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석진 Oct 25. 2023

인수재에서 만난 양념갈매기살의 치명적인 매력

북한산 인수재를 찾아 별미를 탐하다

그간 외식에 대해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다. 쓰고 싶은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집을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일은 분명히 즐겁다. 실제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고려하는 것은 사람들과 음식을 매개로 함께 교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찾아간 맛집이 여러모로 특별했기에 글로 남기기했다.


친하게 지내는 합창단 동료 2명과 북한산 속에 위치한 맛집을 찾아갔다. 모임을 기획한 친구가 갈매기살이 아주 맛있는 곳이라고 해서 날을 잡아 오게 된 것이다. 예전에 잘 알지 못할 때는 갈매기살이 돼지고기인 줄 몰랐다. 심지어 바다에 사는 갈매기를 먹는 줄로 오해한 적도 있었다.


갈매기살은 돼지의 갈비뼈 안쪽의 가슴뼈 끝에서 허리뼈까지 갈비뼈 윗면을 가로지르는 얇고 평평한 횡격막근을 분리하여 정형한 것으로 삼겹살 부위에 속한다. 소고기 안창살에 해당하는 것으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한 마리당 300 - 400그램 정도밖에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전에 만나 북한산 둘레길을 좀 걷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북한산 둘레길이라고 해서 산자락을 도는 것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산과는 무관한 도심길을 한참 걸었다.

솔밭공원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숲길을 걷고 싶은 마음에 친구에게 도대체 언제 산길을 걷게 되느냐고 몇 번을 물었다. 우이선 화계역에서 내려서 4,19 묘역까지 한 시간 반 정도를 도심을 내내 걸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북한산 둘레길이라고 해서 다 산속을 걷는 것은 아니란다. 그 친구는 나와 동갑내기고 유머코드도 잘 맞아 평소에도 티격대격하며 지낸다. 입이 나왔지만 그러려니 하고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식당은 진짜로 산속에 파묻혀  있었다. 산을 오르며 이런 곳에 과연 식당이 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산속에 떡하니 자리 잡은 모습이 놀라웠다. 인수재란 분명한 현판이 걸린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인수재 전망

이곳은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유지라고 한다. 12시가 되기 전에 갔음에도 식당의 외양과 다르게 이미 대기고객이 세 팀이나 있었다. 식사하는 장소는 간이 천막이었고 좌석도 많지 않았다. 눈길을 끄는 또 다른 한 가지는 두부를 직접 만들고 있는 장면이었다. 커다란 아궁이가 걸린 솥에 콩물을 삶는 중이었다. 거기에 산악 운반용 지게도 서있어서 여러모로 흥미를 끄는 식당이었다.


우리 순서가 되어 자리를 잡았다. 숲이 내다보이는 전망이 그만인 특별한 식당의 손님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고 커플도 있었지만 여성들이 많았다. 그 광경을 보니 확실하게 맛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반드시 이름값을 하기 때문이다.


기본 찬이 나왔다. 얼갈이배추김치와 쪽파무침에 기름장과 고추장 그리고 마늘이 전부인 소박한 구성이었다. 주문은 양념 갈매기살을 시켰는데 고기가 모자라 부득이하게 1인당 1인분만 시킬 수 있었다.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귀한 고기를 맛보는 것이라는 생각에 더 큰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도토리묵과 손두부 그리고 순두부도 있어서 함께 주문하려 했더니 두부는 1시간이 지나야 된다고 해서 도토리묵만 시켰다. 쪽파무침을 먹어보니 질박한 모습과 다르게 입맛을 끌었다. 얼갈이배추김치도 그랬다. 도토리묵도 오이와 상추가 들어간 묵무침이 아니라 묵만 덩그러니 담은 접시와 양념장이 전부였다. 단순한 음식이었지만 맛은 단순하지 않았다.

기본차림

가장 특이한 것은 고기를 굽는 화로였다. 일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나오는 1인용 보다는 더 큰 화로에 참숯으로 불이 붙어 있었다. 여기에 석쇠를 얹어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다. 옛날 양반들이 탁족을 즐기며 맥적을 구워 먹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양념한 갈매기살이 나왔다. 접시에 담긴 고기가 보기에도 특별했다. 윤기가 흐르고 양념 옷을 적당히 입어 영롱한 고기의 자태가 군침을 돌게 했다.

고기 굽는 화로
양념 갈매기살

먹어본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고기를 굽게 했다. 투덜대면서도 능숙하게 고기를 석쇠에 올렸다. 달구어진 석쇠에서 칙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직화로 고기를 굽다 보니 연기가 솔솔 났다. 그러면서 향기로운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저절로 입가에 침이 고였다. 적당히 잘 구운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콤하면서 짭짤하고 감칠맛 나는 맛에 육즙이 촉촉했고 고기의 질감이 평소 먹던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그야말로 입맛을 부르는 놀라운 맛이었다.

구운 갈매기살

친구는 예전에 맛볼 때 맛이 있어서 삼키기가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이 저절로 피어올랐다. 데리고 와준 친구가 유난히 예뻐 보인다. 구운 고기는 쪽파 겉절이와도 궁합이 잘 맞았다. 참기름 소금장에도 잘 어울렸다. 어릴 적 연탄에 석쇠구이로 먹었던 풍미도 불러냈다. 불에 바로 굽기에 조금은 탈 수밖에 없는 점이 오히려 더 고소한 맛을 느끼게 했다. 양이 작아 많이 아쉬울 것 같았는데 맛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즐긴 탓인지 그다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만족스러웠다.


추가로 목살 1인분을 더 시켰다. 목살도 고기 빛이 선명한 것이 아주 신선해 보였다. 친구가 고기를 잘 구워서 인지 목살도 맛이 있었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았던 컵라면도 시켰다. 다른 식탁의 젊은이들이 먹는 것을 보니 구미가 당겼다. 밥도 한 공기를 시켜 컵라면에 섞었다. 더 맛있게 하는 조합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잘 풀어진 라면을 먹어보니 그것도 별미였다. 잘 구운 목살과 함께 얼갈이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처음 먹는 듯 술술 넘어간다. 때마침 두부도 간수를 넣은 순두부가 만들어져서 한 그릇을 시켰다. 바로 완성된 두부의 신선한 맛을 경험하는 멋진 순간이었다. 그냥 먹어도 고소한 맛이었고 양념간장을 얹어 먹는 맛도 그만이었다. 마무리로 달콤한 믹스커피를 마셨다.


한 시가 다 되어서 하산을 했는데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평일이고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임에도 그토록 많은 이들이 오르기 쉽지 않은 산길을 찾아 오르는 이유는 자명했다. 그야말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처음 맛본 양념갈매기살의 여운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혀끝에 맴돈다. 아내에게도 꼭 맛보게 해주고 싶다. 목 끝까지 음식이 차서 산길을 도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새로운 맛의 경험이 오늘을 행복하게 한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맛 한 가지가 늘었다.

#에세이 #북한산 #인수재 #갈매기살 #맛집 #글로다짓기 #글로다짓기66일챌린지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를 캐는 시골의 아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