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그런사람이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안 계신 사이,
친구들을 다 집에 불러다 놓고, 뽑기를 만들어 먹은 적이 있어.
냄비를 꺼내, 거기다 설탕을 잔뜩 붓고, 슬슬 녹이다가는,
마법의 가루, ‘소다’를 넣으면,
짙은 갈색이던 설탕은, 옅은 갈색이 되면서, 이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지.
그 때의 그, 떨리는 기분.../
젓가락으로 콕 찍어 한 입씩 먹다 보면, 달콤한 그 맛에 푹 빠져서,
엉망이 된 냄비 따위는, 걱정도 안 됐던 것 같아.
걱정이 시작되는 건,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저녁 무렵...
키도 닿지 않는 싱크대에 서서, 냄비를 박박 씻어대는데,
다 타버린 냄비는 깨끗해질 생각도 안 하는 거야.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엄마 올 시간은 다 돼가고...
문 밖에서 엄마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에라, 모르겠다....
급한 대로 아무데나 냄비를 숨겨놓고는, 시침 뚝, 떼는 거야..
그 때부터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엄마 눈치를 살피게 되지.
엄마가 냄비를 숨겨 둔 곳을 알아채면, 그 땐 난 끝./
잘못은 이미 저질렀고, 엄마가 영영 모르진 않을 거고-
언제고 당연히 혼은 날 텐데,
혼 날 걸 다 알면서, 그 때를 기다려야 하는 기분.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자꾸 후회만 해...
내가 왜 그랬을까, 친구들을 부르지 말 걸-
아니, 부르더라도 냄비에다가 뽑기를 해 먹진 말 걸-/
드디어 냄비를 찾아낸 엄마가, “너 이 녀석!” 하는 순간,
벌써부터 서러워져 눈물이 찔끔 나지만,
후회해봤자, 이미 늦은 일.../
>>
요즘 내 기분이 딱 그래.
넌 자꾸 나를 만나기 싫어하고, 말도 없고,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그럴 때 마다, 그 때.. /
엄마한테 야단맞을 타이밍만 불안하게 기다리던 어릴 때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생각해... /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돌이킬 수 있다면, 어디서부터 돌이켜야 하나...
지난 여름, 너 혼자 여행 다녀오고 싶다고 그랬을 때,
혼자 보내지 말고, 나랑 같이 가자고 졸랐어야 하나-
가을에, 너 머리 짧게 잘랐을 때,
그냥 너 보며 피식 웃지 말고, 예쁘다고 했어야 하나...
무엇보다 지난 겨울...
“우리가 헤어지면, 넌 어떨 거 같아?”
니가 그 말을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난, 니가 그 때, 어떤 생각을 하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글쎄? 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그럴 건데?” 장난이나 쳤지.
그 때, 씁쓸하게 웃는 니 표정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내가 알았어야 하는데.../
그랬더라면, 그렇게 멍청한 대답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 있잖아...... 결론이 달라지진 않겠지?
이미 나는... 혼나도록, 결정돼 있는 거지?
언제쯤... 얘기할 거야?
가능하면 늦게... 아주 늦게 해주면 안 될까?
불안한 마음이, 무뎌질 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조금 덜 아프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은데..../
>>
어디서부터 다시 쓰면, 이 얘기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한 순간의 실수로 어긋나기 시작 해,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이, 슬픈 결말로 향하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