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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08. 2023

나는 허점이 많은 사람이다

스스로 쓰는 반성문

나는 참 빈틈이 많은 사람이다. 오늘도 그런 나를 마주하는 일이 생겼다.


오늘 오전에 일정이 있었다. 성북구에서 주최하는 명사 초청 강연이 있는 날이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유홍준 교수의 강연이 있다는 소식에 바로 수강 신청을 했었다.


성북구에서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많이 개최한다. 해마다 한 책을 선정하는 행사도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데 올해는 나도 거기에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운영위 활동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다양한 작가들의 책을 읽을 수 있었고 토론 참여를 통해 사람들의 다채로운 사고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행사로 구청 관계자들의 기획력과 열정에 탄복하는 기회였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독서의 저변을 넓히는 알차고 실제적인 책의 축제였다. 특기할 만한 것은 구청만의 일방적인 주도와 진행이 아니란 점이다. 구민들을 적극적 참여하도록 유도했고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 문화 행사였다. 이들 운영위원에게는 명사 강연 행사에 우선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여유를 부렸더니 시간이 임박했다.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강연에 늦지 않으려고 옷을 차려입고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다시 한번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 보려고 핸드폰을 확인을 해보았다. 그런데 문자를 들여다보다 깜짝 놀랐다.


"아뿔싸!"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다.


어이가 없었고 황당했다. "아이고 내가 이런다니까?"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가니 아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왜 다시 들어와?"  

"나 참 어이가 없네! 오늘이 아니고 내일이네"

"호호호 당신도 어이가 없어요?  늘 있는 일상사 아니에요?"

"무얼 또 그렇게까지...."


일정을 핸드폰 달력에 기록한다고 하면서 제대로 메모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에도 중요한 일정을 제대로 기록해놓지 않아 약속이 중복이 된 적이 꽤 많았다. 바로바로 기록하는 습관을 갖지 못한 탓이다. 무엇인가를 규칙적으로 관리하고 챙기는 일이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극히 즉흥적이고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느낌을 우선시하고 감정에 이끌린 대로 살아간다. 계획하고 관리하는 일은 젬병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꼼꼼히 챙겨야 하는 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성격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 자질로 규칙적인 직장생활을 꾸준히 해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살아가는 법은 있는 법이다. 살아오며 몸에 밴 자질도 있다. 즉흥적인 임기응변의 필살기를 갖추었다. 문제가 생기면 대응능력이 뛰어나다. 그 점이 문제다.


 아내는 그렇게 문제를 넘어갈 때마다 "당신은 큰 코를 다쳐봐야 정신을 차리는 데 일이 생겨도 그냥 넘어가니 그것이 문제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 많다. 그런데 나이 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으니 내가 봐도 답답하다.

이제는 나를 알만큼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범한 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자리에서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자. 나는 다른 이들보다 허점과 빈틈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빈 공간을 기록으로 대신하자.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그래도 전 날이었으니 망정이지 이튿날이었으며 어쩔 뻔했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사는 삶과 제발 헤어지자. 진심이다.

#에세이 #허점 #반성문 #성격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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