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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 May 19. 2022

헤어지지 않는 사이

둘기언니에게

내 한 가운데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토끼 한 마리가 문 안에서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어찌나 낯을 가리는지 누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달아나버리기 십상이다. 토끼가 처음부터 쫄보였던 건 아니다. 당근에 속고 덫에 걸리고 줄에도 묶이다보니 그리되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총명해지기까지 했다. 총명한 쫄보 토끼 덕분에 문 안으로 들어온(들어왔다가 나간 경우까지도) 사람들은 모두 선했다.


마음의 크기가 단칸방마냥 좁아졌던 때가 있었다. 꿈, 공부 같은 것들이 몸집을 잔뜩 부풀렸던 때였다. 그 즈음부터였나 쫄보 토끼의 허락을 받아 그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깊게 사랑하는 이성뿐이었다. 친구에게는 자리를 내어주지 못했다. 그게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내게 깊지 않은 것은 곧 쓸모없는 것인데, 친구들과 일정 깊이 이상으로 깊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들과의 관계는 내게 쓸모가 없나 그들에게는 과연 쓸모가 있나. 부담이었지만 방황할 틈은 없었다. 애초에 마음이라는 것을 일으킬 물리적 틈도 정신적 틈도 없었다. 최근에야 찌그러졌던 사랑이 제 부피를 회복했다. 고맙게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친구도 있었고 운좋게도 회복기에 맞추어 새로이 인연을 맺게된 친구도 있었다. 기꺼이 내 몸을 내어 지지대가 되어 주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둘기언니(프로이직러인 그녀의 이름은 비둘기) 방에서 얘기를 했다. 그 와중에 언니가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콕하고 집어냈다 내 약점이었다. 애초에 우리 사이에(적어도 내가 언니에게) 감추고 싶은 마음이나 약점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에 언니가 집어낸 지점을 부인할 필요는 일절 없었다. 언니는 쫄보 토끼를 지나 문 안으로 들어와 내 사랑의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 언니가 -나도 비슷한 약점이 있어-라며 본인의 약점을 내놨다. 우리가 함께 보낸 7년은 커녕 10년, 15년을 함께 보냈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약점이었다. 듣고나니 그 동안 아리송했던 언니의 모든 행보가 한 순간에 이해되었다. 그날 당장에는 언니를 더 이해하게 됐다며 깔깔 웃고 말았는데 며칠째 곱씹어보니 찡했다. 손에 상처가 나서 피가 철철 나는 상태로 서로의 손을 맞잡은 기분이었다 쓰라리지만 따뜻하고 포근했다.


사랑하는 이성과의 사이에서만 느껴봤던 감정이었다.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줬다. 그래서 내게 이별은 유난히 힘든 작업이었다. 빨갛게 부풀어오른 상처에서 반창고를 떼어내는 일이었으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고, 사랑 끝에 이별이 무서워서 사랑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다. 둘기언니랑은 헤어지지 않아도 되겠지. 내가 늘 하는 농담처럼 내가 언니 장례 치뤄줄거니 우린 그 때까지 헤어지지 않을거다.


사실 이 글을 쓰는건 복잡한 마음 탓이다. 둘기언니가 이제 정말 이 직장도 이 지역도 떠난다. 그래도 불안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복잡할 필요 없다. 우리는 한 철의 마음으로 이어진 사이가 아니다 그래서 맞잡은 손을 놓고 서로의 상처를 다시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우는 건 언니 장례치뤄 줄 때에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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