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늬 Jan 16. 2020

곁에 있는것보다 떠나는 게 쉬워서

[픽션에세이] 그런사람이있었다

그녀가 왼쪽 입술 끝에 힘을 준다. 잔뜩 짜증이 났다는 뜻이다.

그녀는,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말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그녀의 친구들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들보다 남자 친구들이 더 많게 된 것은,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다가,

그저 <친구>일 뿐인데, 그가 너무 티나게 싫어하는 것이,

그녀도 역시 불만이었다.


오늘 그가 화가 난 건, 어젯밤 일 때문이었다.

어제는,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2년 만에 돌아온 친구의 환영회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술을 몇 잔 마셨는데, 

술 취한 그녀를 혼자 보낼 수 없던 친구는, 그녀를 집 앞까지 바래다줬던 거다.

그런데 마침,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생각으로

그녀의 집 앞에 찾아왔던 그가, 그 광경을 목격했고,

그녀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젯밤 일을 가지고

지금 그는,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으로 시작된 얘기는, 그 전, 또 그 전의 얘기들까지 끄집어내어

그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그들 앞에서 쉽게 웃는 것도 싫다, 그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싫다,

그들에게서 선물 받은 물건을 니가 들고 다니는 것도 싫다...

그 말은 곧, 그녀의 친구들과 관계된 일이라면 몽땅 다 싫다는 뜻이 아닌가-


그녀의 친구들은 그를 싫어하지 않는데, 그는 그녀의 친구들을 싫어한다...

그녀의 친구들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데, 그는 온통 친구들에 관한 일이라면, 잔소리 뿐이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 떠오른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에게 꺼냈다. “우리, 헤어지자”


>>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 앞에서, 그는, 철없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꼬마였을 때부터 그는 골목대장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일단 싸움이 붙었다 하면, 그가 지는 법은 없었다.

누구에게도 맞아본 적 없던 그가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기로 결심한 건,

고등학교 음악시간의 경험 때문이었다.

아주 잠깐, 깜빡 졸았을 뿐인데, 선생님의 손바닥이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게 무슨 말인 지 알 것 같았다.

처음 그렇게 맞아보고서야 그는, 맞는다는 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알았다.

아무한테도 맞아본 적 없을 땐 남 때리는 게 쉽더니,

어이없게 한 번 맞아보고 나선, 때리는 쉽지 않았다.


문득 철없던 시절의 자신이 생각난 건,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해 버리는 그녀의 나쁜 습관 때문이었다.

처음 헤어지잔 얘길 들었을 땐, 

선생님께 뒤통수를 맞았던 그 때처럼,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그녀와 헤어질 수는 없어서, 그는 매번 그녀를 붙잡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도 조금씩 지쳐갔던 모양이었다.

지금 <헤어지자>는 말을 던져놓은 그녀의 눈빛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원하는 대답 대신, 다른 대답을 해 주기로 결심했다.

“그래. 그러지 뭐...”

그 정도쯤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한 그의 말에, 그녀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하지만, 헤어지기로 결심한 그의 마음은, 이번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갈 거냐는... 잘못했다는 그녀의 말이 들린 것도 같았으나

그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된통 맞아본 놈은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알아서, 

남을 쉽게 때리지 않는 법이라는 걸, 그녀도 알게 되길 바랬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이별에도 가해자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