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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 Oct 21. 2022

무식한 시간

소설가 김보영이 작가의 말에 이렇게 남겼다.


나는 '일생 한 편만 써도 없는 것보다는 많다'는 생각으로, 10년이 걸리든 평생이 걸리든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첫 소설들은 그렇게 무식한 시간을 들여 썼다.


무식한 시간.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대는 그 시간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나는 무식한 시간을 견디는 것에 능하다. 선수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서 그나마 얻은 한 가지 능력이지 싶다. 무식한 시간을 즐긴다고 말하면 자학적인 사람처럼 비춰질까봐 굳이 입밖에 내지 않지만, 나는 그 시간에 가장 설레인다.


시간은 어차피 흐른다. 무식한 시간을 보내느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느냐 그건 오로지 선택의 영역이다. 무식한 시간이 성취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식한 시간도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한 시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도 나는 기꺼이 무식한 시간을 택한다. 매일의 무식한 시간의 조각들은 더해지고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둘러싸는 안전한 성벽이 된다. 그 성벽 안에서 나는 출정을 준비하면서 전략을 세우고 기술을 연마하고 한편으로는 편히 쉬기도 한다. 자유롭게 밖을 떠돌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격을 두려워하느니 차라리 무식하게 성을 쌓는 것이 내 방식이다. 성이 무너진다고 해도, 성을 한 번 쌓아본 것이 성을 한 번도 쌓아보지 않은 것보다 낫다.


무식한 시간만큼 나를 견고하게 하는 것은 없다. 애쓴 지난 세월이 남겨준 소중한 신념이다. 무식한 시간이 모질었던 날들에게 매질당한 나를 뭍으로 밀어내 준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식한 시간을 보내러 외로운 곳으로 간다. 손에 땀이 차고 몸이 떨리는 날에는 무식했던 시간이 외롭지 않게 내 곁을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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