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한 시간 조금 넘게 차로 달려와 이토록 멋진 절경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강원도 철원에 있는 한탄강 주상절리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곳은 TV에서 몇 번 방영된 장소로 아내는 꼭 가고 싶어 했다. 오늘은 아내가 마침 쉬는 날이어서 아침을 먹자마자 도시락을 싸서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미세먼지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포천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서울을 벗어난 교외의 산은 아주 무성한 여름산이었다. 토실토실한 강아지 털처럼 처럼 울창해서 호랑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월에 들어서서 벌써 여름이 느껴졌다. 포천을 지나 있는 철원은 북쪽인지라 서울에서 지고 있는 철쭉이 한창 피어 주변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의 시작을 드르니 마을로 잡았다. 평일이어서 주차장은 여유가 있었다. 입장권은 1만 원으로 절반은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주었다. 준비한 도시락을 중간에 먹을 요량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왕복으로 4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음식 섭취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에 올 경우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였다.
드르니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한탄강 협곡은 장엄했다. 평지가 이어진 곳에 이처럼 깊은 협곡이 나타나니 눈이 저절로 크게 떠졌고 탄성이 새어 나왔다.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압권이었다. 울창한 숲사이로 깊은 협곡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웅장한 협곡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협곡 사이로 황톳빛 물을 진하게 풀어놓은 듯 한탄강이 요동이 없이 흐르고 있었다. 물빛이 탁해서 왜 그런가 하고 알아보니 모내기철이 그 이유였다. 논을 갈아엎고 모를 심기 위한 준비로 인해서 철원평야 흙탕물이 집중적으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강물이 푸르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탄성을 자아냈다. 원시의 자연을 느끼게 할 만큼 깊이가 있는 경치였다. 더구나 강이 바로 용암이 흘렀던 길이라는 사실이 경탄스러웠다.
전망대 아랫길로 내려가 울창한 숲 속으로 들어섰다. 걷기에 편리하게 데크 길이 나 있었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했기에 꽤 긴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온통 푸르름이 넘치는 길은 참으로 싱그러웠다. 강이 가까워지니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절벽 사이로 폭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소리에 더하여 물살이 거센 곳에서 소리까지 합쳐져 요란한 물소리가 시원함을 선사했다.
강가에 이르러 본격적인 잔도로 들어섰다. 걷는 길은 기존의 길이 아닌 절벽에 새로운 길을 조성한 것이다. 중국의 이름난 산에 올라 걸어본 아찔한 절벽의 잔도를 이곳에서 만났다. 철제로 튼튼하게 만들었고 머리 위에는 낙석을 방지하는 철망도 설치되어 아주 안전해 보이는 매혹적인 길이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잔도 길은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아래를 쳐다보면 오금이 저려 앞만 쳐다봐야 했다. 다행히 수려한 경관이 계속 이어져 두려움을 잊게 만들었다. 대부분 걷는 길이 숲 속으로 아주 상쾌했다. 새소리까지 울려 퍼져서 걷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잔도 사이사이로 긴 출렁다리가 놓여있어서 스릴도 있었다. 물론 아래는 절대 보지 않았다. 전망 좋은 곳에는 강으로 돌출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매력적인 경치를 조망할 수 있기에 두려운데도 불구하고 투명유리 위를 덜덜 떨며 걸어서 갔다.
협곡의 절벽은 암벽이었다. 대부분 주상절리라고 하는데 구분이 어려웠다. 드러나 있는 검은 암석의 표면이 아주 독특한 모양이었다.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했고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부조처럼 신비로운 느낌도 들었다. 이따금 철쭉이 피어있어 풍경이 더욱 돋보였다. 간간이 하얀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도 흘러 바위 절벽과 잘 어울렸다. 강물에 놓인 바위들도 완전한 추상 조각이었다. 한탄강 전체가 독특한 풍경을 빚어내 보는 내내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담이 큰 아내는 좋은지 연신 함박웃음이었고 무서운 출렁다리에서 두 손을 펼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두 시간을 걸은 끝에 순담계곡에 도착했다. 주상절리 길이 끝나는 장소였다. 원래는 왕복할 계획이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 시장한 관계로 택시를 타고 드르니 마을로 돌아왔다. 차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철원 상품권으로 식혜를 사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각시붓꽃 /철쭉/으아리/매화말발도리
귀경하기 전에 근처에 있는 고석정으로 차로 이동했다. 대략 10분 걸려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석정 주변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조형물도 보기에 좋았다. 고석정 내려가는 길은 온통 철쭉으로 뒤덮여 보기에 그만이었다. 정자도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했다. 소롯길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서 고석정을 만났다. 대표적인 철원의 절경으로 뛰어난 작가들의 사진 작품을 통해 봐서인지 조금은 낯선 느낌도 있었지만 기암이 소나무와 잘 어울렸고 빼어난 풍경은 분명했다. 유람선도 떠 있어 선경이 떠올랐다. 고석정의 철쭉도 눈길을 끌었다. 강 모래톱으로 내려가 전경을 돌아볼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고석정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느낀다. 우리나라 곳곳에 아직도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숨은 비경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외국을 찾아가는 여행도 좋지만 먼저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누릴 줄 아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 아닐까? 5월 20일이 지나면 고석정 꽃축제도 열린다고 하는 데 그때 다시 찾아와 푸른 한탄강물과 더불어 꽃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색채의 축제를 실컷 누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