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기치 못한 선물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들어온 너

by 첫둘셋

이제 막 첫째의 돌잔치 투어(?)가 끝나고 뒤따라오는 몇 번의 돌치레가 겨우겨우 마무리되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돌잔치를 여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게 생각하였는데, 첫번째는 우리의 가까운 친척들이 서울과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에 걸쳐 굉장히 넓게 분포(?)하기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내가 다른 사람의 돌잔치에 갔던 경험이 그리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황금같은 주말시간에 차에서만 꼬박 서너시간씩을 보내며 우리아들의 첫 생일파티에 오는 수고를 부탁하는 것도 불편한데다가, 그 자리에 초대한 사람과 초대된 사람은 막상 제대로 된 안부를 나눌만한 시간도 기회도 갖지 못한 채, 그저 모두가 줄거리를 알고 있는 잘 짜여진 하나의 축하공연을 치르기 위해 동원되어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판에 박힌 듯 돌아가는 축하행사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은 결혼식으로 끝내자고 이야기하며 우리가 생각해낸 대안은 돌잔치 투어였다. 우리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전라도, 경상도, 서울을 누비며 소규모의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실제로 안부를 묻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물론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제 막 돌이 된 아기를 데리고 누비는 전국 여행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한번의 돌잔치가 끝날때마다 아이는 흔히 돌치레라 부르는 것을 매번 겪어야했다.


장장 한달에 걸친 돌잔치&돌치레 시즌이 잘 끝나가나 했는데, 내 몸이 이상했다. 식사때마다 헛구역질이 나오고 속이 메스꺼웠다. 아침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뻔하고도 친절한 임신의 첫 장면처럼 놀랍도록 우악스러운 헛구역질을 했다. 첫 애를 임신하고 나서도 크게 입덧이 없었던터라 아침드라마들은 다 뻥이라고 생각했었다. 저렇게 입덧 하기 전에 생리가 안와서 무조건 임신사실을 알게 된다고, 요즘 드라마들 너무 현실반영 못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내 상태가 딱 그랬다. 현실을 부정해보았지만 가라앉을 기미가 없이 삼일째 이어지는 이유없는 헛구역질에 아침 일찍 첫 소변으로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두줄. 첫째와 둘째는 입덧에서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둘째의 임신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첫째의 돌잔치투어를 하던 그 한달동안 우리 부부는 자녀 계획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론적으로 당분간 둘째는 없다고 잠정합의를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렇게 셋이서 여유롭게 여행 다니며 행복하게 지내자는 외동파였고, 나는 형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 좋으니 당분간은 생각이 없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하나일지 둘일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아니다.’는 반쯤 열린 평화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무엇보다도 지난 일년 동안 육아를 하며 너무 힘들었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힘들었고, 둘 다 너무 지쳐있었고, 아이가 돌이 된 지금에서야 이제 겨우 ‘조금 살만 하다’고 느꼈다. 이 여유와 행복이 조금 더 오래 갔으면 하는 마음이 우리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반쯤 열려있는 문을 훅 열어버리고 이 친구가 이미 내 뱃속에 들어와있다니! 이 친구가 내 안에 들어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우리 부부도 여전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고 현대의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 있어 내 생에 3대 미스테리 정도로 남겨두기로 하고, 충격적인 임신테스트기를 받아든 후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오빠, 나 임신했어.”

“............어, 그래? 나 일단 출근할게.”


물론 본인도 매우 놀랐겠지만 듣는 사람이 더 놀랄만큼 무미건조한 대답이 돌아왔다. 기쁨이나 설렘보다는 당혹스러운-나름 나를 배려하겠다고 그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이상하게 경직된-표정만을 남기고 남편은 황급히 집을 나서버렸다. 나 또한 원하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소식을 전하는 내 표정도 어정쩡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 앞에 으레 따라오는 형용사들로, 빈말일지라도 그럭저럭 평범한 말들로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 없이 첫째 아들과 남겨진 집에서, 갈피를 잃은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서운함과 당황스러움만 맴돌아 한참을 울었다. 첫째 아이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남편의 기뻐하던 목소리와 표정이, 방금 전에 마주한 낯선 얼굴과 교차하며 더욱 서글퍼졌다. ‘생명의 고귀함’이나 ‘존재자체의 기쁨’이기 전에 ‘준비되지 않은 삶의 무게’로 먼저 다가와버린 둘째. 이제 겨우 점일 뿐인 생명을 두고 내 안에서 휘몰아치는 감정들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이 날의 감정은 둘째를 키우는 내내 나를 괴롭히게 된다.


<오늘의 두줄>

피임은 늘 완벽하게 하자. 앞으로는 배란주기를 피한다든지 질외사정은 피임법으로 가르치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남편들은 연습을 하자.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밝고 환하게 웃으며 행복이 묻어나게 “정말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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