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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09. 2023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유홍준 미술사가의 강연을 듣다

성북구에서 주최하는 명사강연에 참여했다. 언론을 통해서 무수하게 접했고 고적을 답사하게 되면 감초처럼 등장하는 유홍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특별한 기회를 가졌다.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앎에  있어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그분의 강연을 통해서 자신의 꿈을 좇아 꾸준하게 한 길을 걸으며 성취와 놀라운 업적을 이룬 성공의 키를 들었다. 그리고 글 쓰는 자세와 태도를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강연 장소인 동덕여대 강연장에 시작 전에 도착을 했음에도 좋은 자리는 부지런한 이들로 이미 차버렸다. 강연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을 피부로 알 수 있었다.

창덕궁

그분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올해로 그분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30주년을 맞았다. 지금까지 무려 500만 부 판매를 기록 중이다. 대단하고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쓰게 된 동기도 흥미로웠다. 그 당시에는 이런 분야의 글을 실어주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1991년 월간 사회평론 창간 기획으로 원고료를 한 푼도 받지 않고 단지 책을 낼 요량으로 쓰게 되었다.


책을 내게 된 배경이 놀라웠고 이어지는 이야기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독자들에게 그토록 사랑받은 이 책은 어떤 문학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라는 것이 황당하다.

상을 줄 수 있는 항목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지 않은가. 역사와 미술에 얽힌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이 알아듣게 쉽게 쓴 대중서는 질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교수의 연구 실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니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교수님은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다면 퓰리처상 감이라고 하는 데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상의 본질은 격려하는 것인데 기존 사고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어버린 처사가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국민들의 압도적인 사랑이 있으니 그 어떤 상보다 의미 있고 값진 상이라고 믿는다.


그분의 책이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았던 배경을 이해하게 된 점도 좋았다.

93년 문민정부 시절은 사회적 갈등 없는 평화의 시대였다. 그 당시 분위기는 선진 문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기울였고 외국을 쫓아다니며 배우고 익히고 습득한 것이 선진이라는 사고가 만연했다. 저마다 유학의 열풍이 불었다. 그러다 해외여행이 자유화가 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깨지게 된다. 그간 매체로만 접했던 문물들을 직접 방문해서 접하며 원화콤플렉스가 해소가 된다.  진본을 마주하는 경험으로 나 자신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편향적으로 서구에  몰입하면서 우리 것은 잊혔다는 사실을 마주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94년 우리 영화 서편제가 100만을 돌파하는 놀라운 문화 현상이 벌어진다. 잇따라 김태정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 꽃 이야기가 출간이 되어 우리 야생화 100 꽃이 널리 알려진다.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일신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우리나라는 도처가 박물관이라는 책의 내용이 호응받게 된 것이다.


그분의 책을 내는 열정도 대단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남한 편을 책으로 완간한 후 중앙일보를 통해서 97년 북한 답사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 달 동안 기행한 후 신문에 2년에 걸쳐 연재글을 쓰게 된다. 기행문은 유적도 중요하지만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금강산에 대해 쓰기 위해 10번을 탐방하여 사계절을 다 보았다. 놀랍게도 이 일 후에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다. 글쓰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리고 그에게는 우리나라의 화인열전을 쓰고 싶은 꿈이 있었다. 화가의 삶과 예술은 그 시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어서  8명에 대한 글을 썼다. 특히 추사 김정희에 대한 글로 완당 평전 3 권을 썼는 데 그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지만 그만큼 모르는 내용도 많다고 한다. 자기 지역에 대해서는 왜 안 쓰느냐는 항의를 받고 제주도에 대한 책을 한 권 더 내게 되었고 한국 미술을 전도하는 마음으로 그간 오랜 꿈이었던 한국 미술사 강의를 무려 5권이나 썼다. 무려 2500여 페이지로 책의 내용은 미술사학계의 내용을 집대성하여야 하고 모든 부분이 다 연구되지 않아 연구를 병행하며 쓴 것이다. 조선시대까지 썼는데 근대사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문화유산답사기로 12권을 썼고 지금까지 35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해마다 한 권을 쓴 셈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에 탄복하게 된다. 평범한 에세이가 아닌 깊이를 지닌 전문 서적을 그렇게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온전히 사명감으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잠정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썼다. 특히 자신의 비문화적인 친구를 염두에 두며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며 썼다. 그가 글을 쓰는 노하우를 전해 준 것은 앞으로 글을 쓰며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것을 쓰지 말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기승전결로 쓰라.

책을 쓰려면 자기가 세상에 대해 공유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상사람과 공유할 가치가 있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분의 조언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자신이 작가를 꿈꾸면서 세상에 공유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야겠고 공유할 가치에 대해 선명히 해야 함을 똑똑히 알게 된다.


그분도 탄탄대로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백수로 7년 반을 지냈고 기자 7년 반 생활을 했으며 43살에야 교수 임용이 되었다. 책의 출판도 은사 백낙청 교수를 통해 창비 출판사와 계약이 이루어져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쉬운 길은 주어지지 않는다. 마음먹은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다. 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주위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낸 비결을 그분은 한 마디로 정의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시류를 좇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꾸준히 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 일을 발견하지 못하면 방향성을 잃는다. 남들을 따라서 살 수밖에 없다.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그분의 본에 큰 자극과 격려를 받았다. 지금도 여전한 학구열과 도전 정신을 보면서 나도 그 발자취를 닮고 싶은 열망이 솟아오른다. 귀한 나눔에 감사를 드린다.

 #에세이 #유홍준 #강연 #성북구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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