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부 임재영
에디터 : 박희선
나는 무슨 색인가?
흔히들 자아 탐색의 시기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한 입시를 거쳐 갓 새로운 사회에 던져진 우리에게는 우리가 낯설다. 그렇기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세상을 더듬어가며 각자 고유한 빛깔을 찾아간다.
이는 오늘의 주인공, 임재영 양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다채로운 색감에 감탄하며 본인을 무색무취라 표현하던 1학기를 지나, 귀중한 경험을 통해 점차 자신만의 개성을 발견하기 시작한 그. 타인을 도우면서 동시에 자신도 본받아 성장하고 싶어하는 그의 건설적인 면모를 함께 알아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경제학부 23학번 임재영이고, LnL에서는 2A반에 살고 있습니다.
경제학과는 왜 진학하게 되셨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행정학과에 가고 싶어서 그쪽으로 수시 준비를 했었어요. 그런데 2학년 때쯤 담임 선생님이 “네가 지균을 받을 것 같은데 서울대는 행정학과가 없으니 다른 과를 찾아봐라”라고 말씀하셔서, 사회과학 계열 중에 어떤 게 재밌을까 하다가 통합사회에서 배웠던 경제가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경제 쪽으로 준비를 했어요.
행정학과는 왜 가고 싶으셨나요?
어릴 때부터 꿈이 공무원이었어서 막연하게 ‘행정학과에 가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고등학교 때 정책에 대한 관심도 좀 있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공무원이 꿈이었던 건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 건가요?
그것보다는 뭔가 제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어렸을 때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은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공무원이 주는 안정감도 이유 중에 하나였고요.
그렇군요. 그러면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크게 두 가지 고민이 있는데, 일단 주위를 보면 다들 남들이 많이 하는 진로로 가요. 과 친구들 얘기를 들어봐도 가는 길이 한 세네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게 되면서도 제가 정말 원하는 일이 이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학부가 서울대라는 것 때문에 심리적으로 하방을 좀 높게 설정하게 되는데, 이런 학력에 대한 부담이 없으면 오히려 선택의 폭이 더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본인의 학과와 상관없는 길도 열어놓고 싶은 건가요?
맞아요. 애초에 경제학과에 들어온 것도 학문 그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들어온 건 아니었어요. 경제학을 배운 것이 앞으로 일을 구할 때 무기가 될 수는 있지만, 꼭 이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아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번 학기에는 뭘 하면서 지내셨고 이번 학기는 어떤 걸 하면서 보내고 계신지 얘기해 주세요.
3, 4월쯤에는 정말 적응하기 바빴어서, 수업 듣고 친구들이랑 서울대입구에서 밥 먹은 거 말고는 딱히 한 게 없어요 (하하). 5월부터 글로벌 SNU 사회공헌단 활동을 시작해서 여름방학 때까지 했었고요. 그렇게 1학기를 보냈는데, 사실 이번 2학기는 엄청 만족스러운 학기는 아니에요. 대학교에 오면 1학년은 완전 논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제 1학기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이 못 논 것 같은 거예요. 서울대라는 집단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은 너무 뛰어나고, ‘그러면 나는 내 자신을 어떻게 증명해야 되지’라는 고민을 하다가 그나마 하던 게 공부밖에 없으니까 일단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1학기 때 생각보다 활발하게 많이 못 놀았던 게 아쉬웠고, 1학년을 이렇게 보내면 나중에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2학기에는 정말 많이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줄였어요. 9, 10월에 정말 열심히 놀았는데, 그러니까 오히려 균형을 잃은 느낌이었어요. 공부를 적당히 하면서 놀아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해야 될 공부를 제쳐두고 노니까 뭔가 이도저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번 학기에 느낀 건,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에 적당한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그 균형을 어떻게 찾을 생각이신가요?
그냥 죽이는 시간을 줄여야 돼요. 차라리 놀 때 진짜 제대로 놀든가 아니면 그때 과제를 하든가 해야 해요. 그러지 않고 유튜브를 보는 것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어영부영 흘려보내는 시간을 가지면, 그 시간은 그 시간대로 있고 놀고 싶어서 노는 시간도 따로 있으니까 공부할 시간은 더 없어져요.
그럼 제대로 노는 건 어떻게 노는 건가요?
밖에 나가야 돼요. 혼자 있을 때 제대로 놀고 있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사람과 함께 해야 하고, 일단 제 생활 반경인 기숙사를 벗어나야 해요.
그렇군요. 아까 글로벌 SNU 사회공헌단 얘기가 나왔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신 건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인도네시아로 갔고, 그곳에서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청년들한테 한국어 수업을 했습니다. 전체 일정은 7박 9일이었고, 수업은 5일 정도 했어요.
재영 씨가 인도네시아에 다녀오시고 제게 하신 말씀 중 인상 깊었던 게, 인생에서 글로벌 SNU 사회공헌단이 제일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말하셨던 거예요. 객관적으로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그 정도의 경험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첫 수업을 하고 난 직후의 감정이 기억에 남아요. 긴장된 채로 첫 수업을 했는데, 2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3시간 동안 정말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수업을 들어줬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준비해서 간 수업이라 학생들이 재밌게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는데, 기대 이상으로 수업을 너무 재밌게 즐겨주었고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저희를 엄청 반겨주더라고요. 그래서 수업을 하면서 ‘내가 지금 이 친구들한테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보람차고 행복한 감정 100%의 상태를 느꼈어요. ‘내가 오랜 시간 준비한 것으로 남한테 도움이 되는 일,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자각한 기억 덕에 정말 행복했어요.
자기 효능감을 크게 느끼셨나 보네요. 공무원을 지망하셨었던 얘기도 그렇고,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저도 최근에 느꼈는데, 그게 저한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보람을 느끼는 포인트가 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때라고 생각해요. 특히 인도네시아에서의 얘기를 더 하자면, 수업을 같이 준비한 사람들 중 서울대학교 학부생 팀원이 15명 정도였고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었어요. 그렇게 전체 30명 정도 되는 팀원이 일주일 정도 함께한 게 사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다 함께 봉사를 같이하고 있다는 데에서 하나로 묶이는 듯한 감정을 매우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마지막 날에 소감을 말할 때 눈물 흘리는 친구들도 많았고, 또 다른 가족을 얻은 것 같다는 말을 했던 친구들도 있었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일주일 정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오버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모두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가 되었던 것 같아요.
소속감이 정말 컸군요. 그러면 지금까지도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랑 교류하며 지내시나요?
일단 서울대 팀원들은 2학기에도 자주 만났고, 수업을 같이 준비했던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랑도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있어요. 또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 중 한 명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저한테 따로 연락을 해왔어요. 앞으로 한국어 공부를 할 때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냐고 해서 너무 좋다고 했고, 그 친구가 그 뒤로 한국어를 제게 몇 번 물어봤었어요.
1학기를 인상 깊은 기억으로 잘 마무리하신 것 같은데,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번 학기의 목표는 뭘까요?
이번 학기에는 진로 선택에 있어서 한 단계 나아갔으면 좋겠는 바람이 있어요. 인터뷰에서 얘기하기엔 부끄럽지만, 진로와 관련한 큰 고민이 하나 있는데 그에 대한 답을 2학기가 끝났을 때 어느 정도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좀 더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대학 생활이 제가 성장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왜냐하면 남들한테 도움을 줄 때 느끼는 보람과 거의 비견될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보람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그 시간이 대학 생활이 되기를 바라요.
어떨 때 본인이 성장했음을 느끼시나요?
성장할 수 있는 요소가 여러 가지예요. LnL 사람들을 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이해나 글쓰기 능력처럼, 앞으로 살아가며 쓸 만한 역량을 갖추게 되는 것도 성장의 예가 될 수 있겠죠.
현재 상태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면 성장했다고 느끼시는 것 같네요. LnL 사람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나요?
제 기억으로는 모집 공고가 5월쯤에 올라왔었는데, 그때 한창 좀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새내기 두 달을 돌아봤을 때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또 모집 포스터에 ‘LNL 시작을 기록하다’라는 멘트가 저의 가슴을 울렸어요 (하하).
가슴 울릴 만하죠. 그럼 지금까지 LnL 사람들에서 인터뷰한 분들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완전 있죠. 2학기에 제가 김소윤이라는 친구를 인터뷰했는데, 그 글의 주제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대학생활이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던 시기가 저도 딱 그 고민을 하고 있던 때라, 글을 쓰면서 저도 저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됐어요. 같은 과 친구였는데, 원래도 친했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좀 느끼는 계기도 됐고요. 그리고 인터뷰가 올라가고 난 뒤에 주변인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그 친구가 저한테 얘기를 해줬는데요. 친한 친구들이나 어른들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까지 그 인터뷰 기사를 보고 “잘 살고 있구나”, “이렇게 멋있는 모습으로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이야기를 해서 엄청 감동을 받았대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쓴 글이 타인에게 이렇게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는구나’ 싶어서 글 쓰는 재미를 알았던 것 같아요.
단순히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내가 도움이 되어서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재영 씨도 성장을 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정확해요. 그리고 그 글 마지막에 맺음말로 제가 코난 오브라이언이 졸업식 연사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각자의 길은 다 다르지만 그게 결국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썼는데, 그게 저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고 제 주변 친구들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이제 과 친구들이나 선배들이랑 얘기를 하면 다들 진로 쪽에서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글로써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주변인들한테 전할 수 있구나 싶었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 되게 좋았어요. 제가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글쓰기에 두려움을 많이 가졌어요. 뭔가 잘 써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는데, LnL 사람들 활동을 하면서 그게 좀 덜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시나요?
지금의 저는 제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인 것인 것 같아요. 1학기 때 누가 저한테 이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무색무취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제가 어떤 류의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알아가고 있고, 남을 돕는 데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이렇게 색깔을 찾아가면 되는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왜 무색무취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서울대학교 합격 조회 페이지를 딱 봤을 때 ‘전산 오류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이 집단에 비해 저는 한참 못 미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또 지방에 살다 올라와보니, 정말 유명한 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많고 다들 너무 입시에서의 화려한 스펙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단에서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느껴서, 좀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되게 발버둥쳤어요. 그런데 동아리를 들어가기에는 적당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 말고는 딱히 관심을 갖고 살아왔던 게 없어서, 1학기 때는 대학교 1학년인데도 고등학교 때 하던 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1학기를 마칠 때쯤에는 한 학기 동안 딱히 제게 남은 게 없는 것 같았어요. 뭔가 ‘다른 사람들은 하고 싶었던 거 하고 재밌게 잘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난 뭔가 별로 남는 게 없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 당시에는 제가 무색무취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색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 건 제가 뭘 좋아하는지를 2학기 들어서 찾아가고 있어서예요. 제일 큰 촉매가 제 생각에는 방학 때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던 거예요. 그 이후로 진로 고민도 많이 하게 됐고, ‘내가 그런 고민을 하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를 자각하니까, 타인을 대할 때도 제 정체성을 조금 더 인식한 상태로 대할 수 있어서 자신감도 더 늘어났어요.
한 LnL 사람들 팀원이 재영 씨를 두고, ‘일관적이고 묵묵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생각이 깊고 본질을 잘 잡아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의합니다. 생각이 깊다는 거 말고는 다 제가 살면서 많이 들어봤던 말인 것 같네요. “너 정말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식의 말은 초등학교 1학년 생기부부터 있었네요. 왜 그렇게 보이는 것 같냐면, 일단 저 스스로 규칙이나 마감일을 지키는 게 엄청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말이 별로 없어요. 사석에서는 많을 수 있는데, 회의처럼 공적인 자리에서는 생각보다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아서 묵묵히 할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면 LnL 사람들에서 본인이 어떤 역할이라고 생각하세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은데, 하나는 텐션을 낮추는 사람이에요. 회의를 하다 보면 텐션이 들뜰 때가 있는데 그걸 낮추는 사람인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사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반장이나 동아리 부장 이런 거를 많이 했어서, 회의가 진행되다가 딴 길로 새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그래서 딴 길로 새는 것 같다 싶으면 “그래서 우리 얘기하고 있던 게 이거였지”라고 되짚어주는 사람이에요. 뭔가 그래서 본질을 잡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나 보네요.
일리가 있네요. 근데 두 개 다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텐션을 낮춘다는 게 너무 솟아서 흥분돼 있는 걸 좀 가라앉히는 거고, 회의가 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빨리 끝나게끔 길을 이탈하면 다시 “이쪽으로 와” 하고 끌어주는 역할이니까요.
근데 저 같은 사람만 있으면 그 집단이 엄청 쾌활한 분위기를 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LnL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과 아닌 사람의 비율이 적절히 맞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나요?
제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대부분 진로에 대한 고민, 앞날에 대한 걱정인데 그런 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최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는 산책하거나 샤워를 하는 식으로 리프레시 정도는 하는데, 딱히 능동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능동적으로 해소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해소하는 건 어떻게 다른가요? 운동을 열심히 한다든가 하는 것이 능동적으로 해소하는 건가요?
또 그런 느낌은 아닌데, 그러니까 어떤 스트레스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그걸 해결하려고 접근을 하는 게 능동적으로 해소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라 그냥 ‘어차피 지금 생각해봤자 아무 도움 안 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수동적으로 해소하는 거고요.
취미나 요즘의 관심사가 있으세요?
네모 로직도 재밌고, 블로그 쓰는 것도 좋아요.
블로그에는 주로 어떤 글을 쓰세요?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쓰는데 그건 비공개로 올리고요. 서로이웃으로 올리는 건 일기를 한 일주일치 모아서 뭐 했고 어땠다 이렇게 써요.
책은 어떤 걸 읽으세요?
여기에 대해 좀 할 말이 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책 읽는 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과에 맞춰서 생기부를 준비하다 보면 재미없는 경제 책만 읽게 되니까, ‘진짜 대학 가서 책 안 읽어야지’ 하고 책과 담을 쌓고 산 게 오래였어요. 그러다 사람이 고민이 많아지니까 뭔가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에 갑자기 약간 홀린 듯이 학교 교보문고에 가서 여행 에세이를 하나 샀는데, 뭔가 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2학기에 많이 하기도 했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뭔가 느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읽었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 책 읽고 나서 다른 책도 좀 찾으면서 읽고 있어요.
어떤 점에서 좋았어요?
저자분이 10년 차 승무원이셔서 여행을 정말 많이 다니시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본인이 느꼈던 점이나 특히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살아갈 때의 마음가짐이라든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분이 느끼신 게 저한테 되게 많이 와닿았어요. 책 제목은 ‘맑은 날이 아니어도 좋아’였어요.
여행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여행을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점에서 여행이 좋나요?
여행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기보다는 현실에서 쥐고 있는 것들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시간 내서 돈 써서 여행을 왔으니까 정말 재밌는 여행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딱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 현실에서 고민하던 것들도 잊어버리고, 생활하던 공간과 아예 다른 공간에 온 거니까 딱 그 ‘재밌는 여행을 하자’라는 것만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좋아요.
본인의 여행 스타일이나 여행 철학 같은 게 있나요?
함께 여행한 사람이 재밌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어요.
본인과 함께한 사람한테 즐거운 기억이었으면 좋겠다는 거네요?
네. 그러니까 저 자체는 느긋하게 휴양하는 여행도 좋고 많이 돌아다니는 여행도 좋은데,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이 약간 짜증을 느낀다든지 하면 그 순간 그 여행에 대한 흥미가 확 떨어져요. 그래서 저는 어떤 여행 스타일이든 선호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높은 확률로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어요.
그럼 혼자 여행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 해보지는 않았는데 조금 심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여행해 본 나라는 어디인가요?
해외는 일본, 중국,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이렇게예요. 국내는 전주를 여름에 갔었고, 곧 대전에 가고 겨울에는 강릉에 갈 예정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혹은 여행이 있나요?
방학 때 대학교 친구들이 부산에 놀러 와서 부산 구경을 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그 여행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일단 여행을 같이 한 친구들의 만족도가 높았어요. 그리고 제가 한 집에서 이사를 한 번도 안 가고 되게 오래 살았어요. 그래서 딱 제가 사는 곳만 알고 조금 반경을 벗어나면 잘 몰라요. 근데 이제 친구들이 왔으니까 부산 다 보여주겠다는 마음을 갖고 안 가보던 관광지 같은 데도 많이 가봤는데 ‘내가 살던 곳이 이런 곳이었구나’ 하고 매력을 오히려 많이 알게 되어서 기억에 남았어요.
몇 질문 안 남았습니다. 본인의 인생에서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하는 가치가 있나요?
양보할 수 없는 거라…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요.
좋은 사람들이란 무엇인가요?
제 자신이 좀 더 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요. 서로가 잘 되길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관계. 왜 이런 답이 나왔냐면, 고등학교 친구 중에 제가 진짜로 원해서가 아니라 어떤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의해서 제 선택을 바꾸게 될 때마다 저한테 항상 그걸 상기시켜줬던 친구가 있었어요. “네가 원하는 게 이게 아닌 것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라고 하면서요. 그렇게 저도 모르던 제 성격을 알려주고 제 진심을 꺼내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저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좋아요.
인간관계에서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많은 것이요. 공유하고 있는 시간도 되고, 추억도 되고. 근데 그 시간이 별 의미 없는 시간이면 딱히 중요하게 여겨질 것 같지 않아서, 둘 다 서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공유된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추후에 먼 시간이 지나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그때의 좋았던 감정으로 관계도 잘 이어나갈 수 있어요.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친해져서 중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같이 지내고 전학을 간 친구가 있는데 지금까지도 제일 친한 친구로 남아 있을 정도로 공유하고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렇다면 공유하고 있는 시간이 없는, 초면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게 중요한가요?
상대가 저를 평가하려고 하면 확 식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드는 사람이 좋습니다.
재영 씨,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둥근 사람이 되고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같이 인도네시아 다녀온 팀에서 팀장을 맡았던 언니가 있는데, 정말 그 언니 덕분에 우리 팀이 이렇게 아무도 안 싸우고 오랫동안 잘 굴러갈 수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아우르는 역량이 탁월했어요. 그 언니가 자기는 둥근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고, 앞으로도 그걸 목표로 살아갈 거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어요. 둥글다는 게, 사람들을 대할 때 뭔가 막 톡 쏘거나 그러지 않고 일단 웃음과 포용으로 대하는 것 같아요. 그 언니가 그런 역량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타인을 대할 때 좀 더 포용적이고 웃으면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이어지네요.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그렇죠. 최근에 저는 어쨌든 사람 덕분에 행복할 수 있고, 사람과 함께해야 성장도 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타인과 함께하는 것을 그닥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대학에 와서 사람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필자는 사람을 저마다의 색으로 기억하곤 한다. 어디서든지 화려하고 독특한 사람은 채도 높은 연두색, 통통 튀는 발랄한 매력의 소유자는 개나리의 노란색, 주변을 아우르는 능력이 뛰어난 이는 파스텔톤의 하늘색.
그런 필자에게 임재영 양은 베이지와 갈색의 그라데이션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요즈음 서로에게서 너무 실리만을 취하려 하거나 되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여기, 부드럽고 포근한 색감의 임재영 양은 타인을 돕는 데에서 순수한 보람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가꾸고 역량을 길러나간다. 사려 깊음의 갈색과 성숙함의 베이지로 빛나는 그는 누구보다 현명하고 겸손하게 관계에 임한다. 둥글게 색을 찾는 그의 여정이 종래에 유의미하기를 바란다.
임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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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경제학부 C반 23학번이자 LnL 2A반 구성원.
LnL 사람들의 에디터이며 2023 하계 인도네시아 글로벌 SNU공헌단 단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