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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Dec 31. 2019

시간은 사랑을 잊습니까?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난, 너 아니면 안 돼."

헤어지던 날...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그냥... 잊어."

헤어지던 날...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마지막 말.../


>>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그녀는 웃었다.

물론, 억지로 입가를 올리는, 씁쓸한 웃음이었어도,

그녀의 눈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누구도 그녀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뜻./

이미 오래전부터 짐작은 했어도,

막상 <헤어지자>는 네 글자 앞에서,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시켜놓은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고-

왜냐고, 꼭 그래야만 하겠냐고 되묻고 싶었어도,

입을 열면, 말보다 울음이 먼저 튀어나올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척을 하면서도, 이를 꽉, 물어야 했다.


헤어지는 길은, 참 길었다.

까페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버스를 타고 또 30분-

그녀의 동네에서 또 그녀의 집 앞까지.../

말이 없어서 그랬나, 길은 더, 멀게 느껴졌다.

그녀의 집 앞, 더는 갈 곳이 없어졌을 때, 그는 용기를 냈다.

너 아니면 안 된다는 말로, 헤어지고 싶지 않단 마음을 대신했는데,

그녀는 그냥, 잊어 달라 했다.../


그녀가 그러라고 하니, 끄덕끄덕... 

앞에선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놓고,

돌아서서 그는, 이렇게 되뇌었다.


내가 널, 어떻게 널, 잊을 수 있겠니.../


>>


물론 그는, 그녀와 헤어진 후에, 다른 여자를 만났다.

하지만 그랬어도, 그녀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늘, 새로운 사람과 그녀를, 비교했다.

그 사람은 밥도 잘 먹었고, 껄껄, 잘도 웃었는데-

그 사람이랑 영화 보러 가면, 늘어져라 자도, 창피하지 않았는데.../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을, 여자는 모를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여자는 한숨 섞인 말을 토해냈다.

"(여) 그 여자.. 부럽다..."


쿵.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소리./

눈에 눈물이 그렁한 채로, 여자의 입은, 웃고 있었다.

꾹 다문 입술에, 많은 말이 담겨 있었다.

니 마음이 껍데기뿐인 줄, 나도 이미 알고 있단 말-

그래서 많이, 힘들단 말.../


뱉어버린 말이 후회스러웠는지, 여자는 걸음을 재촉했다.

두 걸음쯤 앞서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그녀의 뒷모습이 어땠는지, 기억나질 않았다.

분명 기억하려고 애썼는데, 다 잊고 말았다.


애쓰던 긴 시간이 억울하고,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여자의 마음에,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고, 그는 여자를 돌려세워, 손을 잡았다.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잡힌 손을, 빼냈다.

그리고 그의 눈 대신, 땅만 보다가... 돌아섰다.


여자의 뒷모습엔, 돌아보지 않겠단 결심이 굳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또, 널 잊지 않겠단, 다짐을 했다.

스스로의 힘으론 지키지도 못할, 바보같은 다짐.../


>>


아무리 애써 봐도,

시간이, 사랑을,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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