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너와의 여행인줄 알았는데..
두번째 문제는 돈. 돈이다.
무슨 자식을 돈으로 키워, 낳으면 알아서들 잘 커!
라고 누구가는 말하겠지만 돈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 기저귀값이나 분유값을 한번이라도 대주고 말하면 모르겠지만, 보통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들이 꼭 저런 말을 한다.(정작 자기는 기저귀 한 번 사본 적 없는 사람인 경우가 태반) 첫째 때는 나름 준비를 한다고 아이 몫으로 얼마간의 돈을 모아두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모아놓은 돈’이라니 이 얼마나 사치스런 소리인가! 당장 쓸 돈도 없는데? 아무리 긁어모아도 티끌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늘고 자산은 줄고 있다, 망할. 남편은 마음편히 생각하라며 자기 주변에 애 둘 키우는 집은 모두 마이너스 통장을 쓴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그래, 그것 참 희망적이다.
외벌이 기간이 늘어나는 것 또한 부담이었다. 아니, 이제는 맞벌이를 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맞벌이를 하는 한 선배는 아침에는 출근시간 때문에 등원도우미를 2시간 정도 쓰고, 오후에는 퇴근시간까지 하원도우미와 요일별로 다르게 방문교사를 부른다고 했다. 아이가 하나일때는 친정엄마에게 부탁했지만, 둘이 되니 너무 힘들어 사람을 쓸 수 밖에 없다며 ‘돌봄 공백’을 메우는 비용만으로도 백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출한다고 하였다. 벌어서 남는 돈도 얼마 없고 그냥 외벌이를 택하고 말지 싶다가도, 이렇게 아이가 크기를 기다리며 미루다가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무리해서 일을 계속 한다고 하였다. 매일같이 ‘다시 휴직할까?’와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지겠지’를 반복하며 말이다.
아이를 낳는것은 국내여행만 하던 사람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비유 했더랬다.
첫 아이를 낳고 나서 찰떡같은 비유라고 생각했었다. 첫째 아이 덕분에 살면서 처음 만나는 낯선 세계에 들어와 매일 새로운 경험을 했다.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책임감-아, 이런게 바로 모성이라는 것인가 싶은-도 발견했었다. 말도 통하지 않고 24시간 긴장해야하는 고단함이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람과 기쁨을 얻었고, 어떤 감정이든 더 꾹꾹 눌러담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더 깊이있게 바라보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공감할 줄 아는 내가 된 것 같았다. 그래, 내 삶은 풍부해졌고 이 해외여행은 분명 너무 좋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해외여행에 왔는데 갑자기 여권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계속 여기에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돌아갈 방법이 없다. 곧 끝날 여행인 줄 알았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이민이 된 것이다. 아니, 불법체류자 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계속 살 생각은 없었는데, 돈도 다 떨어져 가는데, 이제 더이상 새롭지도 않은데, 어떤 고생길이 펼쳐질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나 얼른 돌아가고 싶은데.
이제부터는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미뤄왔던 ‘아줌마’라는 호칭에 익숙해지기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오늘의 두줄>
이때부터였어요, ‘아줌마’ 대신 바득바득 사용하던 ‘젊줌마’라는 단어가 머쓱해지기 시작한건..
‘젊줌마’에서 ‘아줌마’로 신분이 변경되며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짝짝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