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무늬 Mar 25. 2020

서로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이들의 이름은 <타인>입니다.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결국 그녀는 그에게, 넌 아니라는.../ 

그 모진 말을, 해야만 하는 걸까.../


...............


막 퇴근을 하려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나가다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아직 퇴근 전이면, 회사 앞이니까,

만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그의 목소리는,

애써서 최대한 가볍게 말하려는 톤이 분명했다.


약속이 있었던 건 아닌데다가,

그냥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다고 생각했으면서도,

그와 저녁을 먹기는 싫어서... 그녀는 난감해졌다.

둘러댄다고 한 말이... "어쩌지... 나, 벌써 퇴근했는데../"


말해놓고, 아차 싶어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가 회사 문 앞에 서서,

발끝으로 땅을, 톡톡, 구르고 있었다.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고도 그는, 

아예 회사 앞 벤치에 앉아서, 담배까지 꺼내 문다.


이미 퇴근했다고 말해버린 터라, 

그가 사라질 때까지, 이제 그녀는 퇴근을 할 수도 없게 됐다.


퇴근시간에 맞춰, 회사 앞에 와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

그는 오늘 저녁, 지나가다가 그냥 들른 것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온 줄, 그녀도 다 안다.

고마울 법도 한데,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그의 어깨는 구부정해 보였고,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은, 오히려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


어서 그가 회사 앞에서 떠나주기를 기다리며,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좋아해주는 그가,

왜 그렇게 싫은지, 생각해 본다.


만약에 그가..

지나가다 들렀다고 말하지 않고,

니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왔다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지난 그녀의 생일에, 목걸이를 선물하면서,

예뻐서 샀는데, 딱히 줄 사람이 없더라는 말 대신,

니 생일 선물 주려고 고민해서 샀다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건,

언제나 그에게, 딱 그만큼의 거리만 허락하는

그녀의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건, 그녀만의 거절 방식이었다.

그가 지나가다 들렀다고 하면,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진 않고, 응 그렇구나.. / 그렇게 믿어버리는 것-

그가 건네는 커피에서, 마음은 쏙 빼고, 커피만 마시는 것-

이렇게..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는, 그가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그녀는 날이 갈수록 싸늘해져 가고-

그녀의 싸늘함에, 마음을 베이면서도, 날이 갈수록 그는, 애가 탔다.


더 이상 그의 호의를 차갑게 받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진 그녀는,

오늘은 기어이, 못된 여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하며,

코트를 입고, 가방을 챙겨들고, 회사 문을 나선다.


............


37.5도. / 

그 기본적인 체온마저도, 나눌 수 없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이들의 이름은, <타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지난 사랑을 재활용하다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