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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NL 사람들 Dec 26. 2023

카르페 디엠

정치외교학부 이준혁

에디터 : 우정윤


<INTRO>

사람은 저마다 ‘시그니처 표정’이 있다. 누군가 그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표정, 그것이 바로 시그니처 표정이다. 나에게 준혁의 시그니처 표정은 ‘생각에 잠긴 눈과 은은한 미소’이다. 너무 활짝 웃지도, 그렇다고 슬픈 표정도 아닌 평온한 상태의 은은한 미소,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편해지곤 한다. 신나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가, 쉽게 흥분했다가, 마음껏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나는 준혁이의 그런 평온함이 궁금했다.

 

Q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 안녕하세요. 저는 LnL 8B반 소속 정치외교학부 이준혁이라고 합니다. 

 


1. ‘이준혁’이란 사람에 대해

Q : ‘이준혁’은 어떤 사람인가요?

A : 술이 없다는 가정하에 내향적인 성격이지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흥분해서 말이 많아지기도 해요. 그리고 애초에 저 자신에게 엄청 감정을 이입하기보다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편이에요. 이런 부분에서는 예전에 인터뷰했던 공현서 씨와 비슷한 것 같아요.


Q : 감정에서 한 발짝 멀어져 객관적으로 관조한다는 말이 흥미롭네요. 그럼 궁금한 게 있는데 현재 낭만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 저는 낭만이 100 아니면 0, 이렇게 기복이 있어요.


Q : 낭만이 100일 때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나요?

A : 글을 쓰기도 하고, 뭔가 다양한 다짐을 해요. 어떻게 살아야겠다든지,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든지.


Q :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시나요?

A : 일단 대학에 와서 가장 집중하게 된 건 ‘책임감’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는 완전 마이웨이였거든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어떤 사회적인 선망보다는 제가 무엇을 하면 좋아할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편인데,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신뢰하고 믿어서 맡긴 일들은 제가 하기 싫어도 일종의 의무를 가지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좋아하는 걸 하되 주변 사람들이 제게 맡기는 일이나 저를 향한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시켜야 한다는 거죠. 너무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저만의 방식대로 사는 건 생각보다 별로 건강하지 않은 삶인 것 같아요.


Q : 구체적으로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누가 맡기거나 믿어줘서 책임감을 가졌던 경험이 있나요?

A : 문화 해설 프로그램이라고, 해외에서 방문하는 외국인들이나 대사관, 기업 등을 대상으로 포럼이 열릴 때 일종의 투어를 해주는 단체를 친구들이랑 같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거기서 할 일이 좀 많은데, 인스타와 영상을 담당하고 있고 신입 모집 서류 양식도 만들어야 해요.


Q : 문화 해설 프로그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데, 이건 동아리인가요?

A : 아니요. 동아리라기보다는 ‘비영리단체이고 싶지만 아직 법인이 아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 이 프로그램을 왜 시작하게 되었나요?

A : 친구가 하자고 했을 때, 재밌을 것 같아서 그냥 한다고 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로드가 좀 커져서 지금은 책임감 반, 재미 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Q : 그렇군요. 이 프로그램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요?

A : 이번 여름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잼버리 스카웃 대원들에게 경복궁과 명동을 소개해주었고, 최근에는 바티칸 시티의 외교부장관님을 모시고 투어를 진행했어요. 


Q : 바티칸 시티의 외교부 장관이라니 흔치 않은 경험인 것 같은데 이러한 활동들로부터 배운 점이 있을까요?

A : 세상에는 진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 한편, 은근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한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사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 혹은 불편함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고안하며 사고력 및 기획 능력이 향상되었던 것 같아요.


Q : 그러면 다음으로, 아까 말씀하셨던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A : 좋은 사람에 대해서 고민해 봤는데, 단순히 제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무엇이 필요한지 그 사람이 인지하든 모르든 제가 그걸 미리 적극적으로 찾아서 편의를 봐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배려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딱히 배려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하하)


Q : 나만의 방식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 대학교에 온 후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지면서, 반대로 제가 남에게 요구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해 봤어요. 부모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가 부탁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해 주고, 말하지 않아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항상 제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 그럼 누가 부탁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를 실천한 적이 있나요?

A : 집에서부터 소소한 거 주로 해요. 설거지라든지.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저에게 바쁘거나 힘들다고 불평할 때, 저도 힘들다고 말하기보다는 일단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 개인사를 핑계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마음가짐이 커졌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진짜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제 방식대로 살았거든요.


Q : 그렇군요. 다음으로는, 평소에 이제 주위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있나요?

A : 조승연 배우를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하하)


Q : 오 정말 닮은 것 같은데요, 그러면 약간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은 어떤 모습인가요?

A : 음.. 그러게요. 뭔가 침착하고 지적이다, 서울대생 같다는 말을 은근히 듣긴 했어요. 아, 서울대생 같다는 말은 빼주세요.


Q : 왜요?

A : 부끄러워요.


Q : 그런데 지적이라는 게 ‘똑똑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감정 이입을 하기보다 객관적으로 본다는 말이랑도 연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맞나요?

A :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스토아학파에 관심이 많아서요.


Q : 스토아학파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A : 스토아학파의 사상은 꽤나 방대하지만, 제가 관심 있는 스토아학파의 사상은 그들의 행복론입니다. 세계는 주어진 것이고, 그것을 바꾸긴 어렵다. 내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건 세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다. MZ 용어로 말하면 소위 ‘억까’당해도 ‘알빠노’ 마인드,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억울해하기보다는 그냥 최대한 받아들이는 그런 마인드예요. 통제 밖의 영역에 대해서는 감정 이입하거나 욕망하지 않고 최대한 관조적으로 대하는 거죠. 감정 이입하면 그만큼 상처받을 수도 있고 실망감이 오잖아요. 그래서 서울대 합격 발표가 날 때도 레고 만들고 있다가 발표 확인하고 그냥 다시 레고 만들러 갔어요. 딱히 아무 요동 없이.

사실 그래서 대학교에 오고 나서 모토가 “좀 다양한 걸 느껴보자.”였습니다.

너무 관조적으로 살았어서요.

   관조적으로 사는 게 나쁜 삶의 태도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너무 제삼자의 마음가짐으로만 사는 것은 20대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양한 걸 느껴봐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걸 경험해 보자’, ‘심장 뛰는 게 있으면 일단 생각하지 말고 지원해 보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살고 있어요.


Q : 그러면은 다양한 것을 느껴보자고 각오한 이후로 실제로 실천한 경험이 있나요?

A : 있긴 한데 기억이 잘 안 나는 것 같아요. 제가 좀 변화에 둔감하거든요. 장기 기억력이 생각보다 안 좋아서 뭔가 환경이 바뀌어도 몇 주에서 한두 달 정도만 그렇게 살다 보면 평생 그렇게 살아온 느낌이고 과거도 크게 생각이 안 나거든요.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달리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적응력이 좋다고 할 수 있겠죠.


Q : ‘다양한 걸 느껴보자’가 20대 모토라고 했는데, ‘20대 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 ‘20대 같다’는 건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책임감이 가장 적게 주어진 상태로 새로운 걸 해볼 수 있으니까요. 실패해도 다른 사람들이 딱히 뭐라고 하거나 그러지 않고 ‘안타깝다’ 이 정도 선에서 끝날 수 있는 그런 인생 시기여서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Q : “다양한 걸 느껴보자”는 “다양한 걸 해보자”와 다른 건가요? 

A : 다르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둘이 완전히 무관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 감정을 다양하게 느껴보고 싶은 건가요?

A : 그렇죠. 근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감정을 못 느끼잖아요. 일단 움직여야 느끼겠죠. 많은 걸 해본다고 많은 걸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고 천천히 생활하는 것보다는 많은 걸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Q : 그렇군요. 그리고 저를 비롯한 LNL 사람들에게 ‘이준혁’에 대해서 물으면 ‘생각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 ‘적극적이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밝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답변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밝다는 것은 잘 모르겠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모르겠어요.

 

Q : 어째서죠?

A : 항상 밝기보다는 그냥 무미건조한 방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막 신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은 그런 기분이죠. 그리고 나서서 뭘 하기보다는 조금씩 사리는 게 있는 것 같아요.


2. 몰입

Q :여름방학 때 공부랑 음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들었는데, 다양한 일을 하기보다는 몇 가지 일에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하시나요? 

A :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찍먹하는 경향이 있어요.

부모님도 그렇고 사람들이 저를 보면 하나에 진짜 몰두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하던데, 완전히 아닌 건 아니지만 하나에 매달려서 밤도 새고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장기적이라기보다 단기적으로 관심사가 바뀌면서 그거에 집중해요. 지금까지는 철학, 수학, 음악,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어요.


Q : 그럼 보통 관심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 건가요?

A :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주변에서 많이 접해보면서 관심이 생기는 경우’와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나를 컨셉에 가둬서 그 컨셉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있어요.

전자에는 철학이 있어요. 원래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제가 정치외교학부를 희망하는데 정치와 법을 수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 관련 과목은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때 ‘현대 정치 철학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철학에 관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후자의 사례로는 수학이 있는데 제가 수학을 고1 때까지는 딱히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도 1등급이 안 나와서 한 번 끝장을 보자는 마인드로 하루 7시간씩 수학을 했거든요. 겨울방학 세 달 동안 같은 문제집도 세 번씩 사서 풀고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다 보니까 수학을 좋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진짜 나는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이미지 메이킹을 스스로 계속하다가 그 이미지 메이킹에 제가 압도당하는 거죠. 그리고 학교에서 수학 잘한다 하면 되게 멋있잖아요. 제가 관종 끼가 아예 없는 게 아니라서 수학 잘하는 문과생이 되고 싶은 마음에 수학을 좋아하게 됐어요.


Q : ‘현대 정치 철학의 이해’은 무슨 수업이었나요?

A : 먼저 정치 철학의 기본 계보, 즉 현대 철학이 현대 전까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변천사를 배웠어요. 그리곤 매주마다 현대 철학자 한 명씩 다뤘는데, 그 사람들의 사상에 100%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공부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Q : 특정 분야에 관심이 가면 어떤 식으로 파고드나요?

A : 결국 자주 접할 수 있어야 관심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관련된 웹사이트나 유튜브 채널을 찾아서 꾸준히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마련하는 거죠.


Q : 그러면 보통 한 시기에 몇 개의 관심사를 갖나요?

A : 두세 개 정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음악, 특히 클래식이나 음악이론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Q : 오케스트라 동아리 스누포에서 호른 연주자로 열심히 활동 중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음악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A : 2014년 전반기, 영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트럼펫과 바리톤을 했었어요. 처음 금관악기를 해본 거였죠.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갔던 초등학교에서도 유포늄이라는 금관악기로 오케스트라를 계속했었어요. 중1 때까지 하다가 교정 때문에 그만두게 되었고, 대학교에 왔는데 오케스트라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케스트라를 하면 하나에 몰두할 수 있고, 연주하는 곡이 계속 기억에 남는 게 좋아요. 곡을 완전히 외우게 되거든요.


Q : 스누포는 그럼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인가요?

A : 네. 저는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이번 겨울 방학에는 ‘LNL with 오만’ 일정과 겹쳐서 아쉽게 못하게 되었어요.


3. 무목적의 삶

Q : 그러면 궁금한 게, 모든 것은 선택의 연속이잖아요. 겨울방학 때 스누포를 할 건지, 오만을 갈 건지 선택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렇게 시간을 분배하는 기준이나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A : ‘재현 가능한 경험인가’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오만은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못 갈 것 같아서 오만을 가기로 선택했어요.


Q : 그렇군요. 보통 방학이나 인생의 계획을 많이 세우는 편인가요?

A : 저는 MBTI 검사에서 J가 나오긴 했는데, 의외로 계획을 잘 안 세워요.

고등학교 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그때 저는 주로 집 근처 인왕산에 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초등학교 때가 엄청 행복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행복했을까’ 였어요. 생각해 보니까 ‘무목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목적이 없다. 그러니까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다 보면 그 행위의 재미나 행복을 온전히 느낄 수 없거든요. 예를 들어, 수학문제를 푼다고 할 때 ‘단순히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보다는 ‘진짜 수학 문제를 즐기기 위해서 푼다’와 같은 사고방식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행위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어떤 계획을 짜다 보면 너무 틀에 갇힌 느낌이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서 계획을 안 세우는 편입니다. 자연스러운 재미를 추구하거든요.


 Q: 그러면 궁금한 게 있는데 ‘무목적’이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대학에서도 어쩔 수 없이  목적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 않나요?

A : 있죠. 근데 목적에 의해서 하더라도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이라고 스스로 자신을 세뇌시키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던 스토아학파의 사상과도 연결될 수 있는데,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집착하기보다는 마음을 다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웃고 넘어가면 그게 건강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 스토아학파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 건가요?

A : 제 고등학교 1학년 때 관심사가 로마였거든요.

그때 로마 황제 30대까지는 다 외울 수 있을 만큼 엄청 좋아했어요. 로마가 스토아학파의 본고장이잖아요. 그래서 관심이 갔고,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과도 부합하는 면이 있어서 더 끌렸던 것 같아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게르마니아전쟁터에서 자신의 마음을 올곧게 하기 위해서 쓴 명상록이 있는데,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주제로 한 명언을 담은 책이에요. 그 책을 사서 매일 아침마다 마음을 다잡으려 읽고 학교에 가기도 했어요.


Q : 어떤 명언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A : “판단을 하지 말라. 그러면 네가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사라지면, 피해도 사라질 것이다.” 이 말이 상당히 사회순응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 있을 텐데, 내가 억울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제가 바꾸고 행동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열심히 하되, 내 능력 밖의 영역이 있음을 인지 및 인정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4. ‘순수한 행복’을 원하는 이준혁의 앞날 

Q :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학문 자체가 다른 문화에 편견이 없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는 거죠. 객관적이라는 게 감정 이입을 하지 않고 그냥 멀리서 좀 관망한다는 뜻이니까요.

안정적이면서 재밌게 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 생각하다가 외교관이면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진학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추가로 조사해 봤는데 공무원 연금은 해외로 가도 송금해 주더라고요. 외교관을 하다가 진짜 좋은 곳을 발견하면 이민을 가서 거기에서 노후, 한 20년의 삶을 마무리하면 좋지 않을까 했었죠. 작은 주택을 짓고 자연과 책과 평화를 즐기면서 연금으로 소박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그렇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아서요.


Q : 그러면 직업과는 별개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있나요?

A : 순수한 행복을 많이 경험하고 싶어요


Q : 순수한 행복이란 아까 말했던 무목적이랑도 연결되는 것인가요?

A : 맞습니다. 목적을 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노력해 가는 것도 재미없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가장 기뻤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모두 특정 목표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그냥 그걸 진짜 하고 싶어서 했던 것 같아요. 


<OUTRO>

 태풍이 오면, 대개 그 소용돌이에 휩쓸려 내 마음부터 주위의 것들까지 모두 아수라장이 되곤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상처받고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대학을 위한 공부와 취직을 위한 스펙 쌓기에 지쳐가는 우리의 삶은, 마치 거대한 태풍의 소용돌이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태풍에 휘말리지 않고, 고요한 태풍의 눈에서 나오는 지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준혁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관조적인 태도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 순간을 즐기는 준혁이의 모습은 잔잔한 호수에 비친 햇살처럼 빛났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거침없이 답해가는 것을 보며,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내일을 위한 내가 아닌 현재 가장 즐거운 나로 하루하루를 채워간다면 우리도 태풍의 눈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준혁

  -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23학번.


서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SNUPO) 호른 주자이자

LnL 사람들의 에디터.


(전) 나침반 학생회 <벗>에서 활동했으며, 

'YEOKSA - 청년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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