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과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들
친정과 시댁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친정 식구들은 숫자로 환산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를 원한다. 엄마의 질문에는 ‘정확히 언제’가 우선했고 동생은 ‘정확히 얼마’가 중요했다. 정해진 시각에 정확한 정량을 정확한 순서로 수행하지 못하면 ‘바보’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집이다. 식구끼리 대충이라는 말은 그 대충이 아니다.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부엌 창문 대충 11 cm만 열어 도. 야! 그건 15 cm이지, 니 바보냐?” 창가에 앉은 나에게 동생이 말했다.
“체온이 37도면 괜찮은 거야. 38 도 넘어가면 병원 가자.”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서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우는 어린 나를 간호사인 엄마는 한 번도 달래 주지 않았다.
조금 모자란 용돈을 빌리면 선이자를 떼고 준다던가 오랜만의 가족모임 약속을 잡아도 몇 시부터 두 시간 가능, 이런 식으로 문자 답변이 돌아온다. 누가 더 줬니 마니 이런 논쟁 자체를 싫어하고 원하지 않은 호의에 생색내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가족 간에도 생일을 챙기지 않거나 비용은 무조건 반반 부담이다.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든 나의 사회생활은 그 연장선상이었다. 직장에서 나는 직원들의 업무를 정성적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영업이익에 빗대어 설명했다. 업무 상담 시간에는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를 알려 달라고 했는데 왜 울음부터 터트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유를 알려 주면 도와주겠다는 진심을 몰라주니 울어도 내가 울 판이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많은 것이 변했다. 시아버지께서 혼자가 되셨고 농사를 짓다가 허리를 다치셨다. 우리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친정엄마에게 차를 빌려 구례를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차량 사용료, 유류비에 톨비, 차량의 감가상각비까지 고려하면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길거리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나는 재택근무를 신청했고 구례로 귀촌했다.
우리 부부는 시간과 돈을 상당히 아낄 수 있게 되어 매우 만족했다. 구례읍에 사시는 시고모님은 나를 ‘아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조카네가 고향으로 귀촌했는데 비싼 월세를 내고 산다고 속상하다고 하셨다. 나이 오십의 아가는 식재료를 주셔도 할 줄 아는 음식이 없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는데 김치, 된장, 고추장 다 퍼주시려고 한다. 집에는 빈 반찬통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자를 어떻게 계산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봄이 되었고 시아버지를 도와 새벽에는 고사리를 꺾고 틈틈이 텃밭의 잡초를 뽑는다. 시아버지는 잘 말려진 고사리를 팔아 보라고 하셨다. 계산을 해 보았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법이 정한 최저임금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팔아야 한다. 그게 시세란다. 돈으로 환산하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니 나는 아침 운동을 고사리 꺾기라고 정했다. 서울에서는 돈을 내고 운동을 했는데 귀촌하고는 운동을 했더니 돈이 생겼다. 그리고 빈 반찬통에 고사리를 담으면 되니 일석삼조였다.
고사리를 한 근씩 정량하고 포장하는 일은 시아버지와 남편 담당이다. 궁금한 나는 참견을 한다.
아버지, 지금 610g인데요? 그러냐? 그리고 시아버지와 남편은 주저하지 않고 한 주먹씩 더한다. 600그램짜리 봉지는 이제 잘 묶이지도 않게 되었다. 애당초 저울은 왜 다는 거지?
부조리로 가득한 나의 고사리 끊기 여정은 가끔 서울행으로 중단된다. 친정 엄마에게 며칠 전에 미리 연락해 두었지만 출발 전에 네비 상의 도착 예정시간을 알려 주고 차가 막히기 시작하면 또 전화를 넣는다. 남편이 옆에서 짜증을 낸다.
“장모님 귀찮게 왜 여러 번 전화하고 그래. 어차피 지금 가는 길인데.”
저녁 늦은 시각에 도착할 사위에게 갓 지은 흰쌀밥을 먹이려는 장모는 도착 19분 전에 꼭 전화를 달라고 여러 번 문자를 남겼고 지금쯤은 유일하게 보는 주말연속극도 포기하고 시계만 쳐다본다고 그 이유를 구질구질하게 내뱉기보단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남편은 이해를 못 할 것이다.
서울 볼일을 마치고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어버이날 전화 한 통 못 드린 게 마음에 걸려 주말이 지나기 전에 시아버지 모시고 점심을 하기로 했다. 남편이 당연히 아버지께 그리 전했다고 생각했다.
봄철의 지역 축제들로 평소와 다르게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했다.
“약속은 무슨! 어차피 구례에 계실 건데 도착해서 집에 가면 되지.”
“혹시 점심 이미 드셨으면 어쩌려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도착했음에도 매 끼니 정확한 시아버지는 아직 점심 전이셨다.
“자기가 미리 말씀드린 거 진짜 아니라고?”
남편의 얼굴에서 구질구질 설명을 포기한 익숙한 표정을 발견하고 나는 이쯤에서 되묻기를 포기했다.
그나저나 동생네가 주문한 고사리 한 근은 어떡하지?
시아버지와 남편이 저울을 꺼냈다. 나는 이번에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두 부자가 대충 알아서 정확히 잘 담아줄 것이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