해서 1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이었다. 아이 하교 시간인 2시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 버스를 타고 가면 빨라야 3시는 돼야 도착할 것 같았다. 아이는 평소 내가 일이 있는 날 하교 후 도서관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책 읽으면서 기다리곤 했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 있으라고 하면 되는데 그 말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물론 택시를 타면 빨리 갈 수 있겠지만 택시는 고려하지 않았다) 최근에 이사를 온 터라 아직 주변에 아이를 부탁할 만한 아는 엄마도 하나도 없고, 어쩌나 고민하다 결국 담임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오늘 아이와 2시에 정문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일이 생겨서 좀 늦게 됐습니다. 하교 후 도서관에 가 있으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담임선생님께서 흔쾌히 해주겠다고 답장을 보내주시며 이렇게 덧 붙이셨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제가 전달할게요”라고 말이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를 위한 선생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래도 한편으론 아이에게 휴대폰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최근에는 아이가 학교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일이 잦아졌다. 아직은 혼자서 집 앞 놀이터에서 우리 집 찾아오는 것도 조금 두려워하는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평소 잘 가지 않는 먼 놀이터에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휴대폰이 없다는 게 좀 아쉬웠다. 아이가 생각보다 늦게 올 때도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갑갑했다.
생각해보면 나 어릴 때는 아파트 앞에서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아도 엄마는 어김없이 내가 노는 곳에 찾아왔고, 어떤 때는 창문으로 큰 소리로 나를 부르기도 했었다. 그때의 엄마는 내가 나가 노느라 감감무소식이어도 불안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직 아이가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아이가 겁이 많은 편이라 그런지 마음을 편히 먹기가 힘들다. 아이가 잠시만 혼자 나가 있어도 혹시나 낯선 곳에서 헤맬까, 친구랑 헤어지고 우리 집 못 찾아올까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휴대폰이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 5월 5일 어린이날, 하이마트를 지나다가 우연히 내 눈에 번쩍 들어온 것이 있었다. <키즈폰 무료>라고 쓰인 안내문이었다. 끌리듯 하이마트에 들어가 덜컥 2년 약정을 했다. 그래도 나름 나의 소신대로 인터넷은 안 되고 전화와 문자만 되는, 아이의 위치 확인이 되고 휴대폰 요금이 제일 저렴한 시계형 키즈폰으로 말이다.
휴대폰을 개통하고 나니 아이는 장난감이 생긴 듯 좋아했다. 나도 하교 시간에 아이 위치 확인을 할 수 있어 아이가 교실에 있는지, 현관에 내려왔는지 알 수 있어 편리했다. 그러자 슬슬 아이를 학교에 혼자 보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커져간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혼자 갈 수 있어?”, “집에 혼자 와 볼래?” 묻고 아이는 아직 안된다고 한다. 그래도 학원 갈 때는 혼자 가보라고 했더니 가보겠다고 도전했다. 저 멀리 혼자 걸어가는 아이 모습을 15층 집에서 내려다보면서 또 불안했는데 학원 차에 잘 탔다고 전화가 오니 더없이 마음이 편했다. 좋구나. 역시.
아이가 사달라고 조르면 생각해 볼 계획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나의 필요에 의해 사게 되어버린 키즈폰. 그런데 구입 후 검색해보니 시계형 키즈폰이 고장이 잦고 AS가 잘 안 된다며 일반 폰을 사주라는 선배 엄마들의 의견이 많았다. 너무 준비 없이, 알아보지도 않고 구입했구나. 제발 2년만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덧)2년은 커녕 5개월도 못 쓰고 충전이 안 되어 사용을 못하게 되었다 절대 비추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