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시간 사수 대작전

엄마도 1학년 (3) 방과 후 수업 신청기

by 초록풀잎


아이가 입학한 후 매일 꼭 체크해야 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아이의 가방 속이다. 입학식 날 선생님은 각자의 이름이 적힌 투명 파일을 하나씩 나누어주셨다. 그 안에 매일 그 날의 알림 내용을 담아 보내 줄 터이니 꼭 확인 후 답신을 보내라는 말씀이셨다. 우유급식신청서, 학부모 봉사 신청서, 과학 경진대회 안내문 등이 매일 아이의 가방을 통해 배달되어 왔다.


제일 처음 받은 안내문은 ‘방과 후 신청 안내서’였다. 초등 자녀를 키우는 친구들로부터 익히 들어와 알고 있던 방과 후 수업. 친구들은 대개 2~3개 정도 수업을 시키는데 그걸 하는 날은 하교가 늦어져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아이와 함께 방과 후 수업 목록을 한참을 보았다. 아이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고 했다. 수업료를 보니 일반 백화점, 마트 문화센터와 비슷한 비용이었다. 한 과목당 한 달에 3만 원에서 많게는 5만 원 정도의 비용이었는데 여러 과목을 수강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현재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일단 그 비용이 꽤 크고, 거기에 평소 하던 미술학원과 학습지 하나를 더 하려면 학원비만 한 달에 45만 원이 넘는다. 거기에 피아노 학원을 다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방과 후 수업을 섣불리 여러 개 신청했다가는 학원비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매일 수업 후에 방과 후 수업을 하나씩 듣고 오라고 하고 싶었지만 비용을 생각해서, 또 다른 학원에도 다녀야 하니까, 엄선하여 3과목만 골랐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하는 ‘생명과학’과 ‘요리’, 그리고 ‘음악줄넘기’였다.


학교의 안내지에는 최대 8과목을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8과목이라. 3만 원씩만 잡아도 한 달에 24만 원인데, 그 비용을 내고 소수정예도 아닌 이 수업이 무슨 메리트가 있지?’ 생각하며 의기양양 세 과목만 신청했다.

그다음 주, 신청자가 많아 추첨을 해야 하는 과목 안내가 나왔다. 추첨 과목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거의 전 과목이 다 목록에 있었다. 내가 신청한 세 과목이 다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나의 책모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신청한 화요일 오후 생명과학 수업에 꼭 돼야 하는데 안되면 어쩌나.

추첨을 해야 하는 과목이 너무 많고 학생들도 너무 많아서 3일에 걸쳐 과목을 나눠 강당에서 추첨을 했다. 생명과학 추첨을 하던 날, 나는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아이는 대기 9번을 뽑았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 나는 독서모임에 못 가게 되는 것인가.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아이들이 많이 몰린 걸까. 아는 엄마를 통해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방과 후 수업 신청할 때 같은 시간대에 중복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8개를 다 신청하고 그중 되는 것 중에서 선택해서 수업을 신청한다는 것을... 나만 몰랐나 보다. 생명과학과 같은 시간에 하는 수업을 하나 더 신청했으면 아니 두 개 더 신청했으면 그중 하나는 걸릴 텐데. 그렇게 안전 조치를 해놔야 했었는데 나는 정말 같은 시간엔 하나만 신청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리고 되면 다 수강을 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엉엉.


그렇지만 나만 몰랐고 다들 그렇게 신청했기 때문에 기대를 해볼 만했다. 누군가는 중복 당첨되어 생명과학을 포기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간절히 기도했다. 추첨을 했던 날 저녁 5시에 생명과학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당첨되었지만 수강 포기 한 아이들이 있어서 대기 9번이던 우리 아이에게 기회가 왔다고, 하겠느냐고! 당연히 하겠다고 감사하다고 전화기에다 절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남은 두 과목도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됐다. 또 이렇게 쫙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그런데 이틀 후 있었던 요리와 음악 줄넘기 추첨에서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 아이는 뽑기 운이 없는지 요리는 무려 대기 43번을 뽑았고, 음악줄넘기는 대기도 아닌 그냥 X를 뽑았다.


방과 후 수업 세 과목을 시키려던 나의 계획표는 전면 수정됐다. 월, 금은 4교시라 1시에 끝나고 수, 목은 5교시라 2시에 끝나고, 화요일만 방과 후 수업을 듣고 3시 반에 끝나는 스케줄이 만들어졌다. 막상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고 아이를 보내보니 아이와 나에게 이만큼 좋은 수업이 있을까 싶다. 문화센터 정도의 비용에 문화센터보다 좀 더 학습적인 커리큘럼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진행하니 하교 시간이 늦춰진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는데 말이다. 쉽게 말해 문화센터는 내가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리고 와야 하는데 방과 후 수업은 아이 혼자 가서, 혼자 수업 듣고, 하교시간도 늦춰지니 말이다. 이 엄청나게 좋은 시스템을 만만하게 보고 안일하게 신청한 내가 한심스럽다. 그래도 화요일 생명과학이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덕분에 나는 일주일에 딱 하루, ‘살아갈 날들을 위한 읽고 쓰기’ 모임에 마음 놓고 나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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