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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13. 2023

누이들과 나누는 정(情)의 시간

피붙이들과 정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고 산다. 그중 피붙이는 여타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관계다. 그런데 한 가족에서 지내다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각기 가정을 이루게 되면 이전 같은 끈끈한 연결은 사라지게 된다.  삶의 바운더리가 달라지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바빠진 이유다. 함께 부대끼며 살면서 느끼는 친밀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함께 지내는 이웃이 물리적으로는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사람의 정이란 함께 하는 시간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창덕궁

그렇지만 아무리 이웃이 가깝더라도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이 있다. 가족 간의 끈끈한 정이다. 그것은 삶의 밑바탕 깊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고 있는 정서다.


가족 구성원들은 장성하여 다른 사람을 맞아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 그렇게 되면 새롭게 형성된 새 가족이 최우선 순위가 된다. 이런 변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새로 구성원이 된 이들의 태도와 역할에 따라 혈연관계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아무래도 자신의 혈연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편은 본가에 우선적인 관심이 가고 아내는 처가에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채 자기 본위로 관계를 지속하고 살아가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챙기지 않으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 모두가 다 중요하다. 지혜로운 남편은 처가를 후하게 대우하고 돌본다. 그런 남편을 둔 아내는 본가에 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내가 친정만을 우선시하고 본가에 대해 냉담하면 부부사이에도 문제가 생긴다. 고릿적부터 아내의 입장에서는 '시'자가 들어가기만 해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만큼 아내들이 힘든 시댁 생활을 감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남자들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먼저 아내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여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그래야 가정에 평화가 깃든다.

창경궁 춘당지

나도 본가 문제로 아내와 다투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후한 아내 덕분에 잘 지내는 편이다.


내게는 누님이 세 분이 계신다. 이제는 다 60대를 훌쩍 넘어버렸다. 세 분 모두 인생의 굴곡을 거치고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나름 안정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미국에 이민을 가신 큰 누이가 해마다 휴가로 한국을 찾을 때마다 자매들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애가 그렇게 깊을 수가 없다. 각기 판이하게 다른 인생길을 걸어왔지만 노년에 이르러서는 가족이라는 이름아래 예전보다 더 끈끈한 정을 나누며 산다.


나는 세 누나들의 손 아래 동생이다. 남동생이지만 누님들과 각별하다. 아내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누이들과 남동생은 데면데면하기가 쉬운데 마치 자매들처럼 잘 지내기 때문이다. 누님들도 나를 굉장히 편하게 대하신다. 서로 공통분모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수렵채취하는 일에 특별한 열정이 있다. 바닷가에 가면 갯가에 사는 조개나 나물을 줍고 뜯는 일을 즐긴다. 산나물을 캐는 일에도 그렇다. 무엇인가를 채취하는 일에는 엄청난 열심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다. 특히 제주도를 좋아해서 아예 제주도에 농막도 마련해 놓았다. 그래서 제주도는 연례행사로 다닌다. 누님들은 예술적 취향도 나와 같다.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른다. 또 글 쓰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이렇게 공통분모가 많으니 친한 게 당연하다.

춘당지

금년에는 큰 누이가 미국에서 심장 관련 수술을 해서 요양차 귀국했다. 그래서 전북 진안에 머무르며 요양 중이다. 다행히 예후는 좋아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미대사관에 운전면허증 갱신 관련으로 세 누님이 갑자기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누님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지만 아내는 깜짝 놀란 얼굴이다. 아무리 사이좋은 시누이라 하더라도 시누이는 시누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마음이 넓고 현명해서 당황한 마음을 잘 추스르고 받아 주었다.


누님들은 한 차로 서울로 올라왔다. 누님들이 오시기 전에 한바탕 청소하느라 난리를 부렸다. 나는 있는 그대로 편하게 맞으면 될 것 같은데 아내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졸지에 나도 동원되어 거들어야 했다. 아내는 누이들이 좋아하는 꼬막과 해산물을 준비했다.


피붙이들과 만남은 특별하다. 마음이 편안하고 따스하다. 누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 누이들이 손맛이 좋은 데 아내를 거들어 함께 요리하는 풍경이 평화롭고 참 좋다. 행복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누님들도 아내가 해주는 겉절이나 꽃게찜은 엄지 척하며 좋아하신다. 함께 준비한 저녁을 즐겁게 먹으며 이야기 꽃이 핀다. 건강 관련 이야기가 가장 많은 화제에 오른다. 그만큼 건강이 중요한 나이다.

창덕궁

이튿날, 누님이 미대사관 일을 마치고 함께 창덕궁 구경을 나섰다. 내가 가이드로 나섰다. 셋째 누이가 관절염으로 잘 걷지 못하면서도 만 보 이상을 걸으며 궁궐 관람을 즐겼다. 고즈넉한 고궁에 관람객들이 붐볐지만 누이들도 전각들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내친김에 창경궁까지 돌았다. 단풍이 지고 있는 춘당지가 아주 매혹적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니 아내가 누이들이 좋아하는 배추 겉절이를 준비해 놓았다. 맛깔스러운 요리의 자태에 입에 가져다 맛을 보느라 바쁘다. 모두 엄지 척이다. 누이들도 손을 걷어 부치고 오전에 사다 놓은 주꾸미 요리를 하느라 야단 법석이다. 유튜브를 켜놓고 요리를 하는 데 결론은 너무 오래 끓여 주꾸미가 꼴뚜기가 되어버렸다. 다 같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래도 무슨 상관이람! 밥상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 맛을 누리는 것임을 우리는 아는데.


다음 날 누이들은 시골로 내려갔다. 좀 더 계셔도 되는 데 우리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이들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하다. 각자 사느라 바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정을 나누기에 충분하고 이를 통해 행복을 길어 올릴  수 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언제나 따스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오손도손 가슴과 마음을 나누며 살자. 행복은 절대 멀리 있지 않다.


#에세이 #누이 #가족 #피붙이 #정 #행복 #창덕궁 #창경궁 #춘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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