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공학부 박영민
에디터 : 임재영
멘토란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한다. 처음이 서툰 사람에게,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은 더할 나위 없는 멘토일 것이다. 7A의 재학생 멘토 박영민 또한 그렇다. 학부에서의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대학생활 중 고민과 방황의 시간, 극복의 과정, 그리고 대학 생활을 통해 얻은 인생의 가치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학년의 마무리를 앞둔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멘토’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7A반 재학생 멘토로 LnL에 살고 있는 재료공학부 20학번 박영민이라고 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하고 있던 일들을 대부분 정리하고 LnL 관련 일이랑 공부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아마 랩인턴을 할 것 같아요.
하던 일들을 대부분 정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을 되게 많이 벌였는데, 이것 때문에 학업 상태가 아주 안 좋아져서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결심을 했죠. 특히 학생회를 꽤 오래 했는데 이것도 그만두었고, 동아리도 정리를 많이 했어요.
지금은 여러 일들을 정리했다고 하셨지만, 과거에는 영민 님이 아주 활발한 대학 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무엇이 영민 님을 움직이게끔 했는지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제가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학교 입학하면서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부 활동이나 인간관계의 면에서 적극적인 사람이 되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군요. 이제 LnL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 볼게요. 어떤 이유로 LnL 재학생 멘토에 지원하셨나요?
제가 서울 강서구에 살아서 통학하는 데 왕복 3시간이 걸리는데 기숙사 지원이 안 돼요. 특히 작년 2학기에 전공필수 과목 1교시를 들었는데 통학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 수업 전날에는 랩실에서 공부를 좀 하다가 자고, 다음 날에 헬스장에서 씻고 수업에 갔거든요. 저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남들한테 “왜 그렇게까지 사냐”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또 랩실이 사람 살려고 만든 곳은 아니다 보니까 불편한 것들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LnL을 하면 기숙사에 살게 해 준다고 하니까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게 가장 큰 이유고, 다른 이유는 제가 신입생 만나는 걸 좋아하거든요. 다른 사람들 상담이나 멘토링해주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상담이나 멘토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고난 성향이 사람을 좋아하고 이타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물질적인 것을 도와주는 건 힘들지만, 그동안 대학 생활을 오래 했고 여러 경험들을 한 덕분에 남들보다 시야가 좀 넓어진 면이 있잖아요. 제가 저학년일 때는 저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지금까지의 대학 생활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는데, 이거에 대해 적절히 조언해 줄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은 저처럼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학 생활에서 아쉬웠던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1학년 때 공부를 되게 안 했어요. 입학을 했더니 딱 코로나가 터졌죠.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다 보니까, 수업이 시작하면 녹화 프로그램을 켜고 일단 자요. 이걸 계속 반복하다가 시험 전날에 두 달 치 강의를 하루에 몰아보고 그랬거든요. 이게 한두 번까지는 다음 시험부터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잡는 게 가능한데, 서너 번 반복되면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공계를 꿈꿔왔고, 대학원에 가지 않는 선택지에 대해서 고려해 본 적조차 없었어요. 그런 만큼 남들보다 학문에 더 관심이 많았고, 또 나중에 연구를 하려면 그 기반이 되는 학부 전공과목들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잖아요. 아무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태하게 살고 있으니까 자괴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뭐냐면, 그냥 공부를 하면 돼요. 그런데 ‘1년 동안 네 번의 시험에서 한 번도 제대로 공부를 안 했는데 앞으로는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 자신을 계속 의심하게 됐고, 이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악순환에 빠지고 우울증이 왔거든요. 그래서 정신과 약도 먹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2학년 때 학점이 1.78이었어요.
정말 다행히도 그때 사귄 친구들이 굉장히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수학이랑 물리를 잘하고, 거기에 관심도 많고, 또 남들을 도와주는 것도 좋아하는, 그러니까 저랑 굉장히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 친구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수학과 물리에 진짜 감동이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가 정말로 재밌다는 걸 깨달은 게 그때쯤이었는데, 이걸 더 빨리 알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교양 과목들을 먼저 듣고 전공 공부에 더 빨리 집중할 것 같아요.
본인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상담이나 멘토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네요.
네. 맞습니다.
올해 재학생 멘토로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LnL 재학생 멘토 중에서도 가장 일을 많이 한 편이라고 자부를 해요. 일단 학생자율세미나 개설 책임 학생을 맡았고, 또 LnL 내 소모임 제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다양한데, 이걸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만들려면 문서들도 많이 써야 하고 비교과 프로그램 개설에 심리적인 장벽이 있어서 활성화가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도 동아리처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소모임 도입을 교수님들께 건의했고, 이게 채택이 됐습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으로 요리 소모임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요리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정말 활발히 활동하셨네요. 그럼 LnL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아무래도 요리 소모임이랑 학생자율세미나가 기억에 남아요. 요리 소모임에서는 제일 처음 만든 요리가 비프스튜였어요. 그때 같이 요리를 했던 후배들이랑 많이 친해졌고, 또 그게 제 인생에서 제대로 해 본 첫 요리였거든요.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직접 요리하는 것까지 다 해 본 게 처음이었어요.
요리 말고도 다른 주제의 소모임을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기숙사에 살다 보면 주로 학식을 먹게 되고, 라면이나 빵으로 때울 때도 많잖아요. 그래서 제대로 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학생들과 같이 요리를 하면 서로 친해지기도 좋으니까 요리 소모임을 하게 됐습니다.
LnL에서 기억에 남는 일로 요리 소모임과 학생자율세미나를 말씀해 주셨는데, 어떤 세미나를 하시나요?
‘좋은 보고서 작성을 위한 방법론’이라는 세미나를 운영하고 있어요. 학교 필수 교양으로 대학 글쓰기 1, 2가 있지만, 다들 들어보셨다시피 아주 유익한 과목은 아니에요. 두 과목을 통틀어서 얻어 가는 게 레퍼런스 다는 법 하나일 정도로요. 특히 과학기술글쓰기 수업은 실험 리포트 작성 방법을 배우는 게 주목적인데, 이 수업 교수님들이 다 인문대 쪽에 계신 분들이라 이공계에서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잘 모르세요. 리포트 작성법을 알려주는 마지노선이 교양 실험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도 이걸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올해 1, 2학기에 이제 ‘중급물리실험’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여기서 레포트 쓰는 방법을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데이터를 어떻게 통계학적으로 처리하는지, 내가 세운 가설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레포트에 들어갈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등등이요. 그래서 제가 배운 좋은 지식들을 다른 구성원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 세미나를 만들게 됐습니다.
학생자율세미나를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있나요?
얼마 전에 이 세미나를 수강하는 학생 한 명이, 대학에서 이런 유익한 내용을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얘기를 하면서 세미나에서 알려준 걸 교양 실험 과목에 실제로 적용해 봤다고 하더라고요. 이걸 듣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뿌듯하시겠어요. 그럼 올해 새내기들과 상당히 많은 교류를 하셨는데, 이게 흔한 경험은 아닐 것 같아요. 4학년의 입장에서 1학년 학생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처음에 후배들에게 좋은 경험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나름 잘 달성되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만난 후배들이 자기 길을 찾아가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합니다.
학생자율세미나 외에 재학생 멘토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준 일이 있었나요?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후배한테 상담을 해주기도 했고, 또 복수 전공 관련 고민을 하는 후배랑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그 학과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그 친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으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을 했어요. 특히 중급 물리 실험을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한테 영업을 성공한 게 가장 큰 뿌듯함이라고 할 수 있죠.
후배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 김에 “33동노숙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LnL 전체 대화방뿐만 아니라 에브리타임과 신입생 대화방 등에서 33동노숙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 이 닉네임은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요?
저희 재료공학부 건물이 33동이에요. 입학하기 전에 여러 정보를 얻으려고 에브리타임에 가입했는데 닉네임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제 과를 사랑하는 마음 반, 대학원에 가서 뼈를 묻을 거니까 아예 노숙하다시피 공부하겠다는 결심 반으로 이 닉네임을 만들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쓰고 있네요.
와,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데요.
네. 우리 학교 사람들 중에 인간 박영민은 모르는데 33동노숙자는 아는 경우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33동노숙자가 너였어?” 이런 말을 들을 때 웃기기도 하고 새삼 활발히 활동했다는 게 실감이 나죠.
어떤 계기로 33동노숙자로 활동하게 되었나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남들에게 도움 주는 것에 관심이 많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많은데 공지를 잘 안 읽어요. 그래서 유익한 공지들을 보면 에브리타임이나 신입생 대화방에 공유하는 일을 많이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니까 더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촉진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역병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33동노숙자의 정체성이 파란색 이모티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모티콘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33동노숙자 닉네임을 만들면서 그 이모티콘도 같이 썼어요. 2020년 2월부터요. 그때 당시에 친구들이 많이 쓰길래 저도 따라 샀는데, 묘하게 킹받는 표정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게요. 어릴 때부터 이공계를 꿈꿔왔다고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재료공학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공계 안에서 희망하는 세부 전공들은 계속 바뀌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예쁜 시약들로 실험하는 과학자 이미지를 상상했고, 중학교 때는 로봇 공학을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생명공학을 목표로 했는데, 시험에서 생명과학 3등급을 받은 거예요. 안 그래도 바이오 연구가 이미 레드오션인데 3등급은 너무 치명적이라고 생각했죠. 또 그때 스팀 게임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게임을 하려면 컴퓨터 사양이 좋아야 되니까 제가 조립 컴퓨터를 직접 맞춰서 썼는데, 이걸 계기로 개별 제품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차세대 컴퓨팅 소자나 양자 컴퓨터 소자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목표를 가지면 전기과에 진학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래서 전기과를 가고 싶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전공 타협은 안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수능 성적이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를 가기에는 조금 부족했고, 서울대를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과를 찾아보다가 재료공학부를 선택했습니다. 재료공학부에서 다루는 범위가 더 넓어서 진로 결정에 있어서도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이 과와 정말 잘 맞았습니다.
재료공학이 어떤 점에서 본인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해요.
제가 항상 재료공학의 매력을 설명할 때 얘기하는 게,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재료들의 물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거예요. 유리가 왜 투명하고 잘 깨지는지, 금속은 왜 반짝거리는지, 어떤 물질이 힘을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등등 재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배워요.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의 특성과 어떤 현상의 원인을 근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물리학과 복수 전공도 하고 계신 걸로 아는데, 물리는 어떤 계기로 공부하게 되었나요?
제 지도 교수님이 학부랑 석사에서 물리를 전공하셔서 지금도 기초과학과 많이 연관된 연구를 하세요. 지금 연구하는 주제는 광재료인데, 그럼 일단 빛과 물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해요. 이런 건 굉장히 근본적인 질문이잖아요. 재료공학이 공학 중에서 가장 자연과학에 가깝다고 평가를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과대학인 만큼 물성의 활용 정도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해요. 이런 공학적인 공부를 할 때 근본이 되는 자연과학 이론을 잘 알면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광재료 연구에서 물리학 지식이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물리학을 복수전공해서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고방식 자체가 바뀐 것 같아요. 이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선형대수학 강의 내용을 설명해야 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과목을 배우면 그 과목이 가진 스토리를 알게 되는데요. 이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설정하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영민 님은 학문에 큰 감동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학문을 대하는 영민 님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왜 학문에 큰 흥미를 느끼시나요?
학문을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건 ‘왜 그런가?’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저기 진리가 있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내가 모른 척하고 살 수 있겠나’ 하는 마인드인 거죠. 제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걸 인지하면, 이걸 공부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무언가의 본질을 파악하고 싶은 생각이 학문에만 국한된 건지,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자기의 생각을 언어의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손실이 나고, 또 이걸 전해 들으면서 그 언어를 해석할 때도 굉장히 많은 손실이 발생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절대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모든 면모를 파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어차피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니까 이해하기를 포기한 것 같아요.
그렇군요. 영민 님이 자주 하는 말 중에 “감동이 있다”가 있는데, 그럼 이게 진리라고 생각한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됐을 때의 감동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맞아요.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식은 제한적인 조건 하에서만 만족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양자역학을 보면 미시 세계에서 고전역학의 설명과는 다른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거든요? 근데 양자역학이나 상대론을 고려해야 할 영역에서의 수식에서 거시 세계로 취급할 수 있을 만큼 질량이 커지거나 속도가 충분히 느려지게 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전역학에서의 공식으로 바뀌어요. 서로 굉장히 달라 보였던 것이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정확히 같게 맞아떨어지는 걸 보고 굉장히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LnL 구성원들에게 박영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보았어요. 그런데 다들 ‘박영민의 행복론’을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행복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심층신경망의 수학적 기초’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내용인데요. 머신러닝의 근간이 되는 원리를 ‘gradient descent(경사하강법)’라고 해요. 산의 정상에서 안대를 끼고 가장 낮은 지점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자기가 서 있는 곳의 기울기는 느낄 수 있으니까, 가장 경사가 급한 쪽을 찾아서 그쪽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계속 기울기를 재면서 산을 내려가다 보면 어떤 우묵한 지점에 들어가게 돼요. 이걸 ‘로컬 미니멈(local minimum)’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낮은 지점이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겠지만 우리가 거기로 갈 수는 없어요. 로컬 미니멈 안에서는 기울기를 아무리 재도 그 지점 내에서 가장 아래쪽으로만 갈 뿐 로컬 미니멈 자체를 빠져나올 수는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가장 낮은 지점인 글로벌 미니멈(global minimum)에 도달할 수 없고 로컬 미니멈에 도달하는 걸로 끝이 날 수밖에 없어요.
저의 로컬 미니멈은 연구자의 길을 걷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레슬링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연구보다 레슬링을 했을 때 더 행복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식적으로 제가 이 선택지에 도달할 수는 없단 말이에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이게 나랑 맞는지 어떻게 알지?’, ‘나중에 더 좋은 선택지가 생겨서 내 판단을 후회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큰 불안을 느끼는데, 어차피 글로벌 미니멈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면 이 불안을 떨쳐낼 수 있어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게 가장 좋은 선택일 수는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열심히 gradient descent를 해서 어떠한 로컬 미니멈에 들어간 후 이게 꽤 좋은 로컬 미니멈이기를 바라는 것뿐이죠. 이때 중요한 건 좋은 정보를 갖고 gradient descent를 하는 겁니다. 올바르게 기울기를 측정할 수 있도록 최대한 좋은 질의 정보를 많이 모으고, 열심히 기울기를 재본 다음 그 방향으로 발을 열심히 내딛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에서 로컬 미니멈에 들어가는 거죠.
영민 님의 로컬 미니멈을 연구자의 길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gradient descent를 할 때, 그 기울기를 재기 시작하는 지점, 즉 초기값을 임의로 지정해줘야 하는데요. 그 초기값을 상식적인 범위에서 잘 설정해야 좋은 미니멈에 도달할 수 있어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안대를 끼고 산을 내려가는 상황에서는, ‘산 속의 어느 지점에서 내려가기 시작해야 산을 잘 내려갈 수 있을까’가 되겠네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도서관에서 어린이 과학동아 같은 과학 잡지들을 읽었는데, 그런 것들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됐어요. 모두들 가지고 있던, 예쁜 시약들을 플라스크에 넣어서 섞는 과학자 이미지 있잖아요? 그런 모습에 홀려서 연구에 뜻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잡지들을 읽는 것으로 제 초기값이 설정되고, gradient descent를 수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구자라는 로컬 미니멈에 빠지게 되어버린 것 같네요. 하하..
아까 기울기를 재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초기값 설정 이후 연구자라는 로컬 미니멈에 도달하기까지 어떻게 gradient descent를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사실 머신러닝에서 기울기를 측정할 때, 이상한 얕은 로컬 미니멈에 빠지지 않게, 즉 현혹되지 않고 충분히 좋은 로컬 미니멈에 들어가도록 머신러닝 연구자들이 좋은 방법을 많이 만들었어요. 하나는 보폭, 다른 하나는 관성이에요. 눈을 가리고 기울기를 측정할 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을 때, 그 한 걸음을 얼마나 내딛을지 보폭을 설정해야 해요.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달리다 보면, 달리던 관성이 있어서 방향을 바꾸고 싶어도 바로 못 바꾸고 곡선을 그리면서 달리게 되잖아요? 이렇게 관성의 크기도 설정을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보폭과 관성을 머신러닝에서 learning rate와 momentum이라고 불러요.
보폭을 너무 작게 잡으면 아주 얕은 구덩이를 만났을 때 그 구덩이를 무시하지 못하고 그 안에 갇혀 맴돌게 되고, 너무 크게 잡으면 충분히 좋은 구덩이, 즉 미니멈이 있더라도 건너뛰어 버려서 그 구덩이에 들어갈 수 없어지겠죠? 그리고 관성이 있어야 어쩌다가 한 번 기울기가 다른 방향으로 측정이 되어 이상한 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앞으로 달리던 관성이 남아서 계속 나아가 더 적절한 로컬미니멈에 도달할 수 있게 돼요.
제 진로 결정을 이 과정에 비유해 보자면, 제가 자란 환경이 초기값, 저의 홍대병적 기질이 보폭, 제 가치관이 관성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과학 친화적인 환경과 돈에 별로 관심이 없는 성향이 시작점으로, 돈과 현실이라는 속물적인 가치에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학문을 여전히 추구할 수 있는 관성,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무시하고 나아갈 수 있는 큰 보폭들이 있었기에 연구자라는 아주 만족스러운 로컬 미니멈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인상적인 내용이네요. 그런데 영민 님과 같은 수업을 들은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고찰을 할 것 같지는 않아요. 수업을 들은 것 외에,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한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요?
특별한 건 없고… 그냥 남들보다 생각이 조금 더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진심으로 흥미가 있어서 그 과목을 수강한 거라, 그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이 행복론이나 재료공학, 물리의 매력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전파하고 다니신다고요. 왜 그러시나요?
애니메이션으로 생각하면 편해요. 이 재밌는 거를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보고 그거에 대한 감상을 나누면 좋잖아요. 그런 느낌인 거죠.
그렇군요. 이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는데, 본인의 대학 생활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그걸 통해서 기연들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게 있을지언정 후회는 없고, 또 대학 생활 동안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것에 굉장히 감사합니다.
그럼 졸업 후에 목표한 대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가요? 학부 이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네,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고요. 제 성격상 교수가 되면 이것 이상으로 좋은 선택지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수가 되려면 실력뿐만 아니라 운도 필요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아요. 아마 대학원 졸업 후 기업 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를 목표로 준비할 것 같습니다.
영민 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제게 감동을 주는 것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학문이 아니더라도 제가 원하고 감동하는 일을 좇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속물적인 가치관의 반대편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학문에서 느끼는 감동은 앞에서 설명을 해 주셨고, 학문이 아닌 것 중에서는 어떤 것에 감동하나요?
요리를 할 때나,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할 때인 것 같아요. 제가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이런저런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그때도 감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아직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했어요. 안 그래도 요즘에 이거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확히 어떤 유형의 것을 추구하고 무엇에 감동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제가 감동하는 것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제가 그 대상을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거예요.
속물적인 가치관을 갖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속물적인 것을 추구하게 될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 속물적인 것을 좇지 않겠다는 생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더라고요. 굳이 비싼 차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고 좋은 집에 살 필요가 없어요. 적어도 저한테는요. 속물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행복이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LnL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대학 생활 선배이자 재학생 멘토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무언가 시도하는 걸 꺼리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시도 하나하나가 대학 생활이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아 두려워하는 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무언가를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미래를 위한 귀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없어요. 학생들이 시도하는 걸 꺼리지 않고, 설령 결과가 안 좋더라도 자신이 무엇과 안 맞는지 알게 된 거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해 보길 바랍니다.
네, 오늘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라고 자신 있게 외치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이 말을 다시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 단순 명료해 보이는 이 다짐은 사실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나의 목표를 찾아가는 힘들고도 고독한 과정,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조급해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그리고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 쌓은 자신에 대한 믿음까지. 이 모든 것을 거쳐야 비로소 내뱉을 수 있는 말이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따라가겠다는 영민의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들어보았지만, 말로는 모두 풀어낼 수 없는 깊은 고민과 시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쌓여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말이리라. 그의 굳건한 마음가짐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과연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그 감동을 찾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만의 감동을 찾기 위해, 나의 로컬 미니멈에 도달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내디뎌보자.
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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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20학번으로, 물리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LNL 7A반의 재학생 멘토이자 LNL 요리 소모임의 대표.
前 재료공학부 회장
학생자율세미나 ‘좋은 보고서 작성을 위한 방법론’의 개설 책임 학생
각종 대화방에서 ‘33동노숙자’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