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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01. 2023

소년들-영화 시사회 참여기

영화 감상

시 월의 마지막 날을 영화 감상으로 마무리를 하는 행운을 누렸다. 올해 성북구의 한책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함께 하는 분이 기회를 주셔서 '소년들'이라는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가는 영화 시사회인지라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저녁을 집에서 먹고 아내와 함께 왕십리 CGV에 차를 타고 갔다. 오후 7시 반 상영으로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사회 참여의 열기가 뜨거웠던 것이다.


평소에 나는 한국 영화를 보러 가지 않는다. 영화란 모름지기 판타지여야 하는데 내게 한국 영화는 현실의 재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고 문화사대주의자라고 놀린다. 하지만 취향이 그런 걸 어쩌랴! 그렇지만 이번에는 시사회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맛볼 수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왔다.


부랴부랴 오느라 무슨 내용의 영화인 줄도 모르고 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것이라고 자막이 떴다. 이 영화는 1999년 전북 완주에서 발생했던 '삼례 나라 슈퍼 강도 치사 사건'의 실화를 다룬 것이다. 감옥에서 실형을 살고 있는 세 소년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었다.


이 사건이 종료된 후 새로 부임한  황준철 형사(설경구 분)에게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가 제보되어 재수사에 들어간다. 그는 미친개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베테랑에 능력 있는 형사였다. 사건 파일을 검토하면서 사건이 부실한 데다 졸속으로 수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재수사를 통해 사건이 파헤쳐지고 진범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경찰이 무고한 아이들을 강압수사와 폭행으로 거짓 자백을 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기존 사건의 책임자였던 최우성(유준상 분)의 집요한 방해로 재수사는 무산이 된다. 최우성은 경찰대 엘리트 출신으로 냉정한 카리스마와 명석함을 무기로 조직의 실세로 군림하여 요직을 차지하고 그들만의 파벌을 형성하여 경찰 조직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황 형사는 평소에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뛰어난 검거 실적을 내는 유능한 경찰이었고 진범을 찾아냈지만 이 사건을 들쑤셔 경찰 조직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좌천이라는 쓰라린 결말을 맞는다. 그는 기막힌 현실 앞에 울분을 토하지만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벽에 좌절하여 사건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처음 재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피해자의 딸과 의로운 변호사가 나서서 재심 청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황형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처음에 그는 애써 외면을 한다.  그는  불의를 보고 눈감을 수 없어서 내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는다. 조직적으로 은폐된 사건을 뒤엎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황형사는  양심의 소리를 따라 자신의 안위를 뒤로하고 다시 사건에 뛰어든다. 역시나 기존 부패세력은 권력을 앞세워 그를 파면의 위협뿐 아니라 아내가 하고 있는 음식점을 문을 닫게 위해하고 경찰인 딸까지 인사조치하며 사건을 덮도록 전방위로 압력을 가한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결연하게 맞서며 결국 재심에 들어가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이번에는 검사가 나서서 사건을 은폐하는 데 앞장을 섰기 때문이다. 비리 경찰과 검찰은 끝까지 사건을 은폐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진범이 법정에 나와 진실을 밝힘으로써 무고한 누명을 쓴 이들이 무죄로 판명이 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그들의 무죄방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에 가담했던 경찰과 검찰 관계자 어느 누구도 처벌받은 이가 없다. 영화는 그 사실을 명백하게 고발한다.


경찰과 검찰의 카르텔이라는 용어가 생각이 난다. 한 솥밥 그리고 동일한 운명 공동체라는 미명하에 그들의 이익과 명예만이 우선시되어 불법을 자행하고 정의는 땅에 짓밟히는 저질 패거리 문화를 이 사건을 통해 똑똑히 보여 준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단순히 시험 성적만으로 고위직에 임명된 경찰과 검찰은 자기가 최고라는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에 갇혀 윤리의식과 정의는 온 데 간데없고 오로지 자신과 조직의 명예와 이익을 앞세운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현장에서도 그들은 당당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직이 이를 눈 감고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사실이 무섭다. 조직 자체가 심각한 병이 들어 자체 정화 작용을 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돈 없고 힘없는 이들은 그물에 걸리고 권력이 있고 돈 있는 이들은 모두 다 빠져나가는 그물이 우리 사회의 법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생생한 현실에서 좌절하게 된다.


과연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가?


좋은 나라는 물질 번영에 있지 않다. 정의가 살아 있고 올바른 가치관이 바로 서 있는 나라다. 우리도 이제는 외적인 성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내적 성장을 이루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 일등 만능 주의에서 벗어나 한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성적 만능 주의, 물질 만능 주의로 병들어 가고 있는 사회에 그나마 의로운 소수가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 영화가 일으키는 작은 파장이 사회를 바르게 만드는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두 번 다시 이런 억울한 일이 이 땅에 벌어진 않기를.....

#에세이 #영화 #소년들 #영화감상 #함께성장연구소 #함성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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