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1학년 (4)
아이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물을 쏟았다. 집에서는 물론이요, 외식을 할 때도 무조건 쏟았다. 네다섯 살쯤부터는 식당에 가면 의례히 자신이 물을 컵에 따르기를 즐겨했는데 특히나 컵에 찰랑찰랑하게 따르기를 좋아했다. 그러므로 컵이 넘쳐 물이 흐르는 건 예사요, 걸핏하면 컵을 쓰러뜨렸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진 않은데 항상 그랬다. 그때는 그게 너무 화가 났다. 번번이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았고 자신이 물을 따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와 소리를 질렀다. 특히 식당에서 그러면 식당 분들에게 죄송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자꾸 만들고 냅킨을 낭비하게 되니 미안했다. 그런데 화를 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엔 아무렇지 않아 졌다. 그냥 ‘또 그랬구나!’ 하며 의연하게 뒤처리를 하게 됐다. 아이는 크면서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요즘에 다시 심해졌다. 요즈음 가만 지켜보니 이유는 ‘책’에 있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면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닮았는지 심심한 걸 못 참고 멀뚱히 이야기하면서 밥 먹는 걸 잘 못 참는다. 그래서 항상 책을 옆에 펼쳐놓고 밥을 먹는데 밥 먹는 동안 눈은 책에, 손은 밥을 향해 있다. 그러다 보니 옆에 놓여있던 물 잔을 또 시도 때도 없이 쏟는다. 책의 위치를 바꾸려 들고 옮기다 건드려 쏟기도 하고, 밥을 먹으려고 팔을 움직이다 쏟기도 하는 것이다. 책을 보지 말라고, 빨리 밥 먹고 가서 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아랑곳 않는다. 내가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으면 밥 한 입 먹고 방으로 뛰어가 보고 온다. 한 입을 다 씹을 동안만 보고 오겠다는 게 아이의 논리다. 아이가 물을 쏟을 때마다 부주의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만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어제 아침에는 글쎄 물도 아닌 우유를 쏟았다. 흰 우유가 식탁 주변에 온통 튀고 컵까지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깨지지 않아 너무 다행이었지만 닦을 생각을 하니 화가 났다. 그래도 꾹 참고 소리는 지르지 않았는데 대신에 조용히 빈정댔다.
“너 정말 너무 심하지 않니?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아이가 풀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
거기에 내가 한 마디 덧 붙였다.
“넌 이제 액체류는 아무것도 마시지 마! 어떻게 그렇게 부주의할 수 있니?”
그러자 아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말한다.
“물도?”
정말 아이 목소리가 얼마나 간절하던지. 설핏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럼! 물도 먹지 마. 아무것도 마시지 마.”
등교시간에 늦어 급히 아이를 챙겨 등교를 시켰다. 바닥은 하나도 닦지 못하고 말이다.
아이를 등교시키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안아주며 말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아이는 서러웠는지 또 울먹인다. 학교 가는 길에 너무 혼을 냈나 싶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학교로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식탁 주변을 닦고 또 닦았다.
냄새도 나고 미끌미끌하고 멀리서 보면 허옇게 보이고, 한숨만 나왔다.
문득 나 어릴 적 초등학교 때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 엄마는 부엌에서 요리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키셨다. 지금의 우리 딸처럼 나도 부엌에서 무언가 엄마 일을 돕는 것이 재미있었다. 감자도 깎고 썰고, 콩나물도 다듬고 두부도 썰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보글보글 맛있는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끓인 날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두툼한 장갑 두 개를 주며 뚝배기를 들고 식탁까지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그리 중한 일을 나에게 시키다니. 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조심조심 뚝배기를 들고 걸었다. 떨어뜨릴까 무서웠다. 그래서 더욱 조심했다. 그런데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손에 힘이 빠졌는지, 뚝배기가 뜨거워서 놓쳤는지 모르겠지만 뚝배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산산조각이 났다. 그 안에 보글보글 끓고 있던 된장찌개도 고스란히 뚝배기 조각들과 섞였다. 혼이 난 기억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엄마가 뒤처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국물과 건더기와 뚝배기 조각들의 조화라. 그것을 대체 어찌 치워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우리 딸이 떨어뜨린 게 된장찌개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저 액체일 뿐인 우유여서, 그리고 컵이 깨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맛깔나게 끓인 된장찌개 뚝배기를 홀랑 깨 먹어 버린, 어린 날의 나를 혼내지 않은 엄마에게 감사하며 나도 아이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자 마음먹었다.
하교 한 아이를 만나자마자 사과했다.
“아침에 엄마가 너무 화내서 미안해”
그러자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나도 우유 쏟아서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