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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서 만난 저녁노을

연휴 하루를 그리다

by 정석진

긴 추석 연휴에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무료하게 보내기는 너무 아쉬울 것 같아 가족들과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원래 이른 새벽에 출발하여 동해 푸른 바다를 보려고 했는데, 늦잠으로 까운 서해로 계획을 바꿨다. 서울에서 가까운 바다는 인천 영종도가 있지만 일몰이 아름다운 강화도를 선택했다.

동막 해변

오늘 계획은 한창 제철인 대하를 점심으로 먹고 바다에서 해가 지는 경치를 보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느긋해져 출발이 늦어졌다. 결국 11시가 다 되어 아내와 딸과 아들 그리고 애견 쁨이도 함께 치를 타고 출발했다.


예상은 했지만 도로에는 차들이 줄지어 서행을 하고 있었다. 여파로 김포 초입에 들어섰는데 한 시가 훌쩍 넘었다. 모두 배가 고프다고 해서 가까운 맛집을 찾아 나섰다. 대하가 주메뉴인 식당은 많이 알려진 곳이었는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대기 고객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거기에 주차도 어려워 근처에 겨우 차를 세우고 두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자리를 잡았다.


대하 2킬로와 새우라면을 주문했다. 강아지는 식당에 입장할 수 없어서 딸과 아내가 교대로 먹어야 했다. 손가락 두 마디를 합친 굵기의 싱싱한 대하는 달궈진 소금 위에 올라서자 펄쩍펄쩍 뛰었다.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붉게 익은 요리는 침샘을 자극했다. 새우의 머리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서 하얗고 토실토실한 살점을 발라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입안 가득 달큼하면서 탄탄한 식감이 예술이었다. 아이들도 두 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다면서 정신없이 먹었다.

라면이야 말해서 뭐 하랴! 시장기가 넘치니 젓가락질이 멈추지 않고 폭풍흡입이 이어진다. 새우머리는 버터구이로 먹을 수 있어서 별도 주문을 했는데 배가 불러서 따로 포장을 해야 했다.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 시각은 다섯 시를 지나고 있었다. 강화도 보문사에 들러 낙조를 보려 했는데 시간이 맞질 않아 지근거리의 바다를 탐색했다. 대명포구가 근처라 대안으로 찾아갔다.

대명포구

대명포구는 선착장만 달랑 있었다. 전경도 탁 트인 곳이 없어서 바다라는 느낌도 나질 않았다. 주변에는 건어물과 젓갈을 파는 시장과 식당들만 즐비했다. 부랴부랴 다시 찾아 나선 곳은 동막해변이었다.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도로도 1차선에다 차량들이 꽉 차서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일몰 시간이 6시 15분이었는데 도저히 제시간에 갈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석양의 바닷가를 보는 것은 포기하고 밤바다를 만나는 것으로 기대를 낮췄다.


그런데 느릿느릿 산마루를 넘어 도착한 동막해변에 해는 이미 졌지만 다행히 노을이 아직 걸려있었다.

얇은 어둠을 입은 하늘과 순한 바다가 입맞춤하는 곳에 붉은 밤의 꽃이 수를 놓았다. 기대하지 않은 정경에 눈이 커지고 가벼운 흥분이 인다.

해안 선을 따라 데크 길이 만들어져 바다 위를 걷는다. 발 밑의 바다는 푸른빛이 남아 있고 잔 물결이 일렁인다. 멀리 해변에 상가들이 내비치는 알록달록한 불빛이 바다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감이 빚는 밤의 향연에 불꽃놀이의 불빛들이 명랑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저무는 하루의 끝이 선사하는 빛의 향연에 빠져드는 동안 시간은 밤으로 달음질한다.

아내와 딸은 백사장에 누워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다. 편안한 느긋함이 온몸을 감싼다. 오기를 잘했다고 기쁨을 서로 나눈다. 여전히 하늘에는 미련처럼 붉은 끈이 남아있는 밤, 네온사인은 힘을 내며 주위를 밝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교통 체증으로 막히고 답답하다. 하루 종일 밖으로 나돌아 몸도 노곤하지만 마음은 가볍다. 실한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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