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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Nov 29. 2019

강심장이 되고 싶다

중고거래하다가 슬퍼진 날

요즘 연일 중고거래로 바쁘다.

이사를 준비하며 아이가 보던 전집들을 팔고, 또 이사 가서 볼 책을 사느라 지역 맘 카페와 지역 중고거래 장터, 그리고 대표적인 중고 사이트 중고나라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고 있다.


엊그제 아끼던 전집 한 질을 중고나라에 내놓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책을 번호대로 줄 맞춰 꼽으면서 보니 대부분 책들이 새책같이 깨끗했다.

아이가 자주 본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고는 사용감도 없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이걸 팔아야 또 아이 나이에 맞는 책을 살 수 있으니 아깝지만 중고나라에 올렸다.


중고나라에 올리면서 설명에

'새책 같아요'라고 썼다. 몇 권 빼놓고는 대체로 새 책 같았고, '새책 같아요'라고 썼다고 해서 중고책을 사면서 전권이 모두 새책 같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 중고는 중고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감안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이 짧았다.

올리자마자 사겠다고 나선 그 엄마는 오늘 택배로 내 책을 받고선 하자가 있는 책 세 권을 사진 찍어 보냈다.

한 권은 모서리에 약간의 흠집이 있었고,

한 권은 마지막 페이지 책 표지와 마지막 장 사이가 벌어져 있었고,

또 한 권은 그 벌어진 표지를 테이프로 붙인 것이었다.

나는 내가 테이프를 붙여놓고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었고, 책을 팔기 전 표지만 확인하고 보냈기에 벌어져 있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모서리 흠집 정도는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엄마가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새책 같다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하길래.

죄송하다고. 책을 전체적으로 보고 올려서 몰랐다고 사과했다.

그랬더니 그 엄마가 1만 원 환불을 요청했다.

(새 책의 정가는 42만 원이고 나는 18만 원을 받았다.)

나는 중고 책인데 70권 중 세 권 정도 흠집은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고,

그 엄마는 새 책 같다더니 이런 게 어딨냐고 따졌다.

나는 미개봉 새책도 아니고 중고인데 정상가의 반값도 안 되는 돈으로 완전한 새책을 원하냐고 물었고,

그 엄마는 완전한 새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 하자를 왜 고지 않고 팔았느냐며,

나에게 '아이 책 가지고 사기 치지 말라!'며 책을 착불로 다시 보낼 테니 환불해달라고 했다.

입금 안 하면 경찰서에 가겠다고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열 받아.

이게 내가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사기라니.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경찰서라니... 아놔


별생각 없이 새책 같다고 한마디 썼다가

무슨 너덜너덜 헌 책을 새책 같다고 속여서 판 사람 취급을 당했다.

하자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만, 이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중고인데 뭐 얼마나 새책을 원해. 진짜.

그렇게 따질 거면 새책을 사지. 왜 중고책을 사서 난리야.


근데 이 문자를 주고받는 내내, 아니 처음 문자가 왔을 때부터 내 심장이 어찌나 콩닥콩닥하는지.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누군가로부터 싫은 소리 듣는 게 너무 싫다.

그에 맞서 싸울만한 깡다구도 없고 강심장도 없어 그런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문자를 받으니 기분이 안 좋을 뿐 아니라 힘이 쭉 빠지면서 심장이 나댔다.

 

평소 싸울 일도 없고 싸워 본 적도 없어서 내 심장이 이토록 약한가 보다.

강심장이면 좋을 텐데...


결국 책을 다시 받기로 하고 문자는 끝냈는데 입맛도 없고 몸도 으슬으슬한 게 안 좋았다.


그런데 오후에 중고나라에서 알림이 왔다. 사고 싶은 책 알림 걸어놓은 게 울린 거였다.

열어보니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시세보다 4만 원 싸게 내놓은 것이 보였다. 그럼 그만큼 책이 오래되거나 그래야 하는데 작년에 산 책이라고 쓰여 있었다. 빨리 팔고 싶은가 싶었다.

직거래 위치가 안 쓰여 있어서 물어보려고 카톡을 했다. (전화번호가 없고 카톡만 있었다)

직거래를 물어보니 울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안 되겠다 했더니 안심거래를 하자고 했다.

그게 뭐냐 물었더니 안 해봤냐며 사이트에 돈을 입금하면 내가 책을 받아 본 후 구매확정을 눌러야 자기에게 돈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안심거래를 해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보겠다고 하자 지금 다른 사람 계속 연락 오니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다른 사람과 거래하시라고 전 생각해볼게요.라고 답했다.

그리고선 안심거래가 어떻게 하는 건지 네이버에 검색해보았다.


주의사항에 쓰여 있었다.

전화번호 없이 카톡만 쓰여 있는 사람,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내놓은 사람,

카톡 프로필에 가족사진 같은 게 올라와 있는 사람.


다 맞다!!!!!


안심거래를 한다고 하면 그쪽에서 url을 보내주는데 그게 사기 사이트라고 한다.


잠시 후 그 사람이 또 카톡이 왔다. 안심거래 안전하다며.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래서 전 그냥 직거래하려고요. 하고 말했더니 매우 아쉬워했다.


너무 찜찜해 친구 차단을 눌렀더니 그 순간 팝업창이 떴다.

해외 번호라며 사기를 조심하라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보니 카톡 창 맨 위에 홍콩 번호로 접속한 사용자라고 떴다.

에구구구 나 사기당할 뻔한 거?

안심거래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사기꾼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게 찜찜했다.

중고나라에 버젓이 올려져 있는 그 글을 사기꾼이라고 신고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방법도 모르겠고 무서웠다.


그러는 동안도 나의 손 떨림과 심장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오늘 하루 중고거래에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사기꾼으로 몰리고 사기당할뻔하고.

내 심장은 나대고.

손은 떨리고.


강심장이고 싶다.

이런 별거 아닌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의연함을 갖고 싶다.


앞으로는 직거래만 해야겠다.



) 한시간쯤  확인해보니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글이 게시판에서 사라졌다.

혹시 누군가 당했을까 싶어  찜찜했다.

그리고 얼마 ,  알림이 떴다.

같은 금액, 같은 , 같은 사진인데 카톡 아이디만 달랐다.

그래서 남편과 대화  알게  중고나라 게시판 우측 위에 있는 신고를 눌렀다.

사유에 이러저러해서 의심이 된다고 썼다.

잠시  확인해보니 글이 사라졌다.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한거겠지?




ps)  열 받는 일 있을 때 글을 쓰면서 정리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독서모임 선생님(싱싱 샘) 말씀이 생각나 적어보았습니다.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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