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그런사람이있었다
그의 부재중전화를 확인한 건,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난 다음이었다.
오늘따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엄마가 차려놓은 아침상도 마다하고
후다닥, 세수만 겨우 하고 집을 나서야 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다 쑤셔 넣고 나오느라, 휴대폰을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다가, 오늘따라 갑자기 처리해야 할 서류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정신없이 아침나절을 보내고, 겨우 밥 한 그릇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나서야, 휴대폰을 확인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바빴던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친구들이, 축하메시지 한 통이 없는건지, 투덜대며 그녀는 휴대폰을 열었다.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던 시간은, 새벽 2시...
발신자 표시가 제한되어 있었다.
새벽 4시 즈음엔, 발신자 정보가 없는 문자도 도착해 있었다. <생일 축하해>
그게 누가 보낸 메시지인지는... 누가 걸었던 부재중전화인지는...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었다.
가슴 언저리가 싸르르, 아파왔다.
그와 헤어진 지 3개월만에, 그에게서 처음으로 온 연락이었다.
유달리 미련이 많던 그가, 얼마나 참다가 전화했을지,
유달리 배려심이 많은 그가,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문자를 했을 지, 다 알겠어서-
전화를 걸려다 만다. 고맙다고 답장이라도 보내려다 참는다.
어떤 이유로든 연락하지 않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빨리 잊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으니까.
>>
그녀에게서 연락이 없을 거라는 걸, 그도 알고는 있었다.
솔직히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다.
어젯밤 그는 하루종일 전화를 할까말까 망설였다.
술을 한 잔 하고서야, 겨우 용기가 나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딱... 생일 축하한다는 말만 하고 싶었는데, 그녀는 끝내 전화를 받진 않았다.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생일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내놓고는 또..
혹시 모를 답을 기다리느라,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녀에게선 연락이 없었고,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혼자서라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그는,
퇴근길에 커피숍에 들러, 커피와 함께, 손바닥만한 미니 케잌을 하나 샀다.
커피를 마시며, 케익을 먹으며... 그는, 휴대폰에 저장된 그 시절들을 돌려본다.
내일 비오니까 우산 챙기라는 문자,
그녀가 바닷가로 출장갔을 때 혼자 보기 미안하다고 찍어 보낸 사진들...
술에 잔뜩 취해 보낸 것이 분명한, 오타가 가득한, 사랑한다는 문자...
헤어지고 홧김에, 헤어지고 술김에,
그녀에게 받은 문자며 사진들을 다 지울 뻔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그 시절들을 돌려보고 있자니, 그러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벌써, 그와의 시간들을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제 새벽, 뜬금없는 그의 연락에 당황했을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그녀가 듣지 못하더라도, 혼자서라도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그는,
그녀가 듣지 못할 다짐을 또 한 번 해본다.
‘내년 생일엔, 아니 적어도 그 다음해 생일엔...
그 때까진, 널 다 잊을게.
그 땐, 내가 니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하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길...’
>>
혼자서만 간직하는 오늘이 안타까워도,
아직은 따뜻하게 남은 그 시절들에 위로를 받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