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by 첫둘셋
얘들아, 나 임신했어

친구1> 어머~ 축하해!! 둘째 당분간 안갖는다고 하지 않았어?

나> 그러게.. 그게 그렇게 되었어..

친구2> 그래도 축하해! 키우는 김에 다 키워버리면 나중에 편하다더라!

친구3> 나도 축하해! 남편도 좋아해?

나> 그게.. 몰라 우리 둘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남편도 별로 안좋아하고.. 솔직히 좀 우울해ㅠㅠ

친구1> 뭐가 우울해?


그래, 뭐가 우울할 일인가. 뭐가 그렇게 우울할 일인가 싶었지만, 나는 우울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 나는 새 생명을 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걱정들과 현실적인 어려움들을 뒤로 미뤄두고 아이 이외의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 오버스럽지만 이 아이를 잘 지켜내야 한다는 숭고한(?) 소명의식으로 무장되어 기분 좋은 떨림으로 가득한 나날들을 보냈다. 임신기간은 쉽지 않았지만 매일매일 보이지 않아도 내 안에서 커가는 생명체를 느끼며 신기해하고 감사했고, 이 아이를 마주할 날을 기다리며 아이로 인해 달라질 나의 삶을 기대하고 행복한 상상들을 했더랬다. 임산부는 좋은 생각만 해야 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어야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지금의 나와 아이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둘째는 어떤가.


이 아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모든 걱정들을 단숨에 몰고 왔다. 나는 이 아이가 갑자기 생김으로써 내가 포기해야될 것들을 자동적으로 계산하고 안타까워 했고, 머릿속에서 쌓여만가는 기회비용들 앞에 우울함을 더해갔다. 또, 생각지도 못한 감정으로 맞이하는 생명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거대한 굴레가 되어 나를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우울해서 울다가, 우울해하는게 미안해서 또 울다가, 울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첫째의 눈망울이 너무 예뻐서 또 울다가. 급변하는 호르몬의 노예라고 생각하다가도 내가 우울한 이유들이 너무 명백히 떠올라서 괴로워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첫번째는 사회에서의 도태, 경력의 단절, 원래의 내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아니 돌아가더라도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첫째를 낳고 이미 일년을 쉬었다. 임신을 한 채로 돌아갈 수 없으니 출산까지 앞으로 꼬박 9개월, 그리고 애가 태어나면 또 얼마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얼마간이 얼마간이 될지 가늠할 수 없어지자 이전의 삶과 지금의 내 모습 사이에 깊고 커다란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다. 금방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미뤄뒀던 일들이 나를 재촉했다. 동기들 중에 혼자서만 승급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학업도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이다. 복직이 위협받는 직장은 아니지만 휴직기간이 늘어난다는 것 자체로 뒤쳐지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고, 이렇게 완벽히 아줌마가 되어버린 내가 과연 돌아가서 이전만큼 잘 해낼수 있을지 닥치지 않은 막연한 불안감이 나를 흔들었다.


같지 않은 것은 비단 경력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평소에 굉장히 사교적인 편으로 결혼 전에는 매일매일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며 신혼집이 있던 서울을 떠나 잠시 친정에 들어가 살기로 했고, 그 이후 남편이 같은 지역으로 파견근무를 신청하며 본격적인 지방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서울에 있는 친구들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해 아이가 100일이 지나자마자 틈 날때마다 서울에 가서 친구집에 머물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던 것이다. ‘둘째가 태어난다면 이런 기행도 이제 끝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서울에 두고 온 모든 사람들과 이별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었다. 10년간 쌓아온 인간관계의 종말.


안녕 나의 직장동료들, 안녕 나의 친구들, 안녕 10년간 나와 함께 했던 서울의 모든 인연들.


금방 돌아올 것이라며 첫 아이를 낳고 내려오면서도 하지 않았던 이별 인사를 둘째를 임신한 지금, 기약없는 미래에 망연자실하며 마음속으로 해댔다. 나는 내 삶의 한 때를 함께하며 사랑했던 사람들 속에서 곧 잊혀질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과의 작별은 나의 20대를, 아이를 낳기 전의 내 본연의 모습을, 취향을, 자유로움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기억해주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질 일만 남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벌써부터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늘의 두줄>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벌써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고, 너 괜찮다고.

너 3년 뒤에 애 둘데리고 기차타고 서울 놀러가고 있다고.. (사람 잘 안변한다 걱정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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