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 Aug 02. 2022

아줌마가 쓰러졌다

상실과 삶

아줌마가 쓰러졌다. 내 손을 맞잡고 있던 아줌마 손에 힘이 들어가고 체중이 실리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3층 엘리베이터 앞에서였다. 질끈 감은 눈, 눈물에 번진 화장, 한쪽으로 꺾인 고개, 헝클어진 단발머리, 사위로 뻗은 팔과 다리. 그래도 아줌마는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입술을 아래로 반원모양으로 다문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형사과장이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셔야 해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말은 비눗방울처럼 허공에 번졌다. 딴에는 애썼겠다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음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냥 자리를 비켜주시면 안될까요,라는 말을 겨우 삼켰다.


아줌마를 보내고 나도 택시를 잡아 탔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은채로 눈을 꼭 감았다. 쓰러져있던 아줌마의 전신이 얼굴이 꾹 닫힌 눈이 눈꺼풀 사이에 맺힌 눈물이 차례로 줌인되어 나타나 나를 사로잡았다. 속이 메슥거리더니 당장이라도 구토가 쏟아지려고 했다. 택시는 1차선을 달리고 있었으니 택시를 세울 방도는 없었다. 목젖까지 는 신물을 집어삼켰다. 조사 때 마신 커피 탓이거나 택시아저씨가 운전을 거칠게 한 탓이겠지.


아줌마는 6개월 전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의 피해자다. 아줌마는 지인의 소개로 우리 회사를 찾아왔고 내가 사건을 배당받아 고소장을 제출했다. 오늘 우리가 경찰서에 간 건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조사를 받는 내도록 아줌마는 쉴새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고 우리는 호호 수다를 떨었다. 아줌마의 손톱에 칠해진 네일아트, 가지런히 일렬로 다듬어진 단발머리 뒷통수,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에 담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기억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수사관은 남편의 죽음에 관해 물었고, 아줌마는 질문 사이의 틈을 타 내게 요즘에는 흘러내리는 체크무늬의 네일아트가 유행이래요, 변호사님 결혼 안하셨으면 부모님이 걱정하겠어요, 따위의 우리의 세상살이에 관해 빠른 속도로 떠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는 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넘어가던 즈음에서야 나는 아줌마에게 사건 이후로 일상생활에 어려움 겪않는지 물었다. 질문을 애써 참은 건 아니었고 아줌마의 수다에 내 질문이 끼어들어갈 틈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줌마는 두 눈으로 반달웃음을 지으며 명랑하게 말했다. 요즘은 걷다가 중심을 잃고 주저 앉을 때가 많다니까요, 남편이 죽고는 강아지를 산책시켜준 적이 없요, 아들이 장을 봐서 갖다줘요, 한 넉달인가는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못탔어요. 아줌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고 남편의 죽음은 파도가 되어 그녀를 삼켰다가 내뱉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사가 마무리되던 차에 수사관이 수사가 난항을 겪는다는 말을 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아줌마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이윽고 조사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차에 아줌마가 쓰러졌다. 수사관이 뱉은 어떤 말이 물꼬가 그녀를 덮쳤으리라. 그녀는 아들의 차를 타고 겨우 집으로 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은 새파랗다못해 이가 시릴정도로 비정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택시 안에서 신물을 삼키고서야 알았다. 그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기 때문이구나, 애초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위로는 없구나. 아줌마는 오늘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거다. 그래도 언젠가는 남편의 죽음이 파도가 아닌 장독대가 되기를. 그때가 되면 언 땅 속에 장독대를 파묻듯 남편의 죽음을 마음 깊이 묻어두고 가끔 꺼내어 아이들과 아빠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겠지. 다음에 아줌마를 만나면 요즘은 장을 보러 마트에 가는지 물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헤어지지 않는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