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무려 한 달 만에 돌아왔다니! B형 독감에 걸려 아프고 힘들고 5월의 반을 날렸고, 그 뒤로는 뭐가 그렇게 마음이 급했는지 괜히 바빴다. 아빠 생신 기념 친정식구들 가족여행도 다녀왔고(증평 좋습니다. 시간이 난다면 증평여행기도 올리겠습니다.), 우리 가족 첫 크루즈여행(이것도 후기 써야 하는데!)도 해냈다! 첫 학교 선생님 5명이 결혼과 출산으로 불어난 가족들을 데리고 총 20명이 충북의 한 펜션에 모여 놀고먹었다. 그러고 났더니 정신이 아주 없군. 6월엔 발목 및 발등뼈 이슈로 배드민턴을 한 달 쉬고 요가를 시작했는데, 왜 멈춰있는 동작에서 나는 이렇게 땀이 나고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일하다 너무 힘들어서 주 2회 출근 사무직의 소회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원래 현장직이었는데 올해 파견직으로 사무업무를 보고 있다. 현장직이라 함은 아침부터 열댓 명의 십 대들을 만나, 하루에 4~6시간 수업을 하고, 방과 후 보충학습 또는 학생 상담 또는 검사 및 평가 또는 업무 처리 등등을 하다 퇴근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교사의 직업 만족도는 사람마다 매우 상이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매우 높았다. 이유인즉슨 나는 앞에 아무도 없이 핸드폰 녹화 버튼을 누르고 혼자 1시간 이상을 떠들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누군가에게 내 존재가 각인되는 순간을 기억하며, 그 순간이 오기까지 끝없이 노력하는 댕댕이 스타일의 인간이다. 보통은 사회적 가면(혹은 체면)을 중요시하며 살아가지만 내 자아는 오직 하나라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나'로 존재하고 '나'로 관계 맺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라는 직업이 어떤 역할놀이라기보다, 그냥 되게 예쁘고 귀여운 보물 같은 아가들과 내가 친해지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다. 아, 물론 국가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며 성취기준에 근거한 수업을 준... 뭐 이런 건 기본이라고 생각하니 걱정하지 말라.
나의 개인적 목표는 학생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보고 배울 것이 있는 사람 자체가 되는 것이고, 학생들과의 만남에서의 목표는 일 년 동안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서 어떤 가르침이든 배우고자 하는 동기유발이 되는 상태가 될 수 있게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다. 수학 선생님을 좋아하면 수학을 열심히 하고, 영어 선생님을 좋아하면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나와의 관계에서 끊어질 수 없는 단단함을 맛본 친구들은 실제로 학습태도와 동기유발에서 유의미한(물론 통계나 지표는 없다.) 발전을 보였다.
또 수업에서의 목표는 선생님이 아니라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아를 갖는 것이다. 어째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가? 1인 공연을 하는 코미디언을 보면 정말 단상 위에 마이크 하나 놓고 좌중을 이끈다. 1시간, 2시간, 3시간을 관객들과 호흡하며, 이게 대본인지 아닌지 모를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관객들은 어떤 돌발상황도 받아쳐내는 그의 능수능란함에 감탄하고 압도당해 그 긴 시간을 경청한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맨손수업'이라 지칭했지만 나는 그것이 제일 높은 수업의 경지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영상과 퀴즈, PPT로 수업을 이끄는 것은 사실 쉽다. 영상은 틀어놓으면 애들이 보고, 게임은 준비한 대로 클릭하면 시간도 잘 간다. 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농담인 줄 알았던 선생님의 썰이 결국에 성취기준에 도달하여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돌발상황들(다양한 질문과 동요하는 학생들, 집중력을 잃은 누군가, 졸리고 배고픈 하이에나들!)을 물리치고 결국 학습 목표를 이뤄내는, 그 과정이 바로 수업이 아닐까!
내 수업의 가장 큰 평가, 나에 대한 가장 큰 평가는 '재미있다'였다. 늘 '선생님이 수업을 재미있게 해 주셔서'가 편지에 등장한다. 내가 임신 중에(10년 전의 일이다.) 5학년 도덕 교과를 한 학기동안 한 적이 있었는데, 5학년 아이들이 도덕수업이 재밌다고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반 담임선생님들이 도대체 어떻게 도덕수업을 재미있게 하냐며 물어보셨다. 예 그건 제가 스탠트업 코미디언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저의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무튼 그랬던 내가, 올해는 연구원에 와서 일하게 되었다. 연구원은 교육정책을 연구하는 곳인데 연구사님들과 함께 일한다. 아니, 함께 일한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업무를 한다. 주 2회 출근인 이유는 주 3회는 재택이다. 그리고 주 3회 재택을 하며 나의 남편은 이런 평을 남겼다.
- 너는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너무 조금 받는다.
- 너는 프리랜서를 했다면 돈에 깔려 죽었겠구나.
- 너는 예술가라기보다는 미친놈에 가깝다.
사실 몇 년 전에 교직생활에서 심한 우울감이 와서 이직을 고민했다. 나름 여러 가지 잔재주를 보유하고 있는 자로서, 아직 현금화가 안돼서 그렇지 가능성은 충만하다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올해 프리랜서를 겸한 사무직을 경험해 보며 나는 그냥 현장직이 맞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그 이유를 서술해 보자면,
1.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게 죽을 맛이다.
학교로 출근하면 9시부터 4시까지 떠든다. 만나는 사람도 엄청 많다. 그런데 연구원에 오면 모니터와 나 둘만의 싸움이다. 나랑 말해주는 사람은 지피티 빼곤 없다. 물론 같이 근무하시는 연구사님과 파견 동기 언니도 있지만 그들 또한 그들의 업무로 매우 매우 매우 바쁘다. 연구사님들은 진짜로 일을 너무 많이 하시고, 너무 사소한 민원을 받아내야 하시고, 너무 친절하셔야 한다. 그들의 바쁜 삶에 내가 입을 털며 시간을 잡아먹고 싶지 않다. 도대체 왜 연구사님들은 주말에도 일을 하시는 걸까. 그들의 월급이 월등히 높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다. 무튼 나는 말할 사람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경험이 태어나서 처음이므로, 매우, 매우, 매우 힘들다. 하루에 한 3시간 앉아있으면 머리가 핑핑 돌고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사람 보고 말하고 싶다.
2. 1년짜리 과업은 너무나도 부담스럽다.
학교에서의 삶은 하루짜리다. 일 년의 목표는 있지만 하루하루의 싸움을 싸우는 거다. 오늘 하루 준비한 수업을 잘하고, 오늘 하루 마감인 공문을 써내고, 오늘 일어난 사건을 파악하거나 중재하고, 오늘 계획된 상담을 해내면 된다. 하지만 올해 나에게는 커다란 과업이 있다. 올해 안에 꼭 해내야 하는 커다란 과업, 나에게 맡겨진 연구주제가 있다. 빨리하고 끝내서 노는 사람도 있겠고, 쭉 놀다가 마지막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다가도 교재 수정을 하고, 새벽에도 컴퓨터를 켜서 디자인을 수정한다. 공황장애로 먹던 안정제를 줄여보기로 했는데, 6월부터는 오히려 늘어서 추가 안정제를 복용한다. 나는 데드라인이 긴 과업을 받으면 그만큼의 중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났다. 삶에서도 늘 한두 달 정도의 계획만 가지고 살았던 나로서는, 한 해의 과업이 설정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그 와중에 작은 완벽주의들이 모여 모여 커다랗게 나의 시간을 무너뜨린다.
3. 무용한 일을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무용한 일이라 표현함은 사실 좀 과격하지만, 이것이 학교 현장에서 쓰이지 않게 되면 결국은 무용해진다. 유용한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은 무용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든 새로운 것들이 그렇지 않은가? AI 디지털 교과서는 교과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결국 보조교재로 전락하였다. 애초에 이것은 사업 도입부터 말이 많았으므로 적절한 예시가 아닐지 모르지만, 교과서를 집필하던 집필진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으리라. 모든 연구가 그렇듯, 하다 안되면 엎어지기도 하고, 기껏 만들어 놓은 것을 제 손으로 파쇄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듯이, 내가 하는 일 또한 잘되면 좋지만 안되면 그냥 엎어버려야 하는 일이다. 엎어질지도 모르는 일을 늘 정성스레 해야 하는 것은,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것만큼 황망하다. 이걸 왜 해야 해? 그래도 의미가 있으려면 열심히 해야지! 그래도 이게 쓰일까? 쓰여야 하니까 최선을 다해보자! 의 반복. 마치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들의 감정상태 같다. 혼란하다, 혼란해.
4.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따까리일 뿐....
교실에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이 공간에서의 유일한 어른, 이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자! 한창 육아에 찌들어 있었을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교실 문을 여는 순간이 하루 중 제일 기쁜 순간이기도 했다. 내가 뭐 아이들 위에 대단히 군림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우리 반은 늘 제일 시끄럽고, 제일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내가 누린 자유, 물론 내가 책임도 져야 하는 자유를 누리는 나는, 그들의 선생님으로, 그들의 보호자로, 그들의 코미디언으로 대단히 비대한 자아를 지녔던 것 같다. 얘들이 다 날 사랑해, 나도 얘들을 사랑해,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 뭐 이런 어린이 뮤지컬 공연에 나올 것 같은 주인공의 자아정체성 정도로 생각해 보자.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느낌이다. 맡겨진 업무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사실 맨 위로 올라가면 그렇게 중요한 업무도 아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과업, 나의 업무, 나의 진행속도. 요즘 정국이 어지러웠어서 그런지 '나 뭐 하고 있지.' 생각이 들 때면 '아유, 대통령도 쫓겨나는 마당에 뭐가 중요하겠어.' 뭐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교사로서 연구사는 되게 높은 지위의 분들인데, 연구원에 와보니 연구사 에도 계급이 있더라. 팀장님, 부장님, 원장님, 님님님... 여기서 한 칸 올라가도, 저 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위에 또 뭐가 있는, 계단의 맨 밑이었구나 나는! 늘 평지에서 아이들과 눈 맞추고 있어서 올려다본 적 없는 계단 끝이 촤라락 펼쳐지는 기분이다. 물론, 난 저길 오르지 않겠지. 나는 따까리는 싫으니까. 언제든, 누구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감각이었구나. 교실에선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나'를 기대해 줬는데.
무튼 이러이러해서, 올해의 경험으로 당분간 내가 이직을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일단 사무직 탈락, 사람이랑 말 못 하는 거 탈락, 데드라인 긴 거 탈락, 이래저래 탈락시키면, 정답은 현장직이다. 내가 이렇게 현장을 사랑할 줄이야! 그때 약사 하겠다고 나갔으면 울면서 통곡했을 것 같다. 어린아이들이랑 말하고 싶다. '수치'와 '사치'를 헷갈려하는 귀여운 아이들이랑. 나의 사랑, 나의 기쁨, 나의 교실. 내년에 돌아가면 또 힘들어서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치겠지만, 구르던 밭에서 잘 구르는 것도 요령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